강 북쪽으론 中의 화려함, 남쪽으론 北의 척박함이…

[압록·두만에서 바라본 북한의 오늘]<1>

지난 8월 초순 한국의 북한전문가들이 8박9일 동안 압록강 서쪽 끝 단동(丹東)에서 두만강 동쪽 끝 방천(防川)까지 북·중 국경 1376.5㎞, 3000리가 넘는 거리를 답사하면서 강 건너 북한 땅의 사정을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답사는 북한 전문가들이 그 동안 문헌자료와 현장경험을 통해서 축적해온 지식과 눈앞의 현실을 대조하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답사단의 분석과 평가는 정보와 자료로서 가치가 적지 않습니다. <프레시안>은 답사단의 일원이었던 황재옥 박사가 이번 현장답사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내용들을 정리한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첫째 날] 2012년 8월 3일, 다롄-황금평특구-단둥

1998년 8월 중국 땅에서 우리 한민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옌볜(延邊) 땅을 처음 밟았다. 관광 목적이 아닌 연구 차원의 중국방문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엔 중국의 도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답사 범위도 북·중 접경지역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극히 일부만을 보았다. 어느 날 밤인가에는 질펀하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돌다 길을 잃기도 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길을 물어야 하는 것도, 누군가를 마주치는 것도 두려웠었던 적이 있었다. 번듯한 지도도 없이 인솔자의 기억과 감(感)으로 찾아간 곳도 있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부터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지난 8월 3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중국방문도 연구 차원에서 참여하게 됐다. 백두산을 두 번이나 올라가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북중 접경지역을 가능한 한 더 많이 걷고, 보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내 땅이면서도 갈 수 없는 곳을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보면서 외부 세계와 단절된 북한에도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요즘 북한 주민들의 사는 형편은 어떤지 소문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북한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남북관계의 최전선에서 북한과 직접 대화도 많이 했던 분들과 함께 압록강 하구에서 두만강 하구까지 북·중 접경지역을 완주한 '3000리 대장정'은 나에게는 다시 듣기 어려운 '달리는 현장 세미나'였다. 한반도의 동북쪽 끝에서 서남쪽 끝까지 3000리라고 해서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본 강 건너 3000리는 '화려강산'이 아니라 '초라강산'이었다.

압록강 끝에서 두만강 끝까지 중국과 접하고 있는 북한 국경선은 장장 1376.5㎞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중국 쪽 도로 사정 때문에 강변에 길이 없거나 길이 있더라도 차가 달리기에 위험한 곳은 어쩔 수 없이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강 쪽으로 나오다 보니 실제로 주파한 거리는 2800㎞, 7000리나 됐다.

참으로 멀고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시간문제나 교통문제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철조망 사이로나마 북한의 최전방 국경초소를 지호지간(指呼之間)의 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호기심 때문에 떠나기 훨씬 전부터 내 가슴은 설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대감은 비애감으로 호기심은 동정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중국 동북3성 중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을 횡단하면서 북중경제협력이 활발히 진행될 지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갖기 힘든 기회였다.

역사적으로 전 세계 접경지역은 배타적인 대치공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세계화·개방화가 이루어지면서 접경지역은 접촉과 교류가 허용되는 개방공간으로 변모했다. 특히 북·중 접경지역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북중관계의 현황과 변화를 문헌으로 확인하는 것 외에 양국의 관계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북중 접경지역임을 이번 답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나온 북중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현재의 북중관계를 설명해주는 상황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인천-다롄-단동 가는 길에 황금평을 지나다

3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1시간 5분여만인 오전 10시(현지시간)경 랴오닝성 다롄(大連) 저우수이쯔국제공항(周水子国际机场)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주는 아침식사 먹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이리 가까울 줄은 몰랐다. 그만큼 우리의 강 압록강과 서울도 가깝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서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생각하게 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한반도와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갈등과 이해(利害)를 많은 점에서 공유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기도 했다.

중국 변방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롄공항은 규모나 시설로 보아 아주 현대적이었다. 중국 동북부에 있는 공항 중 승객 수, 물동량, 이착륙 부문에서 최고인 공항이라고 들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 동북공정에 이어 동북진흥전략을 추진하면서 다롄공항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진 것일까? 비행기 안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승객도 꽉 차 있었다. 아마 남북관계가 다시 활발해지면 다롄공항도 더 바빠질 것이다. 한국의 많은 인사들도 이 공항을 통해 드나들 일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롄은 일본이 만든 도시라고 한다. 그 옛날 고구려 땅이었던 다롄은 청일전쟁 후인 1898년 러시아가 조차(租借)한 이후 '다리니'(러시아 말로 '멀다'라는 뜻)라고 명명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 후 1905년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일본이 조차권을 갖게 됐다. 일본은 중국어의 지명 '다롄만'에서 나온 '다롄'을 도시명으로 정했다. '다롄'은 러시아명의 '다리니'와도 발음이 비슷하다. 현재 다롄인구는 560만 명이고 랴오닝성 전체 인구는 6000만 명이라고 한다. 1990년대 개혁개방 이래 중국 동북부 내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곳이 다롄이다. 2008년 다롄의 국내총생산(GDP)은 16.5% 증가했고, 국가 통계국의 전국 평가에 따르면 중국 전체 도시들 중에서 8위의 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다롄이다.

우리는 이제 다롄에서 단둥(丹東)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압록강 끝에서 두만강 끝까지의 일정이 드디어 시작됐다. 단둥에는 신의주와 연결되는 압록강 철교가 있다. 멀리서 신의주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극히 일부지만 북한의 마을과 집, 그리고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0인승 크기의 전세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 내내 우리의 입과 손발이 되어줄 옌볜대학 석사 출신의 조선족 여학생이 나타났다. 옌볜대학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한국어와 중국어가 공식적으로 함께 사용되는 대학이다. 예쁘고 다부지게 생긴 귀염성 있는 오미령이라는 친구였다. 초·중·고를 한족이 다니는 학교를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말을 곧잘 했다.

버스를 타고 압록강 하구에 자리 잡은 단둥으로 향했다. 단둥까지는 약 300km, 서울-대구보다 먼 거리다. 단둥 건너편으로 북한의 신의주가 있고, 압록강 철교로 단둥과 신의주는 연결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 신의주는 풍부한 수풍발전소의 전력을 이용하여 공업이 발달된 곳이라고 배웠다. 최근에도 신의주는 북한이 산업을 개발하고자 하는 지역이다. 다만 2002년 당시 중국 측이 북한이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에 임명했던 중국인 양빈(楊斌)을 전격 체포하고 신의주특구 개발에 제동을 걸었었던 일이 있었던 때문인지 2008년 북한은 신의주특구 개발 및 개방에 상당히 신중한 자세로 임했었다.

중국도 신의주-단둥 연계개발과 함께 북한 땅인 황금평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8년 6월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은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다. 당시 북·중은 북·중간 제2압록대교 건설 계획과 신의주-평양간 고속도로 건설에 합의했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어 주변은 옅은 회색빛이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의 오른쪽 차창 밖으로 북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압록강에도 다다를 것이다. 도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다니는 차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끔 승용차들만 눈에 띌 뿐 물건을 싣고 나르는 트럭도 자주 보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왼쪽 차창 밖으로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조성된 아파트 단지는 아기자기한 느낌은 없고 회색빛 덩치 큰 거대한 건물들의 집합체였다. 변경지역의 도시발전과정에서 주거용 시설들이 급속하게 조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의 다른 농촌 지역에 비해 다롄에서 단둥으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 지역은 신도시 건설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 도시로 유입되는 많은 노동력을 수용할 주거단지인 아파트의 모습에 잠시 놀랐다. 오른쪽 차창으로는 중국 어촌의 모습이, 왼쪽 차장 밖으로는 도시화된 주거형태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 압록강 하류 다롄시 건너편 어촌 모습. ⓒ황재옥

얼마나 지났을까? 오후 3시 30분경 드디어 압록강 하류에 도착했다. 갯벌이 끝나고 들판이 나타났다. 드디어 북·중 경계를 알리는 철조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조망 너머는 한반도, 북한 땅이다.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은 키 큰 풀들과 잡목으로 널따란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 가보지는 못하지만 강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에 단둥과 신의주 사이에 북한의 위화도(威化島)가 있다. 현재 위화도는 평안북도 신의주시 상단리와 하단리에 딸린 섬이다. 14세기 고려 말 요동정벌 차 압록강까지 올라온 이성계가 개경으로 회군한 위화도였다.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요동정벌을 감행했다면 진격했었을 방향을 우리는 거꾸로 돌아 온 셈이었다. 아마도 당시 이성계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막막한 벌판을 보고 요동정벌이 쉽지 않았음을 간파한 것은 아닌지…. 지금 봐도 위화도를 지나 중국 쪽 지역은 허허벌판의 연속이다.

드디어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황금평(黃金坪)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지점에 도착했다. 비가 온 뒤라 땅은 젖어 있었고 발 딛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일행 말고도 자동차 서너 대에 나눠 탄 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황금평특구를 알리는 입간판이 북·중 경계선에 높이 걸려 있었다. 간판 너머는 바로 북한 땅 황금평이다. 입간판 오른쪽 옆으로도 북중 경계선으로 보이는 철조망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 황금평 특구. ⓒ황재옥

▲ 황금평특구의 북중 철조망. ⓒ황재옥

중국 쪽 철조망은 새것인 듯 견고하게 만들어진 반면, 북한 측 경계선은 키가 낮은 콘크리트 기둥들을 연결하는 철조망이 녹슬고 엉성하게 보였다. 특구를 알리는 간판에는 "중조목린우호 공촉경제번영, 군지제심협력 동건화해변경(中朝睦邻友好 共促经济繁荣, 军地齐心协力 同建和谐边境)"이라고 씌여 있었다. 내용은 "중국과 조선이 우호관계를 두텁게 하여, 경제번영을 함께 촉진하자. 군대와 지방이 마음을 모으고 협력하여, 사이좋은 국경지대를 함께 건설하자"는 내용이다.

지명으로도 멋진 황금평특구는 중국의 '일교양도'(一橋兩島)개발의 일환으로 2011년 말 시작됐다. '일교'(一橋)는 신(新)압록강대교를 지칭하고 '양도'(兩島)는 황금평과 위화도를 지칭한다. 황금평특구의 시작은 북·중 경제협력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북·중관계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시진핑과 김정일의 면담에 이어 2009년 7월 15일 중국은 대북정책을 조정, 전략적인 협력관계로 나갈 것을 천명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1)한반도 비핵화, 2)북핵문제는 미국이 책임지고 해결하고 중국은 이에 대해 협조한다. 그리고 3)북한과 중국은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확대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不戰(평화) 不亂(안정) 無核(핵폐기)"의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했다.

황금평은 북한과 중국 사이의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고, 중국의 동북3성 진흥계획(東北三省振興計劃) 추진과 맞물려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중국의 동북3성 진흥계획은 1)동쪽으로는 북한의 나선경제특구와 연계된 창지투선도개발구(長吉圖先導開發區, 창지투는 중국의 옛 공업지역이었던 동북3성(창춘(長春), 지린(吉林), 투먼(圖門)을 지칭한다)와 2)서쪽으로는 황금평개발이 포함된 랴오닝연해경제(遼寧沿海經濟)벨트계획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는 낙후된 동북부지역을 개발해 국제적인 물류거점 지대로 조성하고자 하는 중국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이다. 특히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곳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북한과의 경제협력 확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후 북중 간에는 고위 수뇌부의 만남을 통해 구체적인 경제협력 방법들을 계속해서 모색해 왔다.

2009년 10월 5일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김정일을 만나서 양국이 공동경제특구를 만들자고 강력하게 제안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먼저 공동경제특구 건설을 북한에 제안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양국의 국경선인 접경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자는 것은 전적으로 중국의 구상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지만, 혹여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중요한 점은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협력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은 양국이 '공동개발 공동관리(開發合作)'한다는 원칙이 담긴 '경제무역협력의정서(經濟貿易協力議定書)'를 체결했다. 당시 북한의 김정일은 중국이 주도하는 단독개발을 원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개성공단과 같은 형태의 개발을 원했으나, 중국은 북한의 경제발전의 필요성을 이유로 김정일의 제안에 반대했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은 중국의 단독 개발 시 발생될 국제적 여론을 우려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이 북한을 경제식민지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난을 가장 우려했을 것이고, 국제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중국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중국은 양국이 '공동개발 공동관리'할 경우 윈-윈(win-win)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했을 것이다.

이후 북중은 2009년 11월 창지투선도개발계획을 발표(2020년 목표)하고, 2010년 2월에는 북한과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단동-신의주간 신압록강대교(新鴨綠江大橋) 건설에 합의했다. 2010년 8월 창춘(長春)에서 북한의 당 행정부장 장성택과 중국 상무부장 천더밍(陳德銘)이 만나 후속 논의를 했다. 2011년 6월, 북한은 북·중 친선 강화를 위해 황금평·위화도 특구를 추진하되 황금평을 우선적으로 개발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령을 발표한지 이틀 만에 황금평 착공식을 거행했다.

우리는 여기서 북한과 중국이 합의한 황금평특구와 남북이 합의한 개성공단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이 어디에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였는지, 그리고 각각의 특구가 갖는 조건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궁금했다.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은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북한 유입은 단절된 반면, 황금평특구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개성공단이 풀고 가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황금평특구가 착공된지 14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중국 쪽은 도로가 이미 잘 닦여 있고 현대적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쪽은 아직도 풀이 무성한 벌판 그 자체였다. 그러나 언젠가 이곳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북측 노동자들이 일할 것이다. 아직은 시원하게 펼쳐진 녹색의 벌판에 지나지 않는 황금평을 바라보고 있으면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북·중관계의 특수성과 북·중간 합의과정을 생각해 보면 황금평이 이름 뜻대로 될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금평 벌판 앞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압록강철교와 신의주를 보기 위해 우리는 단둥 시내로 향했다.

필자 소개

황재옥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정치·사회문제, 특히 인권문제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통일연구원 정책자문위원, 휴먼아시아 이사 등으로 활동해왔다. 1년 반 동안 미국 아이오와(Iowa)대학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는 북한의 기아(飢餓)문제에 대한 번역서도 출간했다. 현재 (사)평화협력원 인권·평화센터 소장으로 일하면서 (재)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이사, (사)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 (사)한반도평화포럼 운영위원 등 북한 및 통일관련 단체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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