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펜 "어떤 후보도 지지 안해"…사르코지 '사면초가'

르펜 지지자 중 사르코지 지지 절반도 안 돼…'카다피 밀월설'도 악재

지난달 22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정치인 마린 르펜이 좌우 대결로 압축된 결선투표에 진출한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르펜의 이러한 발언은 사회당 프랑수와 올랑드 후보를 이기기 위해 극우 지지자들의 표가 절실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결정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르펜 당수는 오는 6일 치러지는 결선 투표에서 올랑드와 사르코지 누구에게도 투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차 투표에서 자신들을 지지한 640만 명의 유권자들에게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하라"라고 조언했지만 사실상 기권표를 유도한 셈이다.

이번 결선투표의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는 르펜은 1일 파리에서 국민전선이 주최한 노동절 행사에 참석해 올랑드와 사르코지 모두 유럽과 금융시장에 '항복'했다며 기권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올랑드와 사르코지 중 누가 가장 굽신거리는 자세로 긴축정책을 시행할 것인가? 누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또는 유럽연합(EU)의 명령을 잘 받들 것인가?"라고 비꼬며 자신이 기표를 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르펜이 1차 투표에서 기록한 17.9%의 득표율은 국민전선 역사상 최상의 성적으로 국민전선의 전 당수이자 자신의 부친인 장 마리 르펜의 '업적'을 뛰어넘는 수치다. 사르코지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르펜의 이러한 발언은 예상된 바 있지만 방송은 이번 발언이 사르코지 후보의 재선 가능성을 희박하게 하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현지 언론들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에 6~10%p 뒤지고 있는 사르코지는 1차 투표에서 르펜을 지지한 이들의 80%를 끌어와야 역전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 국민전선 지지자들의 44%만이 사르코지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38%는 기권 의사를 표명했고 18%는 올랑드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국민전선의 싸늘한 반응에도 사르코지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1차 투표에서 11%를 득표한 좌파전선-프랑스 공산당의 공동후보 장 뤽 멜랑숑이 올랑드 지지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좌파 지지자들이 결합하는 상황에서 그로서는 극우·보수층을 공략하는 길 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1일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프랑스에 이민자가 너무 많다며 극우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려 애썼다. 그는 "우리의 통합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우리 영토 안으로 받아들인 이들을 통합하기 전에 또 다른 이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절을 맞은 이날 사르코지와 올랑드의 유세 전략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올랑드는 '자신은 사회당 후보가 아닌 프랑스 범좌파 연합의 후보'라며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반면 사르코지는 노동자의 권리가 좌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과거 사회당이 집권당이었던 시절 도입된 주당 35시간 근무제도가 수십 만 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노조가 "자신들이 지켜낸다고 주장하는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라고 날을 세웠다.

르펜의 기권만이 사르코지의 재선가도를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반군에게 죽임을 당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07년 사르코지에게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1차 투표 전부터 제기된데 이어, 그해 리비아에 투옥된 불가리아 간호사 5명과 팔레스타인 의사 1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카다피 정권과 핵 거래를 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카다피의 최측근으로 미 정부의 제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고, 인터폴의 수배까지 받고 있는 바세르 살레가 프랑스에 당당히 체류 중인 이유도 사르코지의 비호 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르코지 진영은 카다피와의 관계를 일절 부인하고 있지만 연이은 폭로로 인해 과거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사르코지와 카다피의 '밀월설'이 새삼 부각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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