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빈곤층은 왜 좌파가 아니라 극우파를 찍었나?

[해외시각] "사르코지의 욕심이 극우파를 키웠다"

지난 22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당의 프랑수와 올랑드 후보와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각각 1위과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해 좌우 대결이 성사된 것은 프랑스 선거 역사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여론의 관심을 끈 이는 3위를 차지한 마린 르펜이다. 반이민, 반이슬람의 기치를 건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르펜은 이번 선거에서 18.1%의 표를 받으며 2002년 당시 국민전선의 당수이자 부친인 장 마린 르펜의 득표율을 넘어섰다.

<AFP>, <리베라시옹>의 해외 통신원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독립 온라인매체 <Rue89.com>을 운영하고 있는 피에르 하스키는 23일자 <가디언> 기고를 통해 국민전선의 인기는 경제위기 이후 형성된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스키에 따르면, 경제위기로 탄생한 신 빈곤층이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강조하던 좌파 후보를 버리고 르펜으로 몰려갔다. 이는 이념과 성향을 가리지 않고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공감대로 스펙트럼을 확장한 르펜의 전략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위기 해결에 무능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하스키는 '르펜 돌풍'의 여파가 5월 6일 결선투표 이후에도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사르코지가 유세 과정에서 극우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강경발언을 쏟아내면서 과거 같으면 일부 극단적인 생각에 불과했던 극우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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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8.1%를 득표해 3위에 오른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 ⓒAP=연합뉴스
프랑스 극우는 왜 선전했나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표면적으로 유권자들은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와 현 대통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를 5월 6일 결선투표에 진출시키면서 전통적인 좌우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맥락과는 먼 이야기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혼란은 좌파전선과 프랑스 공산당의 공동후보 장 뤽 멜랑숑이 아닌,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으로부터 왔다.

르펜은 1차 선거에서 18.1%를 득표했는데, 부친 장 마리 르펜이 2002년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해 받았던 16.5%보다 더 높았다. 또한 프랑스 제5공화국(1958년~) 이후 대선에서 극우파 후보가 받았던 표 중 가장 많다.

르펜은 전망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여론조사·전문가 예상 득표율을 깨면서 프랑스 우파의 진정한 지도자가 됐고, 미래 프랑스 정치에서 국민전선이 큰 역할을 할 조짐을 알렸다.

아버지 르펜의 험악한 인상을 금발에 미소를 띤 딸 르펜으로 교체하고, 공개적으로 외국인을 혐오하면서 반이민·반이슬람을 기반으로 선거 캠페인을 펼친 이 당의 성과가 현재 모든 논란의 관심이다.

투표자 5명 중 1명이 인종차별주의 정당에 표를 던진 준비가 된 프랑스는 인종차별 국가인가? 이는 르펜의 부상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국민전선의 성공을 이끈 것은 명백하게 사회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힘이었다.

르펜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유권자라면 (성향이) 다르거나, 심지어 모순되는 집단까지도 자기 진영 안에 포함시켰다. 일자리와 사회보장혜택을 가로채는 이민자에 대한 혐오건, 세계화건, 개방된 국경이건, 멀리 떨어진 국가로 일자리를 몰아주는 유로화건 보통사람들을 위한 혜택이 없는 사안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르펜에 대한 투표는 권력을 누리면서도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확실한 해법을 내지 않았던 주요 정당을 향한 항의였다.

경제위기로 경제 시스템에서 배제돼 극단에 몰린 사람들, 르펜이 "보이지 않는 자"로 묘사했던 프랑스의 빈곤층은 전통적으로 그들의 편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주장하는 좌파 진영보다 극우 진영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멜량숑은 유권자들이 좌파 진영의 대안후보인 자신을 선택하도록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선 진출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르펜만큼 폭넓은 지지도 얻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멜량송은 노동자 계층과 청년 유권자층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현 경제위기로 생겨난 '새로운 빈곤층'을 상대로는 실패했고, 오히려 그들은 국민전선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올랑드가 22일 밤 연설에서 지적했듯 르펜의 성공은 국민전선의 표를 끌어가려고 '불장난'을 한 사르코지의 책임이기도 하다. 사르코지는 이민과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면서 뻔뻔스럽게 극우 진영의 영역을 잠식했다. 그의 측근 중 한 명인 클로드 게앙 내무장관은 심지어 모든 문명이 평등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르코지는 극단적인 생각과 주제로 남아야 하는 것들을 정당화하는 위험을 무릅썼다. 그 결과 르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르펜은 자신에게서 표를 빼앗으려는 사르코지의 시도에 대해 "모조품을 선택하지 말라. 원조를 선택하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 말을 경청했다.

사르코지의 비극은 5월 6일 승리를 위해 심지어 더 큰 목소리로 애국심을 호소하고 좌파 진영의 승리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전술을 섞는 등 (과거와) 같은 화법을 사용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는데 있다. 그러한 전략이 원칙을 훼손하고 르펜의 매력을 더 강화한다고 해도 말이다.

프랑스인 다수는 아직까지는 5월 6일 사르코지 시대의 페이지를 완전히 넘겨버리기로 결정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게 이야기의 끝은 아닐 것이다. 사르코지는 퇴장해도, 르펜이 그곳에 남아 자기 진영과 자신의 입지가 더 강해지는 것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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