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에게 쓴 주사바늘 찔렸는데도 업체는…"

서울대 병원 청소노조 "서울대병원은 안전 대책 마련해야"

병원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에이즈 환자가 사용했던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났다. 피해 노동자는 에이즈 예방약을 먹으며 겨우 무급 병가를 받았지만, 해당 청소 용역업체는 피해 보상은커녕 도리어 해고하겠다며 협박했다.

서울대병원 감염병동에서 일하는 김영순(가명·55) 씨는 지난달 5일 오전 7시 30분경 에이즈 환자 병실 바닥에 떨어진 뚜껑 덮인 주사바늘을 주우려다가 휴지 밑에 숨겨진 또 다른 주사바늘에 찔렸다. 김 씨는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놀라 응급실에 갔고, 에이즈 예방약 14일분을 처방받고 다시 일했다.

김 씨는 약을 복용한 지 3일 만에 메스꺼움 등의 증세가 왔고, 불안한 마음에 청소 용역업체 현장 소장에게 찾아가 다른 병동에서 일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장 소장은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며 "까딱하면 회사에서 자를 수가 있다"고 김 씨를 위협했다. 김 씨는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온 건 이런 대우였다"며 "서러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호소했다.

현장 소장은 김 씨의 산재에 대해서 병가가 아닌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했다. 이에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조합인 민들레분회가 산재 처리를 해달라며 항의했고, 김 씨는 사고가 일어난 지 22일 뒤인 27일에서야 유급이 아닌 무급으로 병가를 쓸 수 있었다. 병가를 쓰는 동안 생계가 끊긴 그는 현재 생활비와 건강을 걱정하는 처지다.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도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고려대 청소노동자인 김윤희 씨는 "간호사가 플라스틱 통에 주사바늘을 버리게 돼 있지만, 청소하다 보면 주사바늘이 바닥에 굴러다닌다"며 "우리 병원에서도 주사바늘에 찔려본 사람이 전체 청소노동자의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바늘에 찔렸다고 호소하니 병원 직원은 '나이 들었는데 어쩌려고요?'라고 반문했다"며 병원 측과 용역업체의 안전 불감증을 고발했다.

이에 서울대병원 청소노조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12일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대병원은 청소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환경을 마련하고, 재해가 발생했을 때는 원청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분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민들레분회장은 "병원은 지금까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안전교육이나 안전복도 지급한 적이 없다. 다른 업체 소속이니 나 몰라라 하는 식"이라며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이 병원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무방비 상태로 다루면 어떤 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병원에는 B형 간염, 결핵 환자 등 각종 감염환자가 올 수 있다"며 "감염에 대해 예방 조치할 의무가 있는 병원이 (이번 사고에)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이 바늘에 찔리면 유급 병가를 내주고 치료비를 전액 보상했었다"면서 "(똑같은 산재인 만큼)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도 "대다수 청소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쓰레기를 나르다가 골절이 생겨도 그냥 참고 일한다. 병가를 내면 무임금이라 생계에 직접 위협 받기 때문"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유급 병가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거들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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