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문 전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원자력의 미래

아직도 계속되는 원자력 마피아의 거짓말

Ⅰ.전대미문의 원전사고의 발생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경, 일본 동북부의 미야기현(縣)해안에서 동남쪽 약 130km 떨어진 해저에서 매그니튜드(M)9.0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일본 동북부의 태평양연안에 위치한 15기의 원전들은 자동으로 제어봉이 삽입되어 가동이 자동정지되었다. 당일 오후 3시 27분경에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 원전에 쓰나미가 밀어 닥쳤다. 특히 8분 후에 닥친 높이 약 14~15m의 제2파 쓰나미 때문에 해발 10m에 위치한 원전 1, 2, 3, 4호기의 터빈 건물지하에 위치한 비상용 디젤발전기를 비롯해 냉각수의 취수 펌프 등이 침수, 사용불능이 됐다.

쓰나미가 오기 전까지는 비상용 디젤발전기의 전력으로 원자로의 냉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상용 디젤발전기와 취수 펌프의 침수로 전원 및 냉각기능을 상실해, 원자로는 물 없는 솥을 태우는 것처럼 핵분열 생성물의 붕괴열이 계속 상승하여 결국은 핵연료가 녹아 내리는 멜트 다운(Melt down) 현상에 이르렀다. 핵연료가 녹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의 수소의 폭발로, 핵연료 속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돼 주변지역의 오염 및 피폭을 가져 온 것이다.

당시 도쿄전력은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격납용기내의 공기를 지상 50m의 배기통을 통해 강제로 배출하는 비상수단인 벤트(Vent)작업을 시도했다. 또 냉각을 위한 민물의 확보 곤란으로 바닷물까지 주입하였다. 그러나, 초기대응의 지체와 부적절한 대책 등으로 결국 1, 2, 3, 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빠져 나갔다. 상업용 원전이 1954년부터 시작된 이래의 중요한 원전사고다. 1979년에 발생한 미국의 스리 마일드(TMI)원전사고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다.

1)복수 원전의 동시사고 2)대규모 해양오염의 발생 3)원전사고의 장기화라는 특징 때문이다. 8월 현재, 사고발생 후 5개월이나 흘렀지만 안정적인 수습은 여전히 지진부진한 상태다. 사고원전의 안정적인 수습 및 폐로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고 직후와 달리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약 200만분의 1로 줄었고, 원자로로 냉각수의 주입도 계속되고 있어 최악의 사태인 수증기 폭발의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각수의 주입에 곤란이 발생할 경우 수소폭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고농도 오염수의 처리는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원전주변지역 30km내 약12만 명의 일상생활이 파괴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입은 피폭, 먹을거리의 방사능 오염, 환경의 오염피해 등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이 없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비참하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가져 온 이번 사고의 원인과 그 배경을 살펴보고, 앞으로 원자력의 이용과 그 한계에 대해 살펴 본다.

Ⅱ.미완성 기술의 한계와 경제성의 추구

1. 사고는 인재(人災)이다 ? 은폐?축소체질


원전사업자인 도쿄전력은 사고 직후부터 원전사고 원인을 '예상을 벗어나는 대규모의 쓰나미' 탓, 즉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라고 주장하며 사업자의 배상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 동안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이들도 도쿄전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사고 직후에 일본의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보안원 및 추진 측 학자들조차 주장했던 멜트 다운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었던 도쿄전력도, 6월 7일에는 멜트 다운보다 악화된 멜트 스루(Melt through)까지 인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 정부, 특히 원자력안전보안원도 사고척도(INES)를 초기의 레벨 4에서 5(3월 18일)까지 올린 후, 약 한달 후인 4월 12일에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7로 상향조정했다. 대기로 방출된 방사성물질의 양도 초기에 축소 발표됐다. 초기의 37만 테라Bq(베크럴)에서 6월 7일에는 77만 테라Bq로 수정 발표했다. 이를 종합하면, 수소폭발의 발생시점에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미 노심용융 및 레벨7의 사고규모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동안 고의적으로 사고 규모를 왜소화시키는 발표를 계속해 온 것이다.

수많은 은폐·축소의 발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피해를 가져 온 것으로 사고 직후 방사성물질의 방출량 및 예상지역에 대한 정보 미공개를 들어야 할 것이다. 초기 일주일 정도의 대량 방출은 지역주민의 피폭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혼란사태의 발생만을 염려한 채 방사능의 확산에 대한 예측계산장치(SPEEDI)의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전 반경 20km 남쪽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오염이 심한 북서쪽으로 피난해, 피난 전보다 더 높은 피폭을 받는 사례가 발생했다. 북서쪽의 주민들, 특히 임산부 및 어린이들의 신속한 피난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5월 3일 대량으로 공개된 예측계산장치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3월 15일 무렵 이미 북서쪽 지역의 오염이 심각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3월 11일 이후의 며칠 동안, 누구나 매스컴을 통해 원전 부지 내의 방사능 농도에 대한 수치를 한번쯤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사는 주변지역의 방사능 농도에 대한 정보를 들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전국의 방사성 측정전문가들을 후쿠시마현에 소집해 측정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 결과는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또 고정시설의 방사성 측정기기 및 지진계들이 정전 및 지진의 진동 등으로 작동불능이었던 것 같으나, 2004년부터 설치한 최신형의 지진계가 거의 기능하지 못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도 있다. 예를 들면 1, 2, 3, 4호기 중에 2, 3, 4호기의 지진동(動)에 대한 초기의 수치는 기록되어 있으나, 금후 논란을 가져올 1호기 지진동의 기록은 없다는 식이다.

원자로에는 수많은 배관이 연결되어 있다. 1호기의 경우 원자로는 직경 4.8m, 높이 약20m의 강철용기인데, 그 밑에는 제어봉을 삽입하기 위한 배관이 약 130군데, 그리고 측면에도 냉각재 주입 및 증기배출, 붕산수 주입 등을 위한 수많은 배관이 붙어 있다. 가동 후 40년이 되는 노후 원전인 1호기의 사고발생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쓰나미가 닥치기 전에 이미 지진의 진동으로 원자로의 주요배관이 파괴된 탓"이라고 주장한다. 쓰나미가 오기 전에 이미 진도 6규모의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에 붙어있는 큰 구경(口徑)의 배관이 파괴돼 원자로내의 냉각수가 격납용기로 대량 누출되고, 그 결과 노심용융이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3개월 후에 발표된 사고직후의 데이터(운전기록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격납용기의 온도 및 압력 급상승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사실은 배관의 파괴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도쿄전력은 이 사실을 계속 외면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로보트 등을 이용한 원전내부의 상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잔해로 어질러진 원자로 내부의 파괴상황을 모두 수소폭발의 영향으로만 치부했다. 따라서 1호기의 배관 파손도 지진의 진동이 아니라, 그 이후의 수소폭발의 영향으로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 정부의 사고검증위원회가 사고원인과 배경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올해중의 중간보고, 내년의 최종보고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이 위원회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결과를 기대하고 싶지만, 구성원을 보면 원전의 안전성을 둘러싼 주민소송에서 늘 원전사업자의 승소를 판결해 온 사법부 출신자와 고급관료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 과연 조사결과의 객관성이 어느 정도 보장될는지 의문이다. 만약 지진의 진동에 의한 파손이 사고원인으로 확인될 경우 '원전의 내진성에 대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해 온 원자력 추진파의 '안전신화'가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불충분한 대책에 의한 사고, 즉 '인재(人災)'임을 증명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힘(?)에 의해 조사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지진다발(多發)국인 일본에는 원전이 부적절하다는 점이 드러날 뿐 아니라, 충분한 내진성 확보에 따른 경제성의 결함이 부각돼 원전추진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2. 안전성의 강화보다는 경제성 우선


부근의 타사(他社) 원전들의 쓰나미 피해는 적은데 왜 유독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만 침수 및 대규모 사고까지 발생하였는지를 검토해 보면, 도쿄전력이 그동안 안전성보다 경제성의 제고에만 치중해 왔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1, 2, 3, 4호기는 해발 10m의 위치에 건설되어 있는데, 비상용 디젤발전기과 같은 주요설비를 밀폐성(방수성)이 높은 원자로건물이 아니라 낮은 터번건물의 지하에 설치하였다. 게다가 예상 쓰나미의 높이도 최고 5.7m로 낮아, 후쿠시마 제1원전부지는 쓰나미에 4~5m 침수했다. 이 때문에 지하에 있던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작동불능에 빠졌다. 1~4호기에서 약간 떨어진 5, 6호기의 경우, 해발 13m에 위치하고 있었고 지상 3m 정도에 있었던 6호기의 비상용 디젤발전기 1대가 작동하여 사고 직후에 곧 안정화를 꾀할 수 있었다. 1~6호기의 비상용 디젤발전기 총 13대 중에 작동한 것은 오직 이 6호기의 1대뿐으로, 해수에 의한 냉각방식이 아닌 공냉식의 발전기였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약 10km 남쪽에 있는 일본원자력발전회사의 후쿠시마 제2원전지역에도 예상 쓰나미 높이 5.7m를 넘는 최고 14m의 쓰나미가 닥쳤다. 그러나 주요건물의 대부분이 해발 12m이상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또 증기를 냉각시키는 바닷물을 취수하는 펌프의 주변에 측면 방호벽도 건설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치덕분으로 비상용 디젤발전기도 3대 중의 2대가 작동하여 큰 사고에 이르지 않았다. 건설당시에는 예상 쓰나미 높이도 4m에 불과하였으나, 2007년에 발생한 니이가타현 주에쯔오끼(中越沖) 지진을 교훈으로 추가적으로 강화하는 대책을 도입하였던 것이다. 북쪽의 오나가와(女川)원전을 소유하고 있는 토후꾸(東北)전력의 경우, 869년에 발생한 대지진까지 연구하여 예상 쓰나미 높이를 9.1m로 높혔다. 3월 11일의 쓰나미로 이 원전도 일부 침수되었으나 부분적인 피해에 그쳤다. 

도쿄전력의 기본적인 문제는 새로운 과학적인 지견(知見)이 밝혀져도, 경제성만 고려하여 원전의 안전성 강화를 애써 무시해 왔다는 점이다. 일본정부 규제당국도 도쿄전력과 마찬가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06년에 개정된 현행 내진설계 심사지침(指針)은 최대의 지진에 대비하는 게 아니라, 원전입지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2009년 경제산업성의 전문부회에서 지진전문기관의 책임자가 대지진과 높은 쓰나미의 발생가능성을 지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지침의 개정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없었다. 즉, 전력회사가 경제성을 고려하여 따를 수 있는 수준의 안전규제와 심사기준으로 되어 있으며, 그 이상은 전력회사의 자주적인 대책에 맡겨두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현행의 내진설계 심사지침을 보면, 예상을 넘는 대규모의 지진 및 쓰나미의 발생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의 리스크를 '잔여(殘餘)의 리스크'라고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대책의 도입 여부는 전력회사의 자주적인 판단에 맡겨 두고 있다. 안전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침임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전력회사에 최소한의 노력(?)을 요구하는 문맥을 삽입했을 뿐이다.

또 원전설계 심사지침에 따르면, 원전사고시의 '장기간의 전(全)전원상실'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원전에는 여러가지 계통의 전원 확보가 준비되어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도 배터리를 이용하는 8시간 이내에 전원을 복구하여 정상화할 수 있다는 안전신화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최장 14시간 동안의 전 전원상실이 발생해 안전신화를 붕괴시키는 사태로 되었다. 이와 같이, 안전성의 강화를 경시한 채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전력회사와, 원자력마피아의 일원으로써 개인의 출세 및 조직의 권한확대에만 몰두한 관료들의 자세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최대원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현재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관련 지침들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다

3. 부적절한 초기대응과 사고대책의 미비


수소폭발의 발생은 압력용기 내 공기를 배출하는 벤트 작업의 실패를 의미한다. 도쿄전력은 원전내부 작업환경의 악화로 벤트가 지체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원활하고 빠른 벤트가 수행되었다면 수소폭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들의 벤트 설비는 원전의 건설당시에는 없었으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의 영향으로 1999년 전후에 추가적으로 설치되었다. 하지만 원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의 유지와 비용문제 때문인지, 방출 전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대규모의 특수필터도 없이, 그저 공기만을 내보내는 배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시 벤트 작업에 필요한 밸브를 여는 도구조차 원전에 준비되어 있지 않아, 인근의 하청회사에서 빌려 사용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벤트 작업이 지체된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으나, 1호기의 경우에는 설비의 노후화에 의해 기기가 예정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도쿄전력이 방사성물질의 배출로 인해 차후 발생할 배상문제를 염려하여 벤트작업의 시기를 놓친 점일 것이다.

담수의 공급이 부족하면 바닷물이라도 긴급 주입을 하도록 매뉴얼에 작성되어 있으나, 바닷물의 염분 때문에 원자로의 재사용이 불가능해진다는 점 때문에 주입시기가 지연된 것 같다. 사용 후 핵연료의 수조의 경우, 전원을 상실한 직후 곧바로 소방용 호스라도 넣어 두었더라면 지속적인 냉각수의 공급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외부에서 헬리콥터와 소방차 호스를 이용해 주입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부적절한 초기대응이 중첩되어 수소폭발 그리고 주변지역에 대량의 오염과 피폭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3월 11일 오후, 도쿄전력은 비상전원을 확보하기 위해 인근지역의 이동용 발전차를 소집하였지만, 접근 도로의 정체 및 접속 전선 길이의 부족, 접촉 장치의 상이(相異), 부지 내에 지진으로 파괴된 잔해물의 산란(散亂)으로 전원차의 이동 곤란 등이 중첩하여 전원의 조속한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전 전원상실에 대비한 발전차의 부족 및 이동로를 확보하는 중기(重機) 등의 무배치 같이, 중대 사고에 대한 대책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특히 전선의 길이부족, 접촉 장치의 상이 등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조차 무시하는 안전신화의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후술하는 원자력마피아라는 이익공동체의 형성에서 그 배경을 살펴본다.

Ⅲ.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현황

1.원자력 재해난민과 피해지역의 확대


원전의 반경 30km 지역의 주민 약 12만 명 일상생활이 파괴된 '원자력 재해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반경 20km 내는 경계구역으로서 당국의 허가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경계지역으로 되어 있다. 반경 30km 이외의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방사능이 높은 소위 Hot Spot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도 이 지역의 주민들에 대해 세대별 피난을 권유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피난생활과 일상생활의 파괴에 주민들의 정신적인 피로는 심각하여, 지역주민의 자살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지난 7월초에는 30km 지역에서 93세 여성이 '무덤으로 피난 갑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도쿄전력에 의한 간접적인 타살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경 30km 내의 원자력 재해난민들은 피난소 등의 임시시설에 거주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일본 전국에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마을전체의 행정기관과 주거지역이 이동한 곳도 여럿이다. 특히 20km 내의 피난주민들의 경우, 원래의 생활로 복귀하는 것은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예를 고려하면, 언젠가(?) 원전사고가 수습되어도 방사성 세슘과 스토론튬에 의한 오염이 최소한 몇백 년 동안 인간의 거주를 제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수명 핵종으로 독성이 강한 플루토늄, 아메리슘(Am) 등의 초우라늄원소도 배출되었는데, 이러한 물질이 많이 낙하한 지역은 사실상 거주가 불가능할 것이다.

▲방사능의 이동 경로. 붉은색이 방사능 위험지역이다. 서북로를 따라 이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위험지역은 반경 30km를 한참 벗어난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Hot Spot). ⓒ장정욱 교수 제공 자료서 캡처.

사고 직후, 후쿠시마현(縣)내 주민의 연간 허용 피폭량의 상한치를 20밀리시버트(mSv)로 발표했던 일본 정부도, 학부모들의 항의로 청소년들의 연간 허용 피폭량을 1mSv이하로 한다는 노력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학교 운동장 흙의 교체 및 고압수 세정(洗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현은 약 203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의 건강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을 마련하였는데, 특히 약 36만 명인 18세 이하 청소년들의 갑상선암 조사를 생애에 걸쳐 정기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인근 미야기현도 전 주민의 건강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한정된 인원수의 원전 작업원들의 피폭검사도 진행 중이나, 기준치(250mSv)이상의 피폭자의 증가도 예상되므로 새로운 작업원의 확보가 문제로서 부각되고 있다.

원전부근뿐만 아니라 원전에서 약 200km 떨어진 도쿄시내에도 방사능이 높은 지역이 계속 발견되어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은 상황이다. 특히 도쿄 남쪽 시즈오카현의 차(茶)는 잠정 규제치를 넘는 방사능 때문에 출하금지가 되어 있다. 7월부터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후쿠시마산(産) 볏짚의 유통을 미리 막지 못한 탓에 방사성의 잠정 규제치를 넘는 쇠고기의 유통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원전사고 직후 채소류의 출하금지는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잠정 규제치를 넘는 쇠고기의 전국적인 발생은 일본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일본정부가 후쿠시마현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산의 볏짚을 사용하지 않았던 미야기·이와테·토치기 3현(縣)의 쇠고기도 출하금지조치를 취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의 방사능 오염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생선에서는 높은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일본정부가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당국인 일본 문부과학성에 검출기의 감도(感度)를 높일 것을 권유했을 만큼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생선의 먹이사슬 과정을 고려하면 사고 6개월 후에 서서히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일본국민 먹을거리의 중심인 쌀에 대한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수확기를 앞두고 일본 정부와 18개 지자체(縣 단위)가 2단계의 검사를 할 예정인데, 일본 본토 면적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중에 항공기 측정으로 이들 지역에 해당하는 면적의 방사능 오염 지도를 작성할 계획도 발표했다.

2. 원전부지 내의 사고수습 현황


원전 건물 내에 약 12만 톤에 달하는 고농도 오염수가 고여 있으며, 지진과 수소 폭발로 파괴된 시설의 잔해물 때문에 방사능이 대단히 높은 상태다. 원전 부지 내에도 고준위의 방사능을 띤 파편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8월 초에는 1호기의 배기통 밑에서 시간당 최소 10Sv 이상의 대단히 높은 수치의 오염장소가 두 군데 발견되었다. 벤트작업 시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이 부착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사람이 일순간에 6Sv를 피폭할 경우 치사율은 100%다. 근처의 1호기 건물 내부에 5Sv의 곳이 발견되었는데, 'Sv이상'이라는 표현은 측정 시에 사용한 기기의 상한치를 넘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시간당 6시버트(Sv) 이상의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의 8일 후 손 사진(왼쪽)과 26일 후 사진(오른쪽). 몸의 세포가 파괴돼 상처 재생이 불가능하다. ⓒ장정욱 교수 제공 자료서 캡처.

원전 내부, 특히 원자로 및 격납용기 부근은 방사선량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으로, 수습작업도 거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원자로 및 격납용기 안에 금속덩어리로 되어 있을 핵연료의 높은 붕괴열을 냉각시키지 않으면 다시 수소폭발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물을 계속 주입하고 있다. 동시에 1, 2, 3호기의 격납용기에는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질소를 계속 주입하고 있다. 사고 직후보다는 훨씬 줄었지만 원자로에서 방사성 물질이 증기와 함께 계속 방출되고 있다. 그런데 도쿄전력은 이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사용 후 핵연료 수조의 현황을 보면, 현재 2, 3호기는 순환냉각장치가 도입되어 물의 온도는 섭씨 40도 정도로 낮은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자로의 냉각작업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다. 격납용기부터 물로 채워 원자로를 냉각시킨다는 수관(水棺)작업 이 실패로 돌아간 후, 6월말부터 '순환주수(注水) 냉각장치'라는 한쪽 방향의 장치를 도입 가동하고 있다. 원전건물 내에 고여 있는 고농도 오염수를 정화하여 원자로의 냉각수로 재이용하는 장치다. 그동안은 냉각수로 인근의 댐에서 끌어 온 민물을 사용하였지만, 원자로 및 격납용기의 파손부분에서 누출되어 계속 늘고 있었다. 핵연료를 냉각시키자니 오염수가 늘어나는 곤란한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순환주수 냉각장치의 이용으로 추가적인 오염수의 증가는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정화작업을 거친 냉각수를 원자로에 주입하고 다시 흘러나온 오염수를 정화하는 반복과정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환 냉각장치'는 원자로 및 격납용기의 파손부분 수리가 전제조건이나, 이 기기들 주변의 높은 방사능을 고려하면 당분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순환주수 냉각장치는 오염수의 기름제거장치(도시바), 세슘의 흡착제거장치(미국의 KURION사), 스토론튬 등의 다른 방사성 물질을 응집(凝集)·침전(沈澱)시켜 제거하는 장치(프랑스의 AREVA사), 염분을 제거하는 담수화 장치(히타치)로 구성되어 있다. 각국의 장치를 급조한 탓으로 고장이 잦아, 높은 가동률을 기대할 수 없다. 그 결과, 7월말에는 다시 댐의 민물을 사용하게 되어 오염수의 양이 더 늘어 난 적도 있다. 8월초부터는 새로운 담수화 장치도 도입하였는데, 오염수의 담수화율을 40%에서 80%로 올릴 계획이다. 도쿄전력의 계획대로 냉각장치가 높은 가동률을 보이더라도 처리작업과정에서 방사능이 매우 높은 약 2000톤(드럼통 약 1,000개)의 슬러지와 60개(드럼통)의 제염 필터가 발생하는데, 이것들의 처리·처분도 앞으로 해결해야 과제다. 또, 현재의 순환주수 냉각장치 내구성은 1년 정도도 짧다. 원자로 및 격납용기 수리가 연기될 경우 새로운 정화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참고로, 도쿄전력은 올해 중 오염수 정화작업에 드는 비용을 531억 엔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편, 7월 말부터 비바람 방지 및 방사성물질의 방출을 막기 위해, 1호기의 건물전체를 덮는 특수천막의 건설을 시작하였다. 세로 47m, 가로 42m, 높이54m에 달하는 염화비닐제의 대형천막이다. 건물에 철골구조의 뼈대를 조립한 후, 천막을 덮는 방식으로 작업원의 피폭을 막기 위해 철골구조는 나사를 사용하지 않는 조립형을 도입했다. 격납건물이 파괴된 3,4호기에도 설치할 계획이다. 수소폭발로 인한 영향으로 건물자체가 약화되었던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의 수조도 7월말에 철근·콘크리트로 보강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방사성물질의 비산(飛散)을 막기 위해 원전건물이 들어 갈 정도의 컨테이너의 건설도 계획하고 있는 것같다.

이와 같이 사고발생 후 벌써 5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로의 안정적인 냉각상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진, 쓰나미, 태풍, 벼락등과 같은 천연재해를 무시하더라도, 여전히 수소폭발의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으며, 고농도 오염수에 의한 해양 및 지하수의 오염방지 등도 미해결의 상태이다. 다만, 8월초 도쿄전력의 발표에 따르면, 고농도 오염수의 해양으로의 유출을 막기 위해, 원전주위의 지하 30m깊이까지 철판으로 박아 일종의 방수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다행히 몇 년 후에 원자로내의 핵연료가 충분히 냉각되었다 하더라도, 일정한 형태를 갖추진 못한 상태에다 복수원전의 많은 핵연료량을 고려하면 끄집어내는 작업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조속의 사용 후 핵연료를 끄집어 낼 계획이지만, 이 또한 건물상부의 파괴로 운반 크레인을 새로이 설치해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 파괴된 핵연료의 수송장치의 개발 및 보관 장소의 연구 등도 불가결하며, 과연 도쿄전력 및 일본정부의 계획대로 20~30년 내에 폐로작업이 완료될는지 의문이다.

▲일본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전체를 덮는 천막을 설치 중이다. ⓒ장정욱 교수 제공 자료서 캡처.

Ⅳ.원자력마피아의 형성과 구조적인 안전신화의 탄생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도쿄전력과 일본정부가 늘 미시적이고 단편적인 대책에만 급급해 최악의 사고를 고려한 전체적인 예방대책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사고 원인은 결국, 대규모의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원자력이 미완성 기술로 인간의 제어능력을 넘는다는 점을 고의적으로(?) 무시해 온 맹목적 과학신앙 신자들의 이성 상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맹목적으로 과학신앙을 추구하는 전문가와 경제성만을 추구한 기업이 만들어 낸 상상이 원자력의 '안전신화'다.

1.국책민영의 원자력의 촉진제도


일본은 정부가 원자력 추진계획을 작성하고 전력회사에 이를 추종하는 형태의 소위 국책민영 체제를 갖췄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이 미완성 기술의 원자력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에는, 후술하는 제도들의 존재가 불가결한 요소였다. 정부가 정한 원자력 추진정책에 민간 기업이 추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즉, 정부의 보호 하에 전력회사는 막대한 현금수입과 거대한 조직형성을 보장받아 원전의 확대노선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첫째, 총괄(總括)원가주의를 반영하는 '전력요금제도'의 존재다. 이는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의 생산 및 판매에 투입된 총비용에 일정의 보수를 더하는 요금제도로 1964년에 도입되었다. 이 제도에서 전력단가는 '총비용×(1+보수율%)'의 금액을 전력량으로 나눈 값이다. 총비용이 많이 들면 전력단가도 높아지나, 후술하는 지역독점체제이므로 전력회사는 모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율이 일정하면,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원자력의 건설이 화력보다 더 이익을 가져 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심지어, 총비용에는 몇 년 후에 사용할 예정인 핵연료의 구입료와 건설 중인 원전의 비용까지 전액 또는 반액이 반영된다. 즉, 전력회사는 발전소의 건설비용을 15년 간의 감가상각제도로 회수하는데, 원자력의 경우 더욱 단기간에 비용회수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원전의 경우 15년 후에 연료비 및 유지비의 투입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으므로, 전력회사는 가능한 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덧붙이면, 이 전력요금제도가 있기 때문에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은 전혀 없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정책의 추진도 가능한 것이다.

둘째, 전기요금에 부가되는 전원개발촉진세를 이용하여, 원전입지 지자체에 막대한 교부금(보조금)을 지원하는 '전원(電源)3법제도'의 존재다. 1974년에 도입된 이후, 이 제도의 교부금과 원전의 고정자산세 수입은 낙후된 과소지역, 즉 원전입지 지자체 수입의 2~3할을 차지하며, 특히 초기 몇 년 간은 전수입의 5~6할까지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제도는 긴급성이 없는 공공시설의 건설에 한정한 사업을 중심으로 지자체의 재정지출 규모를 일시적으로 확대시킨 후, 교부금 및 고정자산세의 수입이 축소되는 15년 정도 후에 공공시설의 유지비 부담 때문에 곤궁해 진 지자체에 다시 원전 증설을 받아들이게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원전입지 지자체를 원전관련의 일시적인 수입이라는 '마약'을 제공해 중독시킨 후, 새로운 원전의 유치로 수입(마약)을 확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참고로, 2011년 전원3법의 교부금 예산은 1110억 엔에 달한다.

셋째, 원전사고 시에 전력회사가 부담하는 배상금액의 축소와 정부의 지원을 보증하는 '원자력손해 배상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원자력손해보험풀이 인수하기에는 위험도가 높은 지진·화산폭발·쓰나미 등의 피해보상은 일본정부가 '보상계약(일종의 재보험)'으로 부담하고, 피해보상금액이 1200억 엔이 넘을 경우에는 정부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상(正常) 운전 중에 발생한 원자력사고로 그 원인을 확정할 없는 경우에도, 정부의 보상계약이 보상한다. 정부의 보상계약은, 원자력에 대한 미지의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꺼려하는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책으로, 미완성 기술인 원자력의 한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원전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또는 보호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산업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피해보상액이 최소한 20조 엔을 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수백조 엔에 달할 가능성도 높다.

2. 전력판매의 지역독점체제


원자력의 추진과정에서 위의 세 가지 제도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전력산업의 '지역독점체제'다. 1951년에 도입된 지역독점체제는, 일본국토를 9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관할지역의 전력회사 1사 외에는 그 지역에서 전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했다. 1972년 이후, 오키나와의 반환으로 10개 지역의 10사로 되어 있는데, 일본의 전력회사는 발전·송전·배전을 모두 가진 수직적인 통합 형태를 보인다. 지역독점체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고정자본의 투자가 막대한 산업의 경우, 1개의 기업에 건설·운영케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자연(自然)독점'의 성립을 이론적 근거로 하고 있다.

한편 발전기술의 진보에 따라 1995년부터 일본정부도 지역독점체제의 완화, 즉 시장참가의 개방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10개 전력회사의 완강한 반발에 부딪혀 부분적인 개방에 그쳤다. 8월 현재도, 50킬로와트(kW)이상의 소비자, 즉 일반가정은 여전히 전력회사의 지역독점체제하에 있으며, 이미 개방된 50kW이상의 소비자에 대한 전력판매의 경우에도 다른 발전전문의 전력회사가 판매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역독점인 전력회사의 송전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 탁송(託送)비용 등의 문제로 새로운 전력회사의 참가는 매우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덧붙이면, 지역독점체제의 존재가 일본의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일본 본토는 동쪽지방은 전기의 주파수가 50헤르츠(Hz), 서쪽은 60Hz로 다르다. 이 때문에 동서가 전력을 융통할 경우 동서의 중간지점에 있는 주파수 교환시설을 거쳐야 한다. 현재 이 시설의 능력은 100만kW 정도로, 현재 도쿄전력의 전력공급 부족에도 불구하고 서쪽의 전력회사로부터 대량의 지원은 제한되어 있다. 몇 년 동안이나 교환시설의 확대문제가 거론되어 왔지만, 지역독점의 전력회사들은 100만kW의 교환시설의 건설비 부담과 입지확보의 곤란 등을 이유로 확대를 지연시켜 왔다. 무엇보다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교환시설의 확대로 50kW이상의 비규제의 전력판매에 타 지역의 독점 전력회사가 들어와 자기지역에서의 판매경쟁이 격화되는 것을 미리 막으려는 소위 '독점이익의 유지'였다. 이처럼, 도쿄전력 등의 지역독점적인 전력회사는, 약 60년 간에 걸쳐 경쟁자의 참가가 허용되지 않는 지역독점체제와, 일정이익을 보장받는 전력요금제도를 이용하여 규모와 조직을 확대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위 원자력마피아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3. 원자력마피아와 안전신화의 탄생


'원자력마피아'라고 불리는 이익공동체는 1)연구비와 기부강좌, 졸업생의 취직부탁 등을 기대하는 원자력전공의 학자 2)재직 중의 각종 접대, 퇴직 후의 재취업을 기대하는 관련부처의 공무원 3)거대한 설비투자의 수주에 매달리는 건설·전기기기 등의 산업계 4)전력업계의 막대한 광고비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언론 5)정치헌금과 선거지원을 기대하는 중앙·지방의 정치인 6)지속적인 지역독점체제의 유지를 노리는 전력산업계 7)전술한 전기요금제도의 존재 덕분에 융자의 리스크도 없이 이익을 확실히 보장받는 금융·보험업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력마피아는 원전반대파를 소외 및 배제하는 한편, 상호이익(?)의 유지 및 확대를 꾀하는 구조적인 형태를 강화하여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이다.

도쿄전력은 2010년 12월말 시점에서 자산 13조7951억 엔 규모의 세계 최대 전력회사다. 이익잉여금 1조8812억 엔을 포함하여 순자산은 2조9821억 엔에 달한다. 전력회사는 풍부한 현금의 운영을 통해, 대학 특히 도쿄대학을 중심으로 국립대학의 원자력공학과에 기부강좌 및 연구비의 제공을 계속해 왔다. 도쿄대학은 2007년 이후 도쿄전력으로부터 2억9500만 엔을 지원받아 기부강좌 등을 설치했다. 여기에는 전력회사 및 원자력 관련회사 출신들이 특임교수로서 강의도 담당한다. 도쿄대학의 원자력공학 교수들은 원자력위원회 및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의회 등의 위원으로 위촉돼 원자력추진 급선봉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규제당국 공무원들의 경우, 퇴직 후 도쿄전력를 비롯한 전력회사 및 원자력 관계 기업들에 재취업이 보장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도쿄전력의 고문이었던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廳)의 전(前) 장관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여론의 비판을 받아 취직 몇 달 만에 사직했다. 이 같은 고위 관료는 도쿄전력의 고문에서 상무, 부사장으로 진급하는 코스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을 정도다. 그 외 전력회사관련의 각종 단체에 낙하산 재취업이 있다.

도쿄전력은, 일본국내에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토요타와 1, 2위를 다툴 정도 규모인 연간 약 1조 엔의 설비투자비 및 원전의 유지관리비를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수주 측의 플랜트산업, 철강, 건설업 등 관련업체업의 내수사업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도쿄전력이 일본 산업구조의 꼭대기에 서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전력산업계는 일본 최대의 광고주로서 연간 880억 엔을 사용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2010년 약 240억 엔을 사용하였다. 토요타의 절반 정도 금액이지만, 도쿄전력의 판매지역이 한정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단일기업으로는 일본최대의 광고주라고 할 수 있다. 도쿄전력의 막대한 광고비를 끌어 오기 위해 후지TV는 도쿄전력의 전 회장을 감사로 채용하고 있을 정도다. 신문기자 등도 퇴직 후 전기회사들이 공동 운영하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취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력관계의 노동조합도 정치권의 국회의원들에게 정치헌금과 선거지원을 통해 원자력 반대 움직임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의 전력 관련산업 노동조합은 약 230개로 조합원수도 21만5000명에 달한다. 이들의 선거지원은 의원선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전해진다. 지방의원선거에는 노조원이 직접 출마하는 경우도 많으며, 일부 전력회사는 휴직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암묵적인 지지를 보낼 정도다. 2002년 경제산업성에서 잠시 주장되던 발송전분리정책의 시도도, 노조의 지원을 무시 못 하는 일부 정치가들에 의해 철저히 분쇄되었다. 심지어 전력업계는 이때 분리추진파의 관료들을 주요보직에서 배제시키는 상황까지 연출하였다.

금융·보험업계는 전력회사의 대주주로 투자를 하는 동시에, 사채의 인수 및 융자도 해 온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현행 전기요금제도의 존재로 주식배당 및 이자가 완전히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배상문제로 최초에는 도쿄전력의 파산 또는 국유화에 관한 논의가 일부 있었으나, 몇 조 엔의 사채와 융자를 하고 있던 금융·보험업계가 선두에 서서 이러한 정치권의 논의를 막았다. 투자자의 책임을 물으면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게 이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정부입장에서도 파산법을 적용시키기에는 제도상의 약점이 있었다. 전력회사가 발행하는 사채는 우선(優先)사채로서, 전기사업법에서 피해배상보다 먼저 보호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도쿄전력을 파산시키면 원전 사고 피해자를 위한 배상금의 확보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국민을 철저히 배제한 채 국책민영체제의 유지 및 확대를 목적으로 기존의 규제제도조차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이익공동체를 구성했다. 원자력 분야는 핵분열이라는 인간의 제어능력을 넘는 현상을 연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막대한 자본과 시설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 또는 대기업과의 대규모 지원이 불가결하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풍부한 예산을 이용하였던 과거 핵무기 개발시대의 군산(軍産)복합체처럼 연구자와 기술자들은 비밀주의와 특권적인 사고에 빠지기 쉽다. 현재 산관학(産官學)복합체의 형태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원자력 마피아는 새로운 과학적인 지견의 적극적인 채택보다는 공동체의 기득권 보호 및 확대에만 집중하고, 반대 주장은 철저히 배제하는 속성을 가지게 된다. 특히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경우, 원자력 과학신앙의 열렬한 신자로서 소아병적인 방어의식을 보인다. 원전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은 자기부정(否正)으로 직결되며, 나아가 이익공동체의 붕괴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어떠한 이유를 찾아서라도 자기들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식의 상투적인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 마피아의 폐쇄적인 조직 및 사고방식은, 남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자세보다는 오히려 외면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와 같은 이익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원자력의 안전신화를 창조하는 동시에, 안전성의 강화 등은 논의조차도 하지 않으려는 집단적 최면상태에 빠지게 된다. 일본의 경우, 피폭국으로서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정이 강했던 만큼, 다른 나라보다 더 철두철미한 안전신화의 창조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Ⅴ. 원자력 미래와 사고의 교훈

1. 원자력 르네상스는 부활하는가-원자력의 미래는?

2006년, 미국이 새로운 원자로와 핵연료사이클을 국제적으로 공동연구·개발하자는 GNEP(Grobal Nuclear Energy Parternership)를 제안하고, 미국 내 원전의 신설에 대한 재정적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세계 원자력 업계는 원자력의 붐이 다시 일어난다는 기대 속에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라는 조어(造語)를 만들었다. TMI와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로 장기간의 불황에 처해 있던 세계 원자력 업계는 2006년을 계기로 재편되어 GE·히타지, 토시바·WH, 미쓰비시·Areva의 3그룹을 중심으로 러시아, 한국, 캐나다, 중국의 기업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실제 종래부터 원전건설에 적극적인 중국과 인도에 더하여, 미국의 신·증설, 동남아시아 및 중동국가의 원전 도입발표로 마치 원자력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각국의 원자력 정책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기존의 원전 추진정책을 유지한다고 발표한 주요 국가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인도, 한국을 들 수 있다. 건설 중이거나 도입계획이 있는 국가는, 터키, 베트남,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리투아니아, 사우디아라비아, 핀란드 정도다.

반면 이미 알려진 것처럼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원전의 단계적인 철퇴 및 도입취소를 결정했다. 원전사고 후 미국에서는 건설을 결정하고 있었던 전력회사가 원전 2기를 돌연 취소했고, 나아가 새로운 건설허가의 신청도 없는 실정이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새로운 천연가스인 쉘(Shell)가스의 대량공급과 원전의 안전성 강화정책에 따른 비용증가를 들 수 있다. 즉,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낮아진 가스 화력에 비해, 건설비의 증대가 확실시 되는 원전의 경제성이 보다 낮게 평가된 것이다.

반면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경제성장과 인구증가에 따른 전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원전도입 자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급격한 원전 확대노선을 취한다. 중국의 경우 현재 13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28기를 건설 중이다. 중국 국무원의 도입계획에 따르면, 원전을 약 70기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국내외의 보도매체는 중국의 성(省)레벨이 발표한 원자력건설계획에 근거하여 200~300기를 건설할 것처럼 보도하고 있으나, 중국에서는 국무원이 인허가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과 터키는 원전도입을 위해 일본과의 교섭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금후 원전도입을 표명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미일의 원자력산업이 이미 접촉을 하고 있으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당초계획보다는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70년대부터 원전의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도네시아가 지열(地熱)발전의 개발로 에너지정책을 전환하였고, 태국과 말레시아도 도입계획의 지연을 표명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최소 14기의 원전 신·증설을 규정한 '에너지기본정책'을 수정할 계획이다. 일본 국내의 정치 상황 때문에 금후의 원자력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예측하기 곤란하나, 탈원전이 아니라 축(縮)원전으로 바뀔 것은 확실하다. 한편, 최근에 베트남과 터키 등에의 원전수출교섭은 계속 진행할 것을 표명하고 있다. 원자력산업계도 국내에서의 원전수주보다는 수출중심으로 경영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원전은 탈원전 및 축원전 경향으로 단계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완만한 증가경향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아시아의 경우, 원전건설시의 막대한 건설비를 수출국이 융자 또는 지원하지 않는 한, 국가들이 원전도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일본의 재정·경제 실태를 고려하면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원전의 확대는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프랑스가 개발한 원전(EPR)도 다른 원전보다 안전성이 높다고는 하나, 높은 건설단가 때문에 발전도상국이 도입하는 데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처분문제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 또는 처분문제는, 원자력이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 재처리를 하든 직접처분을 하든 간에 고준위의 방사성 폐기물을 격리된 장소(최종처분장)에서 최소한 수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데, 현재 최종처분장을 확정한 국가는 핀란드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자력 추진파들은 재처리를 통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3분의 1정도로 축소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막대한 비용의 투입과 중저준위의 방사성 폐기물이 몇 배나 늘어나는 문제는 간과한다. 게다가 이론상으로 3분의 1로 폐기물량이 삭감되어도 발열량은 크게 변하지 않으므로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내 핵연료의 발열량은 발전시의 0.1% 정도에 불과하나, 시간당 5톤 정도의 물을 발열시키는 열을 가지고 있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장수명 핵종인 플루토늄, 아메리슘과 같은 강력한 방사능을 가진 핵분열성 물질의 독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그해 말까지 14만 명의 인명을 빼앗아 갔는데, 이때 사용된 핵분열 우라늄양은 겨우 800그램(g)이었다. 또 1999년 9월 30일에 톳카이무라의 핵연료 가공공장에서 발생한 임계사고(핵분열사고)로 작업원 2명 사망, 1명 중상, 주민 약 670명의 피폭이 발생하였다. 이 사고 시에 핵분열을 일으킨 우라늄양은 0.001g 즉 1mg이었다. 원자로에서 갓 끄집어 낸 사용 후 핵연료의 경우, 배출되는 방사능은 20초 정도로 치사량에 달한다. 이러한 방사성 물질의 독(방사능)을 제거하는 기술은 현재는 없으며,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그저 폐기물을 특수보관장치에 넣어 지하에 격리보관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올해 초부터 미국과 일본의 정부와 기업이 중심이 돼, 몽골의 고비사막에 사용 후 핵연료의 최종처분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고 몽골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 최근에는 UAE도 우라늄공급의 확보와 함께 처분장 문제의 해결을 위해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 미일 양국은 국제적인 종합처분장으로 관리중심을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할 계획인 것 같다. 자국 내에서 최종처분장을 확보하지 못한 미일 양국은 이번 협정이 성사되면 사용 후 핵연료의 처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몽골 정부는 풍부한 우라늄 자원의 가공수출, 그리고 원전건설에 따른 전력 확보와 고용증대를 꾀하려는 듯 보인다. 또 국제적인 시설과 지원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현재 몽골 내에서도 유치 반대운동이 일어나고는 있으나, 몽골 정부관계자는 건설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들의 움직임은,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후진국을 매수해 국내에서 처분 곤란한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려는 행위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원전수출국이 원전수입국의 사용 후 핵연료를 인수하는 국가는 러시아뿐이다. 만약, 미일양국이 몽골에서 최종처분장을 확보할 경우, 양국의 원자력 산업은 원전수출경쟁에서 러시아에 지지 않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도 원전 수출시장에 참여해 사용 후 핵연료의 인수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은데, 미일양국은 몽골의 자연을 파괴하면서 국내문제의 해결 및 국제경쟁력의 확보를 꾀할 계획이다.

3.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교훈


일본의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 및 미나마따병과 같은 공해 피해자의 많은 이들이 사회적 차별을 피하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자손들이 받을 수도 있는 차별-특히 결혼, 취업 등-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부모의 배려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직후 약혼이 파기된 여성이 자살하는 사건이 보도된 적 있는데, 사고가 없었던 1970년대에도 비슷한 이유의 자살사건이 이미 있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유통, 대량폐기를 마치 풍요의 증거처럼 선전하던 기업의 영리주의와, 그들의 광고에 세뇌당한 일반 소비자의 무관심이 원전사고를 불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오감(五感)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방사능의 특성과, 보이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이기주의를 더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재미있고 화려하면 좋다는 사회 풍조의 확산 및 냉소주의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원전사고 발생 후 5개월이 된 지금 이미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는 관계없는 일로 잊혀진 것 같다. 지금도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에 유입되고 있고, 얼마 안 있어 생선 등을 통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동안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확대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것이 발전이라고 간주한 채, 정책결정에 있어서 기술적·경제적·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기 보다 여태까지 진행해 온 경위와 입장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책의 변경코스트와 책임문제를 추궁받는 게 두려워 단지 기존의 관행에 따라 확대노선만을 추구하는 안일주의가 팽배했다. 가령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고심할 뿐, 다른 대안을 고려하지 않는 경직성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한국정부가 취한 대책을 살펴봐도, 원자력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검토가 없고 임시방편적인 수습에 치중하고 있다.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력의 이용이 마치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과학종교(?)에 빠진 전문가를 비롯한 추진파들은 원자력의 치명적인 결함, 즉 방사성 제어의 곤란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공학이 시행착오의 학문이라고 하지만, 원자력의 치명적인 결함을 과학신앙으로 설명하는 것은 올바른 학자의 자세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핵물질을 취급할 때 위험하다는 긴장감, 즉 과학에 대한 겸허함을 지닌 상태에서야 겨우 다룰 수 있다. 반면 안전하다는 생각에서 다룰 경우에는 엄청난 괴물을 상대하게 된다. 원전사고의 발생확률이 10000분의 1, 아니 더 낮은 1억분의 1이라도 일단 발생하면 지구규모 또는 한반도 전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이런 기술의 이용이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문제를 간단히 들어보면, 현행 국내의 원자력 관련제도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의 제도를 베낀 것으로 일란성 쌍둥이나 다름없다. 전술한 전력요금제도, 즉 전력 3법제도, 배상보상제도 등이 대동소이하며, 안전규제제도도 흡사하다. 결국 일본 원전 사고의 원인을 고찰해 보면, 한국의 원자력정책 해결과제가 보다 명확해졌다고 할 수 있다. 각 제도의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회로 미루겠지만, 원전의 안전성 제고를 위해서는 원전입지지역의 행정기관 및 지방의회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 원전입지지역의 관계자 중에는, 원전이 교부금 및 세수(稅收), 그리고 고용의 창출을 통해 지역발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꽤 있을 것으로 짐작되나 과연 지속가능한 발전인지, 또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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