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 수입장벽 무너졌다…"오바마의 승리"

한미 FTA 재협상 체결…국회 비준 남아

자동차 분야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요구가 받아들여진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합의됐다. 한국 정부는 한국산 승용차 관세 폐지기한을 연장하는 반면 미국산 자동차의 관세는 바로 철폐키로 했다.

한국 정부는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산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한을 연장하고, 비자 재발급 시기도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자의 경우 FTA와 별도로 협상되는 조항이란 점에서 진정한 이익의 균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외신들은 이번 협상결과를 두고 일제히 "오바마의 승리"라며 미국이 자국 이익을 크게 얻어냈다고 보도했다.

한국차 수출 장벽 높이고, 미국차 수입 장벽 허물고

5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외교통상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한미 FTA 추가협상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재협상의 핵심은 관세철폐기한 조정이다. 당초 한국산 승용차의 미국 수출시 3000cc 이하 승용차는 즉시, 3000cc 이상 승용차는 3년의 기한을 뒀던 2.5% 관세의 철폐 기한을 양국은 5년으로 일괄 연장키로 합의했다. FTA 협정 발효 후 4년간 2.5% 관세를 유지하고 5년째 해부터 철폐하게 된다.

반면 미국산 승용차의 한국 수출 관세 8%는 발효 즉시 4%로 인하하고, 5년째 해에는 완전 철폐키로 했다. 미국산 승용차의 국내 수출 문턱이 낮아지고, 한국산 승용차의 가격경쟁력은 더 떨어지게 됐다.

예를 들어 2012년 1월 1일에 FTA 협정문이 발효될 경우, 2016년 새해부터는 변경 조항이 양국에 적용된다.

미국이 민감하게 반응했던 화물차 부문 관세철폐 기한도 조정했다. 당초에는 미국산 화물자동차의 관세 25%를 9년간 균등 철폐키로 했으나, 재협상에서는 발효 7년이 경과한 후부터 양국이 균등하게 관세를 철폐하기로 수정했다.

2012년 1월 1일에 발효가 됐다고 가정할 경우, 관세가 사라지는 기한은 2021년 1월1일로 같지만 관세를 줄여가기 시작하는 기한이 발효 직후에서 2019년 1월1일로 늦춰지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 화물차 업계에는 시간 여유가 생겼다.

전기자동차는 양국 모두 전기자동차 관세(한국 8%, 미국 2.5%)를 현재의 9년간 철폐에서 4년간 철폐로 단축했다. 다만 한국은 관세 8%를 발효와 동시에 즉시 4%로 인하한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기술력이 한국보다 높음을 감안할 때, 결코 한국에 유리할 게 없는 조항이다.

양국은 이에 더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도 도입키로 했다. 안전장치를 더 강화한 셈이다.

당초 양국은 모든 품목에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세이프가드 조항을 적용키로 했으나, 이번 추가 협상에서는 자동차 분야에만 한정해 세이프가드를 추가 도입키로 합의했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 분야에서 세이프가드가 발동된 전례가 없고, 우리의 수출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수입 급증(import surge)'으로 인한 세이프가드 발동 조건이 걸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차 안전기준 요건 완화

한편 이번 재협상으로 보다 많은 미국차가 국내 안전기준에 맞추어야 하는 부담 없이 수출이 가능해졌다.

양국은 당초 6500대로 한정한 한국내 연간 판매량 기준을 2만5000대로 올려, 이 판매수량 이하의 제작사에 대해서는 미국 내 안전기준을 충족해도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키로 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제작사의 자기인증제 하에 자율적으로 안전기준을 준수해 왔다. 이 때문에 한국으로 수출시 한국 안전기준에 맞춰 다시 제조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국내 연간 판매량이 5000여대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볼 때,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상당기간의 유예 혜택을 적용받게 됐다.

연비·이산화탄소(CO2) 등 환경기준은 미국차에 대해 한국정부의 강화된 기준보다 19%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주기로 했다. 작년 한국내 판매량이 4500대 이하인 자동차 제작사에 한하기로 했으나, 작년 미국차 메이커 중 이 기준을 넘긴 곳은 없다.

김 본부장은 "이 협의는 이산화탄소를 중심으로 한 온실가스 및 연비 규제와 관련된 것으로, 한미 FTA 협정문에 규정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와는 다르다"며 "미국, EU, 일본, 캐나다 등도 소규모 제작사에는 최소한의 시장접근을 보장해주기 위해 예외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5일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한미 FTA 재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 "우리 요구사항 관철해 이익 균형"

한편 한국 측은 미국에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기업내 전근자 비자(L-1) 유효기간 연장을 관철시켰다고 강조했다.

먼저 본협정에서 2014년 1월1일자로 관세를 철폐키로 했던 돼지고기의 '냉동 기타(목살, 갈비살 등)' 품목의 관세 철폐 기한을 2016년으로 2년 연장했다. 이에 미국산 돼지고기 냉동 품목의 관세율 25%는 2012년 16%로 떨어진 후 2014년에는 8%, 2015년에는 4%를 유지하게 된다.

김 본부장은 "돼지고기 21개 품목 중 냉동 기타 1개 품목이 우리의 대미 냉동 돼지고기 총 수입액 1억8000만 달러의 93.7%를 차지한다"며 "국내 양돈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을 추가 확보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2004년부터 칠레를 제치고 한국의 최대 돼지고기 수입국이 됐다.

의약품의 경우, 복제 의약품(제네릭 의약품)의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유예기간을 1년 6개월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오리지날 약의 특허권이 존속하는 기간 동안 국내 특정기업이 복제약 허가를 신청할 경우, 특허권자가 재산권 침해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할 경우 허가를 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그 동안 국내 제약업계는 특허만료 시간에 맞춰 미리 복제약 개발을 완료한 후, 특허 만료와 동시에 제품을 출시해왔다. 따라서 이 제도가 발효되면 국내 제약업계는 미국산 원제작자의 허가를 얻지 못하면 제조를 할 수 없게 돼, 그만큼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유예기간이 늘어난데 대해 김 본부장은 "11개 국책연구기관의 2007년 4월 분석으로 미뤄보면 3년간 유예 합의로 총 1100억~2382억 원의 기대매출 손실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리 업체의 미국내 지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L-1) 유효기간은 지사를 새롭게 파견하거나 이미 설립된 지사에 근무하거나 동일하게 각각 1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키로 했다. 그러나 이는 김 본부장 스스로 밝혔듯 한미 FTA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다.

국회 비준 남아

이번 합의문은 지난 2007년 6월 30일 서명된 한미 FTA 협정문에는 손을 대지 않고,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형식을 가진다. 기존 협정문 내용에서 수정된 내용만 추가 서한에 담아 양국이 사인하고 교환하는 형식이다.

다만 연비와 비자 연장 부문은 FTA와 별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별도의 의사합의록(Agreed Minutes) 형태로 반영키로 했다.

앞으로 절차는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비준동의가 남았다. 야당이 극렬히 반대하고 있는 정황이라 국내에서는 또 한 번의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재협상을 두고 미국 정부가 외교적 결례를 범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추궁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양국이 합의한 발표시기보다 이른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에 현지 기자들에게 브리핑해 관련 내용이 이미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재협상은 결국 미국의 일방적 요구로 시작됐고, 그 내용이 대부분 관철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승리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승리로 간주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협정"이라며 "한미 FTA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이 체결한 가장 큰 FTA로, 미국의 입장에서 매년 수출을 100억 달러 늘리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향후 협정의 의회 비준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미국 기업과 노동자에게 큰 승리"라는 데이브 캠프 차기 하원 세입위원장의 말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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