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야근…폐 잘라낸 SI개발자"

[IT 일상다반사] 개발자 양 씨, 회사와 싸우는 이유

지난 4월 1일, MBC <후플러스>는 충격적인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IT업체 N모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해 온 양모 씨(34세)가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은 것. 양 씨는 건강을 해친 근본 원인이 "개발자에게 부담되는 과도한 노동 시간 때문"이라며 산업재해 신청에 동의해줄 것을 회사에 요청했으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양 씨는 회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고됐다. 부당함을 느낀 양 씨는 회사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양 씨는 현재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된 야근수당과 체불임금 반환을 요구하는 민사소송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를 했다. 또 부당해고를 이유로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낸 상태다.

오는 9월 9일 공판을 앞둔 양 씨를 지난 13일 만났다. 양 씨는 회사뿐 아니라 힘이 없는 노동자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었다. 양 씨는 "나중에 자식들이 '아빠, 왜 해고당했어?'라고 물어볼 때 '나라에서 아무 것도 안 해줬다'고 답하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며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것도 안 바뀐다"고 강조했다.

양 씨의 과로가 그가 얻은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양 씨가 과로를 병원인으로 꼽은 이유는 들어봄직하다. 양 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회사에서 감당한 노동 수준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편 본지는 N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취재를 요청했으나 관계자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회사의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음은 양 씨와의 인터뷰 전문. (☞관련 기사: '일의 노예'… 한국의 IT개발자가 사는 법)

▲양 씨는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던 'IT산업의 주역'이다. 양 씨의 요청으로 정면 사진은 싣지 않는다. ⓒ프레시안(김봉규)

1년짜리 업무, 6개월만에 마무리…'미션 임파서블'

-과로로 인해 병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일을 얼마나 많이 한 건가?

"이 회사가 2006년 6월에 설립됐고, 나는 7월에 SI(시스템 통합) 부문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하는 프로젝트팀에 합류했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2006년 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1년 예정이었는데, 회사는 단 6개월만 주고 밀어붙였다. 외부 하청업체 두 곳이 '사람 잡는 프로젝트'라며 중도 포기할 정도였다. 1년짜리를 6개월만에 끝내야 했으니 야근이 일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팀원 대부분이 거의 매일 새벽 2~3시경에야 퇴근했다. 회사에 재직하는 동안 이런 프로젝트 3개를 맡았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 생활을 수 개월, 수 년 했으니 몸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지 않나."

-근무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나?

"내가 직접 기억과 지인들의 조언을 참고로 과거 근무 시간을 일일이 조사해봤다. 첫 프로젝트의 경우 2006년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간 월 평균 400~500시간씩 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 1768시간인데, 단 5개월만에 나는 2000시간 이상을 일했다."

-단축된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맡은 일의 성과물은 좋았나?

"그렇게 무리했는데 좋을 수가 없잖나. 쇼핑몰 프로젝트의 경우 2006년 12월말에 오픈했으나, 계속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사이트 안정화를 위해서 2007년 상반기까지 내내 시간외 근무를 더 해야 했다.

더구나 2007년 1월부터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한 상태였다. 기존에 두 가지로 나뉜 생산관리 시스템을 하나의 전산망에 통합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역시 1년은 잡아야 할 프로젝트를 6개월만에 끝냈고, 무리하게 시스템을 오픈했다. 역시 오류 때문에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입력 했던 재고가 갑자기 사라지고, 어떤 경우에는 두 배로 뻥튀기 되고…. 보다 못해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PM)가 담당 팀장에게 '도저히 오픈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일정을 늦추자고 했으나 회사는 그냥 '몸으로 때워라'며 밀어붙였다. 이후 역시 안정화를 위해 수개월간 제 시간에 집에 들어가질 못했다. 집에도 제대로 못 가고 찜질방과 회사를 오가기 일쑤였다."


-보너스나 성과급은 제대로 지급됐나?

"없었다. 오히려 프로젝트 실적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실적평가점수를 매번 나쁘게 받았다.

회사의 개인평가는 A, B, C 등으로 등급이 나뉜다. B가 기준인데 이보다 높게 평가를 받으면 성과급이 오르고, 낮으면 내려간다.

2006년 평가 결과가 B였다. 이후로는 매년 C만 받았다. 점점 연봉이 깎여나간 셈이다. 프로젝트 비용을 줄이려고 직원들을 무리하게 혹사시킨 게 회사인데, 책임은 혹사당한 개발자들만 졌다.

2008년 5월로 기억하는데, 이 때까지도 생산관리 통합 시스템 안정화가 안 됐다. 하루는 회사 전무란 사람이 와서 저와 다른 과장, 그리고 PM을 불러다가 '이 XX들아, 니들이 프로젝트를 똑바로 못해서 그래'라고 욕을 하더라. 우리가 어떻게 일했는지 뻔히 알만한 사람이 그러니 정말 화가 났다.

내 업무능력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쇼핑몰 프로젝트 당시 내가 업무 응용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업무에 적용하자 외부업체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회사에서도 내가 업무를 진행하는 동안 업무능력이나 태도 문제로 동료들에게 지적을 받은 적은 없다.

실적에 괘씸죄(?)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한다. 2007년분 개인평가서를 받고 납득이 가지 않아 이의제기서를 회사에 보냈다. 내 실적이 이렇게 나온 이유가 뭔지 알려달라고. 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데, 그저 회사에서는 연봉계약서에 사인하라고 강요만 했다. 받아들어야 할 연봉수준에 납득을 못하는데 어떻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나. 그래서 안 하고 계속 버티니 총무 팀장이 전화로 '사인 안 할 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어쩔 수 없이 사인해야 했다. 이런 일을 다음에도 또 겪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묵묵히 개발 업무를 계속 한 건가?

"아니다. 2008년 6월에 도저히 몸이 못 견디는 것 같아서 SI 대신 운영팀으로 보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새 팀에서 맡은 업무는 쇼핑몰 운영이었다. 그러나 여기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퇴근시간이 빨라야 10시였다. 팀원들 대부분이 막차를 타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집이 인천인 한 직원은 막차를 놓치면 그냥 회사에서 밤을 샜다.

하루는 전날 10시쯤 퇴근해서 다음날 출근해보니, 우리 팀장이 출근하자마자 화를 크게 내더라.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내가 퇴근한 후 팀장이 사이트에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라고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는데 사이트에 반영이 안 됐다는 거였다.

팀원들에게 물어보니 새벽까지 일해서 그걸 수정해놓긴 했는데, 이걸 적용할 외주업체가 아직 사이트에 이식을 안 했다고 하더다. 이런저런 사정을 내가 얘길했는데도 팀장은 계속 화를 냈다. 이에 나도 한 마디 했더니 그 후로 난 팀장 주도 하에 운영팀에서 왕따가 됐다. 바른 말 하고 손해만 본 셈이다. 그 뒤 몇 달 지나 2008년 10월경에 몸에 이상이 온 걸 알았다."


암일지도 모른다 해도 "꼭 가야 겠냐?" 소리만…

-몸이 나빠진 걸 어떻게 알았나?

"굉장히 피곤했다. 밥 먹다가도 졸고, 손님이 오면 얘기하다가 잠들어버리고. 아무리 자도 피곤함이 안 가셨다. 당시가 가을 무렵이니 쌀쌀해질 때인데 자고 일어나면 속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이 즈음 주말(금요일) 회사에서 정기검진을 했는데, 바로 다음주 월요일에 건강검진 기관에서 전화가 오더라. 다짜고짜 '암 환자시냐'고 묻더라. 멀쩡하다고 하니 'CA19-9 수치가 700이 넘었다'면서 당장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라. 이 수치가 당지질 수치인데, 통상적으로 종양을 표시한다. 보통 사람은 37 이하여야 하고, 말기 암환자도 300~400 수준이다.

충격적이어서 운영팀장에게 '암일 수 있으니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해서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다. 점심 때가 되니 팀장이 하는 말이 '너 거기 꼭 가야 되냐'는 거였다. 그때 일이 바쁘긴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래서야 되나."


-치료 경과는 어땠나?

"다음날 집 근처인 고대구로병원으로 찾아갔다. 내 기록을 보여주니 의사가 놀라서 '이게 뭐냐'고 하더라. 검진을 해보니 오른쪽 폐 아랫부분에 문제가 생긴 게 발견됐다.

처음에는 약물 치료를 했는데 염증이 줄어들지 않았다. 일단 퇴원을 해서 다시 업무를 봤다. 당시는 이미 몸이 안 좋았으니 야근은 안 했다. 2주가량 외래치료를 하다가 다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염증이 더 커졌다. 그래서 결국 12월에 입원했다. 하루종일 항생제를 달고 살았는데 차도가 없었다. 의사가 하는 말이 '도대체 젊은 사람이 몸을 얼마나 혹사했길래 항생제가 듣지를 않느냐, 몸의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서 치료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폐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검사를 해본 결과 소견은 '결핵성 폐농양'으로 확정됐다. 결핵균이 나오진 않았는데 조직 검사 결과는 결핵과 일치했다.

이후 연차휴가를 다 써서 다음해 2월에 회사로 복귀했다. 그런데 회사는 그 사이에 나를 운영팀에서 빼고 대기팀으로 발령냈더라. 그 때 '이제 그만두라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일주일 나갔는데, 몸이 너무 약해져서 '이대로 다니다가는 죽겠다' 싶더라.

결국 대기팀장에게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팀장이 '회사 설립 초기에 양 과장이 고생 많이 했는데 그만큼 대접 못 받은 것 알고 있다'면서 배려해줄테니 휴직하라고 했다. 그래서 2009년 3월, 6개월 휴직계를 냈다. 나중에는 6개월을 더 연장했다.

이 때 회사 인사담당자 김OO 차장이 '산재신청 할거냐'고 물어보더라. 결핵진단이 나오기 전에 병원 의사에게 '회사에서 과로를 많이 했는데 연관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 때 기억이 나서 '산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무튼 휴직을 하고 나니 뒤늦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나' 궁금해지더라. 이리저리 알아보니 결핵이 근무형태와 연관관계가 어느 정도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의료계에 계신 분들에게도 많이 알아봤다. 다만 그 분들도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이걸 갖고 산재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거다. 연관관계를 당사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하더라."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일이 하루 아침에 생길 수 있다." ⓒ프레시안
개발자의 편, 한국에는 없다

-그 때부터 산재신청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건가?

"그렇다. 일단 노무사를 찾아가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입사 후 참여한 3개 프로젝트마다 어떤 일을 했는지, 출퇴근 시간은 어땠는지, 초과근무는 어느 정도로 했는지를 다 정리했다.

새삼 놀란 점이 많았다. 일찍 퇴근한 날이래야 한 달에 하루이틀 회식 때문에 나간 게 전부였다. 발병 전까지 2년 동안 쉰 날이 20일 안쪽이었다. 추석이고 설이고 전부 출근했다. 2007년 8월에 아내가 출산했을 때도 그 출산휴가 사흘을 여름휴가로 보냈다. 난 그나마 나았다. 내 동료는 이틀 휴가로 만족해야 했다. 선거고 뭐고,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딨나?"

-당신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한 것 같은데, 이게 법적으로 효력이 있겠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 나도 안타깝다. 회사에 내가 만든 자료를 들고가서 일단 산재신청에 동의해달라고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회사가 인정하는 야근시간은 최대 월 16시간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회사를 다닐 때 아무 생각없이 썼던 각종 장부들이 기억나더라. 회사에서는 야근명부에 하루 2시간, 주말은 4시간만 기록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팀별로도 야근 기록 시간이 딱 정해져 있었다.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야근수당은 이 지침에 기록된 게 전부였다. 그나마 이것도 2007년 4월부터 지급된 것이다. 나는 2006년 7월에 거의 1년 간은 야근수당을 한 푼도 못 받았다.

당시 회사는 매달 초마다 A4 용지로 만든 출근부를 직원들에게 회람하게 하고 '출근, 휴가일을 확인해보고 맞으면 서명하라'고 했다. 출근부에는 평일 야근 시간이 일주일에 8시간으로 딱 정해져 있었는데 그걸 눈여겨 본 사람은 없다. 이 자료를 두고 회사에서는 '당신이 야근 8시간 했다고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나마 그 서명도 상당 부분은 대리서명이다. 회사 전무는 <후플러스>에 나와서 '야근하는 직원들, 일하는 것 아니다. 다 집안 일 하는 거다'라고 했다. 그 방송이 나온 후에 직원들에게 전화해보니 반응이 다 똑같았다. '그 XX, 죽여버리고 싶다'는 거다."


-관련 국가기관을 상대로 근무내역 자료를 얻으려고는 안 해 봤나?

"휴직기간이라도 연봉계약서는 서명해야 하잖나. 김OO 차장이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하더라. 난 수술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니 설마 개인평가가 또 나쁘게 나오겠나 싶었다. 그런데 역시 C가 나왔다. 그래서 손△△ 총무팀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 때 돌아온 답변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이건 내가 문서로 갖고 있다. 문서에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양 씨는 문서를 직접 보여줬다. 편집자.)

'과도한 시간외근무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관리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현장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다' '평가가 마음에 안 들면 원하는 평가를 해주는 곳으로 옮겨라.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한다' '개인평가 결과를 되돌리는 절차는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이런 문서를 보고 참지 못해 그해 11월, 노동부에 진정서를 냈다. 그런데 노동부에서 돌아온 답변도 황당했다. 증거를 나보고 갖고 오라는 거다. 내가 무슨 수로 증거를 찾나. 그래서 내가 '나라에서, 수사기관에서 좀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니 노동부에서 나의 출퇴근 기록을 회사에 요구하더라.

이 때 회사의 치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다닌 회사 본사는 출근할 때만 카드를 찍고, 퇴근할 때는 벨을 누르고 나온다. 나는 이제껏 편의상 그렇게 해놓은 건 줄 알았다. 아니었다. 직원의 퇴근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조치한 것이다. 결국 이 때 회사 인사담당자가 노동부에 한 답변이 '우리 회사는 출퇴근 기록을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노동부에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

올해 5월에는 부당 해고 때문에 회사를 형사 고소했다. 그런데 고소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회사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내놓지 않으려고 하고, 수사기관은 무조건 나보고 증거를 갖고 오라고 한다."


-국가가 무능하다고 생각하나?

"근로자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법에 위배되는 사항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해도 아무 것도 안 한다. '내가 야근수당 체불된 게 많다고 하면 회사에서 아무 말도 못하지 않느냐', '내가 보여주는 서류를 두고 회사에서 제대로 반박한 게 없는 것 당신들도 보았지 않느냐'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국가에서 하는 말은 한결같다. '당신이 입증해야 한다'는 게 전부다. 근로자는 소송을 하지 마라는 거다. 하다못해 나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데려다가 증언시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것도 안 한다. 회사에 불리한 건 안 한다.

하다못해 이런 얘기도 들었다. 노동부 근로감독관 하나가 '참여 정부에서라면 어느 정도 노력해보겠는데, 지금은 더 이상 할 방법이 없다'고까지 하더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게 이런 거다."


-노동단체나 정당을 찾아가봤나?

"힘이 돼 준 곳은 IT산업노조와 진보신당이었다. 실질적으로 상황을 바꿀 힘은 얻지 못했으나, 여러 모로 조언을 받았다. 정작 나서주기를 기대했던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별 관심을 안 보였다. 정치적으로 파급력 있는 사안이 아니면 안 나서려는 것처럼 느꼈다.

사실 승소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진보신당의 고문변호사와 면담했는데 '지금 선생님은 이길 생각을 하시면 안 된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비겁한 사회인지 소송 하면서 아시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희생해서 근로자들에게 실패로 교훈을 주는 게 얻을 수 있는 최대치다'라고 하더라.

변호사를 선임 못한 것도 승소 가능성이 낮아보여서 그런 것 같다. 실력 좋다는 변호사는 다 찾아다녔다. 그런데 열이면 열, 자기한테 이런 사건을 왜 갖고 오느냐고 화만 내더라. 나 홀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 것도 안 하면 안 바뀐다

-해고는 어떻게 당한 건가?

"올해 3월 휴직기간이 끝나고 나서 보니 여전히 몸 상태가 안 좋았다. 웬만하면 출근하려 했지만, 자칫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후플러스>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저와 같은 사례를 겪은 희생자 아내가 나온다. 제가 그 분 사례를 <후플러스>에 알려준 거다. 그 여자분 남편도 전산업무를 하던 사람인데, 나처럼 폐를 잘라낸 후 한 달 만에 출근했다가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병원에서도 '수술이 끝나고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출근 전날 '아직 몸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으니 더 연장하고 싶다'고 휴직원을 팩스로 보냈다. 회사에서는 다른 답변이 없었고, 그저 '복직기한은 4월 8일이다'라는 내용증명만 팩스로 돌아왔다. 휴직자는 사내전산망에 접속도 못 하게 하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도 알기 어려웠다.

이유야 어쨌든 계속 쉬고 있었는데, 5월 중순이 되니 4대 보험 쪽에서 차례차례 해고됐다는 연락이 오더라. 회사에는 아무런 통보를 못 받았는데 졸지에 실업자가 되니 황당했다. 지방노동위에 전화해보니 '사전 통보 없이 해고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근로기준법을 찾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제26조(해고의 예고)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를 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편집자.)

내가 개인적인 사유로 휴직한 것도 아닌데 회사는 내 상태를 알아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고, 내 해고를 사전에 통보하지도 않았다. 해고와 아무 상관이 없는 문서를 하나 보낸 뒤 해고한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 법정다툼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텐데?

"일단 전셋집을 줄여가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중이다. 다른 직업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지방노동위에서는 '결론이 날 때까지 다른 직업을 찾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 내가 이 사이에 다른 직업을 구해버리면 노동위는 '이 회사를 다닐 생각이 없었다'라고 판단해 기각해버린다는 게다."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들에게 한 마디만 해달라.

"나도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는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한 가정의 가장이고,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일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닥칠 수 있다. 나와 같은 일을 당하기 전에 여러분들의 권리를 미리 찾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안타까움이 많다. 사람들이 다 자기 자식들, 가족이 피땀을 흘려가며 야근하는데도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자신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도 못한채 봉사활동을 하는 걸 모른다.

내가 소송에 들어가니 옛 동료가 '이걸 왜 하냐'고 하더라. 그 양반, 지금도 새벽 3시에 퇴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시간 낭비, 돈 낭비 아니냐'는 거다. 포기해버린 거다.

'포기하든 말든 네 마음인데,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것도 안 바뀐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힘들다, 야근수당 안 나온다 해봐야 바뀌는 것 없다'고 했다. 비록 내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현실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싶다."


- 스마트 워크? 우선 현실을 보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스마트 워크' 진척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스마트 워크'란 탄력적인 재택근무를 뜻하는데, 출퇴근으로 인한 낭비를 줄이고 IT기술을 이용해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일하자는 취지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일터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말이기도 하다. 직원을 소모품 취급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스마트 워크'는 그저 말장난에 그칠 수밖에 없다. 무리한 야근,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 등 우리 일터의 현실을 다룬 과거 기사를 소개한다.

"소주 한 병 들고, 찾아 오십시오"
순진하면 사회생활 못 한다'는 사회가 정상인가"

"지옥이죠. 그래도 이 일이 꼭 마약 같은 걸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노가다', CG
방송사 VJ들 "우리는 언제까지 '걔네들'인가요?"
4대보험도 적용 못 받는 '자랑스러운 얼굴'?
'일의 노예'… 한국의 IT개발자가 사는 법

○ 독자의 목소리
"우리 아들은 노예가 아니다"
외국인 동료가 한국 회사에서 놀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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