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다고 함부로 먹지 말라…벌꿀 속의 독

[기고] '항생제 범벅' 벌꿀이 주는 교훈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동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으로 가자고 했다. 당시의 목축과 양봉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젖 또는 우유'와 '꿀'이 당시 사람에게는 최고의 먹을거리로 여겨졌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왕과 독재자가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하던 오랜 세월 동안 "쌀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소원이었다. 흰 쌀밥 같은 꽃이 핀다고 나무이름조차 이팝나무로 정했을 정도다. 고깃국도 귀하긴 마찬가지여서 겨우 삼복더위 때 개장국 먹던 것을 '보신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더 이상 쌀밥과 고깃국도 안심하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칼로스 쌀밥과 광우병 고깃국을 먹는 것"이 공포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유와 꿀도 마찬가지다. 농약, 유전자조작(GM) 작물로 만든 사료와 항생제·호르몬제·살충제 등의 약품을 가축에 대량으로 투여한 뒤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듯이 축산식품을 생산하는 탓에 우유의 위험성이 지적된 지는 이미 오래 됐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달콤한 벌꿀 속에 들어 있는 독(毒)이라고 할 수 있는 '클로람페니콜'이라는 항생제 성분에 관한 내용이다.

벌꿀도 항생제 '범벅'…도대체 뭘 먹나

최근 국내에서 시판 중인 벌꿀의 절반 이상(56.5%)에서 항생제가 검출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 9월 28일 "올해 5월에서 9월 중순까지 홍콩소비자협회와 공동으로 시판되는 23개 벌꿀 제품에 대해 항생제 잔류 검사를 실시한 결과 13개 제품에서 항생제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소비자시민모임이 "현재 벌꿀의 항생제 잔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정부당국을 비판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뒤늦게 "벌꿀 중 항생제 옥시테트라싸이클린의 잔류 기준을 0.3ppm(0.3㎎/㎏)으로 정했다"고 10월 6일 발표했다. 벌꿀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옥시테트라싸이클린이라서 다른 항생제의 잔류 기준은 발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 당국의 대책과는 동떨어져 있다. 옥시테트라싸이클린과는 달리 사용해서는 안 될 항생제가 양봉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난 2003년 식품위생법 등 일부 법률을 개정해 미승인 항생제의 잔류 기준을 0.01ppm으로 일률적으로 정했다. 0.01ppm이라는 강화된 기준을 정해 사실상 승인된 항생제 외에 다른 항생제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제도의 부재로 미승인 항생제에 대해서는 이런 관리의 기준 자체가 없다.

벌꿀에서 치명적 항생제 클로람페니콜 검출

소비자시민모임의 발표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8개 벌꿀 제품(35%)에서 사용이 금지된 항생제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클로람페니콜은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 억제, 간 손상, 그레이 베이비 증후군(Gray baby syndrome) 등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 심하기 때문에 아예 식용동물에는 사용이 금지된 항생물질이다.

클로람페니콜은 데이비드 고틀립(David Gottlieb)이 1949년 베네수엘라의 흙 속에 있는 방선균(Streptomyces)에서 처음 발견해 1960년대 팍 데이비스 사가 '클로로마이세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 항생제다. 클로로마이세틴은 회사 전체 이익의 3분의 1을 가져다줄 정도로 많이 팔렸다. 그러나 이 약을 먹은 사람들에게서 치명적인 간 손상, 재생불량성 빈혈, 골수 억제, 그레이 증후군, 암(백혈병) 발생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레이 베이비 증후군

클로람페니콜을 간의 효소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미숙아, 신생아, 영아에게 과량 투여할 경우 대사 장애로 이 물질이 체내에 축적돼 그레이 베이비 신드롬(gray baby syndrome)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병에 감염된 신생아는 저혈압, 청색증(혈액 내 산소 부족으로 입술, 손톱, 피부의 색깔이 파랗게 변하는 증상), 그리고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사정에도 팍 데이비스 사는 구매자를 증가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 결과 미국 의사들은 1년에 400만 명의 사람에게 클로람페니콜을 처방했다. 처방의 범위도 넓어서 여드름·후두염·일반감기 환자까지 이 물질의 처방을 받았다. 이런 항생제 오남용으로 미국에서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진단도 받지 못하고 클로람페니콜 독성으로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과학과 의학이라는 전문성으로 포장된 의원성(醫原性, iatrogenic) 살인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현재 클로람페니콜은 인간의 질병 중 장티푸스의 치료 등 극히 제한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인체 독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음식으로 섭취하는 식용동물에 사용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식용동물에서 클로람페니콜은 상당히 오랫동안 잔류하며, 또 지나친 오남용으로 내성균 발생률도 높다.

클로람페니콜 사용 금지에도 곳곳에 구멍 '숭숭'

한국도 1990년대 초반부터 소, 돼지, 닭, 양식 어류 등 식육동물에서 클로람페니콜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동물 약품 제조업체의 자발적 승인 반납 조치에 의해서 약품의 제조가 중단돼 반려동물(애완동물)에서도 실질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런 사용 금지 조치는 철저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 2,2-dichlor-N- [(aR,bR)-b-hydroxy-a-hydroxymethyl- 4-nitrophenethyl] acetamide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클로람페니콜 (Fomula : C11H12N2Cl2O5). ⓒ 프레시안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자료에 의하면, 2003년까지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된 축산물이 잔류 검사에서 적발되었다. 상대적으로 축산물보다 잔류 검사가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 수산물이나 벌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동물용 항생제의 수의사 처방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어 누구나 마음대로 항생제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국내 현실은 이런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고 있다.

수입식품의 상황은 국내에서 생산된 식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의 자료에 의하면, 2005년 1~12월에 대만산 냉동 필라리아, 인도네시아산 냉장 흰다리새우, 일본산 활참돔, 베트남산 냉동 홍다리새우얼룩살, 태국산 냉장·냉동 새우, 필리핀산 냉동 뱀장어, 방글라데시산 냉동 홍다리새우얼룩살 등에서 클로람페니콜이 검출되었다.

모세가 21세기에 태어난다면…

경제적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탐욕은 과밀 사육과 항생제 과다 투여라는 공장식 축산업과 공장식 수산업을 낳았다. 그 탓에 우리는 소비자의 안전과 환경·생태보전을 위해 고가의 장비와 고급인력을 동원하여 불법으로 투여된 클로람페니콜을 검출하기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

부유한 국가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가난한 국가의 빈곤층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듯이, 항생제 오남용과 내성균을 막기 위한 잔류 물질 검사 비용도 인간의 지나친 탐욕에 의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낭비의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낭비되는 돈이 사회복지와 환경·생태 보전을 위해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세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라도 지구의 미래와 환경을 지킬 수 있는 '21세기 탈애굽'을 시민의 손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달콤한 벌꿀 속에 들어 있는 치명적인 독 클로람페니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벌꿀에서 항생제가 검출되는 이유

벌꿀에 항생제 성분이 들어가는 것은 꿀벌에 항생제를 먹이는 것이 양봉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세균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이지 않으면 양봉업자 입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벌꿀에 대한 항생제 잔류 기준이 없는 현실은 일부 양봉업자들로 하여금 클로람페니콜과 같은 사용이 금지된 항생제를 쓰도록 부추기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양봉업자 황 모(65) 씨는 "사용이 금지된 항생제를 투여하는 일부 양봉업자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항생제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는 양심적인 양봉업자들도 많다"며 "이 참에 당국이 확실한 규제를 통해 '옥석'이 가려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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