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지키겠다'는 말의 허구성

[한미FTA 뜯어보기 37] 착시현상까지 동원하려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전래 설화의 주인공 남매는 깊은 산골에서 홀어머니와 같이 산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남매를 집에 둔 채 열 고개 너머 부잣집으로 품을 팔러 간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일을 끝내고, 아이들에게 주려고 쌀떡을 얻어 들고 서둘러 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다가 그만 호랑이와 마주친다. 호랑이는 "쌀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다. 오누이를 생각할 때 어머니는 죽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호랑이가 요구하는 대로 떡을 하나씩 내어준다. 그러나 호랑이는 어머니가 들고 있던 떡을 다 받아먹은 다음에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남매도 잡아먹으러 간다.
  
  쌀 포함한 한미 FTA는 국제법 위반
  
  이 설화에서 호랑이는 쌀떡도 빼앗아먹고 사람도 잡아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호랑이가 쌀떡도 먹고 싶긴 했지만 진짜로 먹고 싶은 것은 사람고기였던 것 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보여주는 태도가 마치 이 설화 속의 호랑이 같다. 미국은 한국에 쌀 시장을 활짝 열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한국의 관리들은 "쌀 시장은 지키겠다"고 우리 국민에게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설화 속의 호랑이와 달리, 국제 통상질서의 기본으로 돼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는 미국이 한국의 쌀 시장을 탐내는 것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한미 양국 정부는 한국의 쌀 시장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WTO 협정상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회원국은 WTO의 다른 회원국들과 지역무역협정위원회(CRTA)에 FTA 협정문안을 신속하게 알려 주어 회원국들이 각자 자국의 검토의견 보고서(reports and recommendation)를 WTO에 제출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가트 24.7(a)조). 그리고 모든 FTA는 WTO가 정한 FTA의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어떠한 FTA도 역외의 제3국(예를 들어 한미 FTA의 경우 중국과 같은 나라)에 대하여 이미 적용 중이던 관세나 교역 규정을 더 높이거나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가트 24.5(b)조). 이를 통상법에서는 'FTA의 역외무역 요건(external trade requirements)'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규정으로 인해 미국은 WTO 체제 속에서는 한미 FTA 협상에서 한국에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할 방법조차 마땅치 않다. WTO 양허표(C/S)에 의하면, 한국의 외국 쌀 수입에는 2014년까지 두 가지 종류의 쿼터(quota) 규정이 적용된다. 그 중 하나는 특정국 쿼터(country-specific quota)다. 이에 근거해 한국은 중국, 미국, 태국, 호주 등 네 나라에 대해 해마다 모두 142만 석(20만5천 톤)가량의 쌀 수입물량을 할당해주어야 한다. 중국 몫은 80 만 석, 태국 몫은 20만 석 등으로 연간 할당물량 자체가 명시돼 있다(WTO 한국 쌀 양허표 3.1조). 다른 하나는 세계 쿼터(global quota)다. 한국은 WTO의 모든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모두 776만 석(111만9천 톤)의 쿼터를 자유경쟁입찰 방식으로 내주어야 한다(WTO 한국 쌀 양허표 3.2조).
  
  이러한 WTO 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미 FTA에 쌀을 포함시켜 미국에만 한국의 쌀 시장을 완전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제법상 적법하지 않을 소지가 크다. 만일 한국이 한미 FTA에서 미국산 쌀에 대해서만 완전개방(관세화)을 허용한다면, 한미 FTA는 예를 들어 중국산 쌀이나 태국산 쌀의 한국시장 진입 기회를 현저하게 차단하는 경제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로 인해 WTO 규정이 구체적 수치로 보장하고 있는 중국과 태국의 대 한국 쌀 수출량이 침해된다면, 그것은 중국과 태국 등에 적용되는 현행 WTO 규정에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이럴 경우 한미 FTA는 WTO 위반이 된다. 또한 한국이 미국에만 쿼터를 더 늘려 주는 방식도 WTO 위반이 된다. 왜냐하면 앞에서 보았듯이 WTO 규정상 기존 쿼터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쌀 수출국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자유경쟁입찰 방식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은 한미 FTA에 쌀을 포함시킬 합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입장이다.
  
  착시현상 뒤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그럼에도 한국의 관리들은 이런 WTO 체제의 질서는 언급하지 않고 마치 자기들이 국내 쌀 시장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할까? 필자가 보기에, 그들은 다른 중요한 것들을 미국에 내주고 나서 나중에 면피를 하기 위해 마치 자기들이 쌀 시장을 지킨 것처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관리들이 미국에 쌀 시장을 열어주느냐의 여부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중요한 것들을 내주려 하느냐도 주의 깊게 살피고 감시해야 한다. 관리들이 미국이 내어주려는 다른 중요한 것들 속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들어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WTO 위생검역협정(SPS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되새김질 동물의 생명을 광우병(BSE)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에서 생산된 쇠고기의 수입을 제한할 국제법상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06년 3월 6일 한국 정부는 '가축전염병 예방법'상의 쇠고기 수입금지 대상지역에서 미국을 제외시켜 주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개 국이었을까?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등 세 나라로, 모두 광우병 비발생국이다.
  
  지난해 2월 오츠지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간광우병(vCJD,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희생자는 50대 남성이었다. 사망자는 다른 병력이 없었다. 수술, 수혈, 치과치료, 침치료 등을 받은 사실이 없었다. 도대체 고인은 어떻게 해서 인간 광우병에 노출되어 사망했는가? 희생자는 1990년에 영국에 일시 체류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영국은 광우병 감염 소의 숫자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영국에서는 1994년에 19살의 청년이 인간광우병에 처음으로 희생된 바 있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사망자가 영국 체류 중에 인간 광우병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처럼 인간광우병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생명도 위협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한국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는 이 병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말기엔 소 광우병과 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게 된다. 잠복기도 길어 때로는 감염된 지 몇 십 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발병하면 어김없이 3개월에서 1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그리고 "치료방법이 전혀 없다"고 덧붙이고 있다. 발병원인 물질인 프리온 단백질은 고기를 굽는 온도에서도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쇠고기를 끓이거나 삶아 먹어도 사실상 인간광우병을 예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인수공통 전염병의 의미를 정의하는 조항이 전염병예방법에 처음 들어간 시점은 2005년 7월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아직도 인수공통 전염병에 대한 지정고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대응태세가 미흡한 상황에서 농림부가 나서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절차를 적용해 일사천리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국이 미국을 쇠고기 수입금지 대상지역에서 해제한 지 불과 일 주일 뒤에 미국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의 농림부는 미국의 광우병 소가 1998년 4월 이전에 출생된 소라는 이유로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1998년 4월인가? 바로 이날부터 미국 정부가 광우병 유발 동물성 사료를 미국 소에게 먹이지 못하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전에 출생한 미국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금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쇠고기 수입 재개, 본협상의 전제조건이었나
  
  농림부 장관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고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은 '미국 정부는 광우병이 발생할 때에는 즉시 한국으로의 쇠고기 수출을 중지'한다고 규정했다(제4조). 동시에 한국 정부는 '1998년 4월 이후 출생한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때'에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제21조). 서로 어긋나는 이 두 조항을 통일적으로 해석하는 길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은 쇠고기 수출을 즉시 중지해야 하지만 광우병 발생 소가 1998년 4월 이전에 출생한 소라는 것을 미국이 입증하면 미국은 광우병 발생에도 불구하고 쇠고기를 한국에 계속 수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세 번째 광우병 소는 출생기록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미국은 소의 나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었다. 위 '위생조건'에서 허용한 치아감별법(dentition)은 어디까지나 30개월령 미만으로 판정하기 위하여만 적용될 뿐이다(제11조). 따라서 위 '위생조건'에 의할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쇠고기 수출은 중지되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죽은 미국 소의 이빨을 보고 이빨이 얼마나 닳았는지, 소가 생전에 뜯어먹었을 앨라배마 주 농장의 풀이 얼마나 거센지, 그래서 도대체 몇 년 동안 풀을 뜯고 씹어야 그런 모양으로 닳은 이빨이 될 것인지 등의 수수께끼를 기꺼이 미국 대신 풀어주었다.
  
  이제 곧 농림부 검역관련 공무원 8명이 16일 동안 미국에서 진행한, 37개의 소 도축 작업장 현지심사 결과가 발표된다. 그러면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위 '위생조건'에 의하면 '중대한' 위반 사실이 없는 한 미국의 도축 작업장은 심사에서 떨어지지 않게 돼있다(제7조). 게다가 미국의 소 도축장들이 뼈와 같은 광우병 위험물질(SRM)을 제거하는 안전조치에 대한 위반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 한, 그리고 '위생조건'의 위반을 '반복하여' 하거나 '광범위하게' 하지 않는 한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할 수도 없다(제21조).
  
  어른들이야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고 외면하면 그만일지도 모르지만, 학교급식의 쇠고기 반찬에 노출될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한국은 30여 개가 넘는 광우병 발생국가에 대해서는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하면서 유일하게 미국에 대해서만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려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지난 3월 14일 미국에서 열린 미국 무역대표부 주최 공청회에서 미국 축산업계를 대표한 잘레스키(D. Zalesky)가 한 다음의 증언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한국에 대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이 완전히 재개된 다음에야 한미 FTA의 1차 본협상을 개시하기 바란다(R-CALF USA expects the first round of FTA negotiations will not occur until the agreement to open to U.S. beef exports is fully implemented)."
  
  그런데 미국은 막상 위생검역상의 이유로 한국산 쇠고기의 미국 상륙을 금지하고 있다. 이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는가? 미국은 서른다섯 나라에만 육류(meat)와 가금류(poultry), 그리고 계란(egg)을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자격(Eligible Foreign Establishments)을 주고 있는데, 한국에는 이것을 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2005년 12월에 발간한 안내서 <외국의 통상환경>의 미국편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은 고기류, 가금류 식품의 수출국가로 승인되어 있지 않으므로 원칙적으로 한국산 고기류, 가금류 식품의 수입은 금지된다. 예외적으로 소량의 고기류, 가금류를 함유하고 Soup의 기본재료로 사용되며, 기타 소량 함유 제품에 한해 일정한 질병구제 조치를 취한 경우에만 수입이 허용된다."(563면)
  
  동북아 푸드 시스템에 대한 미국의 견제
  
  한국의 관리들이 쌀은 지키겠다고 하면서 미국에게 내주고 있는 것은 그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일까? 필자에게 한미 FTA는 한, 중, 일 세 나라가 형성하고 있는 동북아 푸드 시스템(food system)에 대한 미국의 견제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관리들은 이런 미국의 견제를 수용하려는 것이다.
  
  동북아는 인구조밀 지대로서, 쌀과 벼농사라는 공통의 식료와 농업분야가 있다. 이러한 조건을 지닌 동북아에서 농업협력과 식료교역은 동북아의 협력과 공존의 산파 역할을 할 것이다. 한신대 이일영 교수가 <창작과 비평> 2004년 가을호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동북아의 농업협력과 식료교역은 이미 크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이 농산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더 이상 미국이 아니다. 중국이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최대 농산물 수출시장이다.
  
  반면 미국 쌀은 1995년 WTO 출범 때부터 6년 동안 중국과 태국의 쌀에 뒤져 한국의 국제 쌀 입찰에서 단 한 차례도 낙찰을 받지 못했다. 한국이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입찰규격을 바꿔준 후에야 미국은 낙찰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2004년 쌀 협상에서 중국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특정국 쿼터제 구조를 관철시켜 50만 톤의 쌀을 10년 간의 쿼터로 배정받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로 하여금 수입 미국 쌀의 30%까지를 밥쌀용 쌀로 유통시킬 것을 의무화했다(WTO 한국 쌀 양허표 6.2조).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이고 비시장적인 조치는 한국 소비자들에 의하여 외면당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CAP)으로 인해 유럽 농산물 시장을 잃은 경험이 있는 미국 농업으로는 동북아 푸드 시스템의 형성으로 인해 동북아 시장을 잃는 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이 될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한국과 FTA를 추진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올해 연말 무렵 한국의 통상관료들은 한미 FTA 협상에서 자기들이 쌀은 지켰노라고 자랑스럽게 보고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 통상질서상 쌀은 처음부터 한미 FTA의 대상조차 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관리들이 쌀을 지켰다고 말할 기자회견장에는 인간광우병의 그림자가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축산업과 과일농업도 어디엔가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와는 달리 한미 FTA에서는 호랑이가 쌀떡을 찾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쌀떡은 이미 어느 정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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