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이란의 취약성은 사태 초기 이란 정권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이란 국민들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중대한 원인이 있다. 2018년 5월에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강력한 경제제재를 다시 부과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미국 주도의 강력한 제재로 인해 이란 경제는 피폐해졌고 의료 체계의 부실화도 가속화되었다.
이 와중에 이란 국영 방송의 언론인이자 의사인 아푸르즈 에슬라미는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그는 테헤란의 명문 샤리프 공대의 연구를 인용해 코로나 19 사태 종식과 관련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언급했다.
첫째는 이란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시" 확진자 12만 명에 사망자 1만 2000명이, 둘째는 "중간 수준의 협조 시" 확진자와 사망자는 각각 30만 명과 11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끝으로 "미협조 시 확진자는 400만 건이 발생하고, 이 가운데 350만 명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이러한 시나리오의 정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또한 이란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국영방송의 언론인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대외적으로는 경제제재 해제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 사태가 이란에서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이 효과적으로 이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재 완화가 필수적이다. 국제사회와 미국 시민단체들도 이란의 대참사를 막기 위해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19일 아랍에미리트(UAE) 소재 5개 회사가 이란의 원유를 수입했다는 이유로 이들 기업에 대한 제재를 부과키로 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17일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회사들을 같은 이유로 제재한 것에 이은 후속 조치이다.
미국의 대이란 강경파들은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보는 것 같다. 안그래도 이란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란은 최악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 중대한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인도적 참사를 최소화하는 데에 협조하기보다는 자신이 제시하는 조건에 이란 정부를 굴복시키거나 이란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인류 사회에게 진짜 대량살상무기가 무엇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 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2015년에 미국도 체결한 이란 핵협정이다.
그런데 이란이 핵협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유럽연합(EU)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확인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일방적으로 핵협정에서 탈퇴해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이란의 핵위협을 과장하면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이란의 대참사를 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행정부가 제재 해결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와 미국 내 양심적인 목소리를 외면하면 이란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생각을 달리한다면 코로나 사태는 이란과의 관계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이란의 잠재적인 인도적 참사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제재를 풀 수 있는 시급하고도 이성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신뢰 회복조치는 코로나 사태 수습에도 도움이 되고 그 이후 이란과 새로운 협상에도 디딤돌을 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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