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적이 아는 순간 거세게 공격해 올 것을 염려한 당부다. 부하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등 아군의 피해가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을 숨기려는 일본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났다. 정반대의 생각을 하면서.
팬데믹 코로나19가 일본 전역에서 스멀스멀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은 그 진실과 마주하려 들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다. 이상한 국민이다. 한국계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일본에서 100만 명에게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간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지원하겠다는, 참 고마운 뜻을 밝힌 것에 대해 많은 일본인들이 외려 이를 맹비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런 판단을 했다. 손 회장은 두 시간 만에 어쩔 수 없이 지원 제의를 철회했다.
손 회장의 제의에 대해 일본인은 "일본의 의료가 붕괴한다."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등의 부정적 반응을 쏟아냈다. 이런 반응이 물론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져 나올 경우 기존의 중증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던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받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의 실태가 까발려지는 순간 비이성적 공포로 인한 사회 혼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 검사 지원에 일본의 감염 실태 알리기 싫어 반대
그렇다고 해도 우리로서는-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터이다-정말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질병 특히 감염병 방역의 제1원칙은 투명성이다. 방역당국이나 시민이 감염병의 확산 실태를 정확하게 알아야 그것에 맞춰 올바른 방역 대책을 세울 수 있고 시민은 그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다.
잠시 숨긴다고 해서 영원히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두려움이나 혼란 때문에 검사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나중에 더 큰 혼란을 반드시 가져온다. 거대한 실체가 드러나면 선진국 일본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 누리꾼 등은 일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방치하겠다는 마인드 대단하다" "손으로 하늘을 가려봐라 그게 가려지나" "코로나를 고치는 것보다, 숨기는 것에 더 익숙하니" 등의 우려를 밝혔다. "감염자수 밝혀질까 봐 저런 제의까지 욕하는 거 봐라" "아베가 못하게 막았겠지. 실제로 100만 명 검사하면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니" "올림픽 못할까 바들바들 떠네" 등의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손 회장의 제의를 거부한 것은 누리꾼들의 지적대로 자신들의 실상을 일본 국민과 다른 나라에 알리기 싫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손 회장의 기부를 받아 1백만 건의 코로나19 감염 검사를 할 경우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 진실 드러내지 않으려다 팬데믹으로 키우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된 데는 중국의 책임이 크다. 12월부터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는데도 중국은 이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우한 지역 밖 중국 인민과 다른 국가들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수습하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자 비로소 이를 알렸다. 아미 때는 늦었다. 강한 전파력을 생각할 때 팬데믹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바이러스를 몸에 지닌 우한 시민들은 인접 지역으로 갔다. 우한에 있던 일부 시민과 외국인들은 외국으로 여행하거나 탈출했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이들 가운데에도 증상이 없는 보균 상태의 감염자가 다수 있었다. 특히 1월 중순에 있었던 춘절이 결정적 확산 모멘텀이었다.
감염병을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확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은밀하게 전파되는 것은 대놓고 전파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눈에 보이는 위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사람에게는 더 위험하다. 방심 때문이다. 치명력이 매우 강한 에볼라보다 은밀한 사생활을 통해 전파되는 에이즈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엄청난 사망자를 냈다.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가 물론 있다. 정치인들은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쟁 후보의 공격을 두려워해 질병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그렇다. 만약에 병을 앓고 있는 것이 드러날 경우 해고당하거나 무급휴직을 당한다면 증상이 매우 심하지 않는 이상 이를 숨긴다. 병원에 찾아가 진단검사를 받기를 주저한다. 서울 구로 콜센터의 대규모 집단감염의 배경에는 이런 행태가 큰 몫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약점 보이지 않으려는 일본인, 역사적 경험 때문
코로나19 검사를 거북이걸음으로 하고 있는 일본의 이런 태도는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요코하마항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 대처 과정을 보고 참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우리 언론 같았으면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벌떼처럼 일어나 연일 무차별 비판 사격을 가했을 텐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 등 제국주의 침략 전쟁 때에는 극히 일부 지식인들의 전쟁반대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 일본 국민은 "천황폐하 만세(덴노하이까, 반자이까)"를 외치며 황국신민으로서 전쟁의 부역자 노릇을 착실히 했다.
일본은 잘 아는 평론가들은 일본의 이런 모습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던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길들여온 생존 습성 때문이라고 한다. 무사들은 칼부림 때 약점을 보이면 죽는다. 이 때문에 약점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디엔에이(DNA)가 일본인들의 뇌 속에 박혀있다고도 한다.
대다수 일본 국민은 올림픽이라는 국가부흥 행사를 앞두고 코로나19 유행이 발목을 잡을까봐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감염병 위험에 놓여 있어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이를 드러냈을 때 자신에게 닥칠 집단따돌림(이지메) 등 신변 위험이 코로나19 감염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전쟁, 최후의 승자는 한국, 최후의 패자는 일본
이순신 장군의 유언은 적과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훌륭한 말이다. 하지만 "나의 감염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지 말라."나 "일본의 감염 실태를 다른 나라에 알리지 말라."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나의 이웃이나 이웃 국가들이 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염병은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세계 모든 국가 간 이해와 협력으로 확산을 멈출 수 있다.
일본은 대규모 지진, 태풍 등 국가 재난 시 ‘自助(자조)’ ‘共助(공조)‘ ’公助(공조)‘의 3助(조) 원칙으로 대응해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이해서는 이런 원칙이 사라졌다. 스스로 적극 나서서 검사를 받지 않는다. 자조의 원칙이 사라졌다. 지역사회에서도 감염자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 정부도 너무나 느긋하다. 물론 일본인과 일본 지역 사회, 국가 모두 속으로는 불안과 조급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감염병 대응은 총력전이자 속도전이다.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방역 대책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니 7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하지만 투명성과 드라이브 스루 검진 등 검사 방식·능력만큼은 미국, 유럽국가 등 선진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선진적이고 창의적이다. 이 때문에 최후의 웃는 자는 한국과 한국인이 될 공산이 크다. 반면 최후에 통곡하는 자는 일본과 일본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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