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수, 사회적 거리두기

[안종주의 안전사회]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하려면

코로나19 환자가 5천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30명을 훌쩍 넘었다. 환자수와 사망자 수는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사망자가 메르스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루빨리 확산세를 막고 환자수와 사망자수 증가를 크게 낮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국처럼 도시를 봉쇄하는 물리적 강제력을 발동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대한의사협회는 3월 첫째 주만이라도 모든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도 앞으로 1~2주가 확산세를 꺾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보고 국민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에 대해 적극적이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지속하기 어렵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과 달리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이를 강제할 수도 없다. 이 캠페인을 오래 끌고 가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한국판 우한 봉쇄

우리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체제가 다른 중국의 우한 봉쇄에 견줄 수 있다. 개념이 다른 한국판 우한봉쇄라고 할 수 있다. 즉 중국의 우한 봉쇄처럼은 할 수 없지만 일상 활동을 크게 제한하는 일종의 ‘자가격리’를 통해 효과만은 그것과 비슷하게 거두자는 전략이다.

이 또한 많은 고통과 사회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고육지책이다.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는 만큼 감염병 확산 차단이라는 열매를 확실하게 거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꼼꼼한 추진 전략과 계획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바이러스 감염병 재난 영화인 <컨테이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미국은 사람과의 접촉으로 삽시간에 전파되는 괴질 감염병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마을은 텅 비어 유령도시로 전락했다. 딸과 함께 겨우 살아남은 아버지는 집에 있던 딸이 보이지 않자 급히 밖으로 나가본다. 그리고 딸이 이웃의 청년 애인과 눈 위에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려는 순간을 목격한다.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 엄습해오는 시간 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둘 모두 감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키스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아버지는 딸의 남자친구 목덜미를 낚아채 내동댕이친 뒤 딸을 집으로 데려간다. 공포의 감염병 대유행 때에는 사랑도 잠시 멈추어야 했던 것이다. 이 장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로 연상됐다.

완벽하게 실천해야 효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벽하게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 어설프게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의사협회와 서울시, 정부, 그리고 감염병 전문가들은 만남을 자제하고 다중이 모이는 집회와 회의, 회식 등을 당분간 일체 하지 말자고 한다. 개인적 약속도 최대한 자제하자고 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 내지는 자발적 격리를 하더라도 직장을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 거래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집에서 가족 간 대화와 생활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칙 내지는 안내지침이 아직 없다. 감염병 예방과 확산에는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꼼꼼하고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먼저 회의를 하거나 둘 혹은 여럿이 만날 때는 서로 2미터 이상 거리를 두거나 마주 보지 않고 옆에 나란히 앉아 앞을 보면서 대화하자. 운전자가 옆 사람이나 뒷사람과 대화할 때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고 말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 한 사람이 감염돼 있다면 마주 보고 대화할 경우 전파 위험성이 높다. 바이러스 전파 가능 거리, 즉 침방울이 튈 수 있는 거리에서는 얼굴을 마주보지 말자.

사회적 확산이 심각한 상태라면 <컨테이전>의 장면처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친구와 직장동료,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이들이 감염원이 된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는 입증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29일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WHO-중국 코로나19 공동연구 최종 보고서’를 보면 WHO가 중국에 파견한 각국 전문가와 중국 보건당국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이 광둥성과 쓰촨성에서 발생한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환자 1836명 중 1308명이 집단 발병 사례(344건)이며 두 지역에서 78~85%가 가족 간 전파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전파가 가족끼리 또는 회사 동료, 같은 신도, 집단생활을 같이 하는 환자와 복지시설 종사자, 수용자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처음 만났거나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 전파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인 며느리를 둔 70대 할머니, 45일 된 아기 등도 가족감염 사례였다. 가족 내 한 사람이 걸리면 거의 대부분 다른 가족도 코로나19에 걸렸다.

가족이나 지인, 동료, 친구, 애인 간 거리두기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감염 확진자와 스쳐 지나가거나 이들과 함께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감염된 사례는 보고된 바가 아직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우한에서도 별로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국 가족이나 지인, 동료, 친구, 애인 간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평소에는 친밀한 거리두기를 한다. 1미터 거리 안에서 또는 그보다 더 가까이서 서로를 마주보고 말하거나 밀접한 접촉을 한다. 한 사람이 걸리면 다른 사람도 쉽게 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벽하게 하려면 서로 믿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일주일이나 2주일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최근 어느 회사 식당에서 식당 테이블의 한쪽 면에만 사람이 앉아 식사를 하는 풍경이 많은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 일반 가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천을 하거나 가족 한 사람씩 차례로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잠잘 때도 같은 침대를 쓰지 않거나 나란히 자지 않고 각 방을 쓰는 것이 좋다. 각 방을 쓸 형편이 안 되면 최대한 떨어져서 자야 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면 가장 하기 힘든 것까지 하는 열성을 보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주고 있는 충격파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중국이든 우리나라에서든 코로나19 유행 때 철두철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수건 등도 따로 쓰는 등 자가격리자처럼 생활했더라면 가족 간 전파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만남 자체를 줄이고 만나더라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핵심이다. 또 어쩔 수 없이 가까이서 마주 보며 대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마스크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에서 업무상 의견을 주고받거나 보고·지시할 때 또는 상담 등을 할 때 최대한 얼굴을 마주 하지 않고 일을 볼 수 있으면 최상이다. 교육이나 교습을 할 때도 강사는 학생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말해야 한다. 기자회견 등 때도 마찬가지다. 3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면 마스크를 쓰고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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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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