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더케이손보 합병...노동자 보호는 어디에?

[삶은경제] 회사분할, 대주주 변경 때 고용안정 법제화 필요

'이 글 만큼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칼럼 고발과 사모펀드 규제완화 참사가 들썩일 때 곁에서 휘몰아친 일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자회사인 더케이손해보험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했다.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교직원공제회는 올해 1월 16일 사무금융노조 더케이손해보험지부와 회사 매각에 따른 고용안정협약안을 잠정 합의했다.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합의한 고용안정협약안을 교직원공제회는 1월 22일 일방 파기했다. 예비 인수자인 하나금융이 합의한 내용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때 교직원공제회와 하나금융은 '용역, 아웃소싱은 노동조합과 협의하며 인력 이동이 수반되는 용역, 아웃소싱의 경우 노사 합의를 통해 시행한다'는 '제8조 업무, 인력의 위탁'을 삭제했다. 설 연휴 직전이었다.

맘 편치 못한 설을 보낸 직후인 1월 28일 여의도 교직원공제회 앞에서 노동자들은 '외주화 아웃소싱 노동자는 반대한다'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주, 전주 등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설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왔다. "원래 약속한 고용안정협약을 지켜달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진짜 몰랐다"며 우린 분에 차 울며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직전에는 총선에 나가는 차성수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무작정 찾아가 만났다. 차 전 이사장은 "잠정 합의를 한 게 저희의 잘못인거 같다. 저희가 얼마나 힘들었냐면…"이라고 장황한 설명을 하다 "노동자가 지켜야 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저희도 최선을 다해 보완하겠다"고 예비 의원처럼 말했다.

2월 5일 교직원공제회와 하나금융은 고용안정협약 제8조를 ‘용역, 아웃소싱의 경우 노동조합에 30일 전에 통보하고 사전 협의를 통해 시행한다’로 고친 새 안을 보냈고 더 이상의 수정은 없다고 했다. 합의는 협의로, 협의는 통보로 격하했다.

기업의 대주주가 바뀌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불안과 공포, 그리고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매각 과정이 길어질수록 누가, 어느 부서가 구조조정 된다는 근거 모를 소문만 무성해진다. 우릴 버리는 것이냐며 울분에 찬 이가 많지만 실적 향상이든 승진이든 새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도 없지 않다.

애당초 기울어진 운동장의 밑단에서 위태로운 싸움을 벌이던 노동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과 밖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되는 거냐며, 노조가 우릴 지켜줄 수 있는 거냐며 밤새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잠 못 이루는 누군가도 있다.

이 와중에 온갖 상상력을 담은 기사들은 쏟아진다. 언론의 속성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라면 불안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현 위치를 지킬 강한 명분과 동력이 없다면 운동장에 서 있는 것조차 버겁다.

그렇게 2월 10일 더케이손해보험 노동조합은 사측의 최종 제시안을 조합원 찬반 투표에 붙였고 결과는 통과였다. 제8조가 살아난 의미는 있지만 그 효력은 충분치 않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회사 매각 과정을 그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은 2월 14일 교직원공제회와 더케이손해보험 주식 인수 계약을 맺었다. 이제 금융당국의 대주주 변경 승인이 남았다. 하나금융이 최종 인수 이후 어떤 경영에 나설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노동자에게 견제 받지 않는 외주화, 아웃소싱 권력을 쥐고 싶어 한다는 것.

2007년 기간제법 시행 이후 민간 영역은 사용한지 2년이 지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외주화를 택했다. 그렇게 최저임금 수준의 민간 영역 간접고용은 폭증했다. 콜센터와 IT부문은 외주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더케이손해보험은 콜센터와 IT부문 대부분이 직접고용이다.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선거 때만 되면 '내가 전태일이다'라며 노동공약을 내세우는 후보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도 그랬다. 대게 이런 결심의 유효기간은 짧다. 국회에 들어가면 피감기관의 대관에 휘둘리거나 정치 레토릭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는 경우가 많다.

총선 노동 후보의 결심을 지속 확인하기 위해 요구한다. 회사분할, 대주주 변경과 관련한 고용안정 제도가 국내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근로기준법에 '경영상 이유에 의한 지배구조 변동 제한'을 신설해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고용안정협약을 법제화하고 단체협상과 같은 노동계약은 승계되도록 해야 한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에 금융보험·서비스업의 도급, 재하도급 금지 대상을 확대해 비정규직 대량 생산을 막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모회사 및 원청기업의 주의의무에 관한 법안'처럼 하청 등 전 사업장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법 개정에 앞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은 '하나금융은 불안정 노동을 가중시키는 외주화를 시도하지 말라'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건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힘이 들지라도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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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정책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오기 전에는 만 8년 정도 기자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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