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에너지는 고용 창출 에너지"

<시민과학자를찾아서4> 인하대 손충렬 교수

배럴 당 50달러를 넘는 고유가 추세가 한풀 꺾인 듯하더니 다시 1주일 만에 급등하고 있다. 1970년대 이미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은 뒤에도, 여전히 우리 정부는 국제 유가의 추이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현실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발 빠르게 '석유 시대' 이후를 준비하고, 이웃하고 있는 일본, 중국이 '에너지 외교'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프레시안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펴내는 <시민과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연속 인터뷰 '시민과학자를 찾아서'는 네 번째로 인하대학교 손충렬(58) 교수를 찾았다. 그는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의 위기를 오래 전부터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재생가능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용할 것을 앞장서 주장해온 과학기술자이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이는 풍력 발전 분야의 전문가이자, 국내 대안 에너지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에너지대안센터가 만들어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독일은 정부가 일관성있는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해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며 "독일 등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급성장하는 데 자극 받은 스페인은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풍력 발전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 2위의 시장으로 부상했고, 자체 기술력도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사례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초기에 성장하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미국이 제너럴모터스(GM) 등 초국적기업을 앞세워 인수ㆍ합병을 통한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 독점에 나서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대표적인 석유 메이저인 셸도 1999년 독일에 세계 최대의 태양광 전지 공장을 설치하는 등 발빠르게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하면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마저 GM이나 셸과 같은 선진국 초국적기업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풍력 발전의 경우에만 한정할 경우, 우리나라도 기술력은 꽤 확보돼 있다"며 "문제는 확보된 기술력을 민간으로 이전해 상용화시킬 수 있는 단기적, 중장기적 전망이 결여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을 좇아 기술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는 "국가 차원의 또 동북아 차원의 재생가능 에너지 시장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유럽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단순히 환경적인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런 경험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지원도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며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에 체계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고, 그것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에 풍력 발전 단지를 조성하고, 전북에 풍력 산업 단지를 육성한다면 전북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8월24일 인천 인하대학교의 손충렬 교수의 연구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더 늦기 전에 에너지 교육 서두르자"**

프레시안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시민과학자를 찾아서'는 에너지 위기에 관심이 높아진 탓에,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기술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고 계신 손 교수님을 인터뷰하게 됐다. 우선 지금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손충렬 : 고유가는 이미 예견된 상황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대안센터는 이미 1998년부터 석유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화석 연료 체제의 위기에 대해서 줄기차게 경고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를 안고 현재의 고유가, 에너지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 사전에 예측하고 경고했던 문제에 대해서 이제 와서 야단법석을 하는 것이 답답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만들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서 여기까지 왔다.

프레시안 : 여전히 시민들의 에너지에 대한 인식은 척박한 것 같다. 정부의 대응도 그다지 긴박하지 않다.

손충렬 :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 고유가를 보면서 시민들도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어느 정도 인식을 했을 것이다. 당장 생활의 문제가 되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미봉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나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활동을 했기 때문에, 유럽의 상황을 소개하겠다. 일단 그 쪽 시민들은 에너지를 아껴 쓰는 습관이 철저하다. 이런 점은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는 미국과 대비된다. 독일 시민들은 내가 없는 장소의 전깃불을 끄는 일이 상식처럼 돼 있지만, 우리나라 시민들은 미국의 모습에 더 가깝다. 독일에서 에너지를 아껴 쓰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이루어지는 교육의 덕이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교육이 대단히 시급하다.

***"오일 쇼크 이후 풍력 에너지에 대한 '반짝' 관심, 나중에는 시들해져"**

프레시안 : 시민들의 인식 전환과 함께 정부 정책도 중요한 것 같다.

손충렬 :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고유가 상황을 맞이해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에너지 절약으로, 연간 30억 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정부가 그 비용을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 투자할 의사가 있는가? 이처럼 정부도 단기적인 대응에만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환경단체나 여러 전문가들은 줄곧 정부가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손충렬 : 일단 내가 잘 알고 있는 풍력 에너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에 세계적으로 풍력 에너지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놀랍겠지만 당시 미국과 우리나라도 풍력 에너지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이런 관심 탓에 그 시기에 풍차 등으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중소기업들이 풍력 발전 설비를 세계 시장에 공급했다. 그런데 오일쇼크가 끝나고 1980년대 '저유가 시대'가 되자 갑자기 모든 관심이 중단됐다. 물론 우리나라도 풍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끊었고.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우선 덴마크는 풍력 에너지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계속 투자를 했다. 거기에는 덴마크의 풍력 발전 분야에 중소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던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도 덴마크에서는 풍력 발전 분야의 3분의 2 이상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독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로 '에너지 전환' 필요성 대두"**

프레시안 : 현재는 독일이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손충렬 : 그렇다. 독일이 재생가능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폭발적인 계기'는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독일 정부나 시민들은 원자력 발전이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더구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연정을 하면서, 원자력발전을 폐기하고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의 '에너지 전환'은 현재만큼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독일 정부가 재생가능 에너지를 위해서 한 일은 어떤 것인가?

손충렬 : 독일 정부는 크게 세 가지를 축으로 움직였다. 원자력 포기,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향상이 그것이다. 우선 1990년대 초에 재생가능 전기 의무 구매를 규정한 '전기매입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전력 공급 회사가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소매가격의 약 90%로 구매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채산성이 있는 풍력 발전의 경우에는 크게 증가할 수 있었다. 풍력 발전은 199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거의 2배씩 성장해, 2000년말 독일은 세계 최대의 풍력 발전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전기매입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태양 에너지의 경우에는 그 증가 추세가 눈에 띠게 증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2000년 '재생가능에너지법'이 통과됐다. 이 법은 재생가능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전기 판매 회사가 적정한 값에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했다. 특히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사들이도록 규정해, 독일은 향후 태양 에너지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이런 방안들을 통해서 당장에 시장 원리를 적용했을 때 버틸 수 없는 재생가능 에너지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좀더 정확히 말해 이것은 국민들이 지원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오른 전기료를 기꺼이 부담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선택을 독일 국민들은 수용한 것이다.

***"90년대 중반 시작한 스페인은 재생가능 에너지 시장 2위"**

프레시안 : 스페인도 풍력 발전에 상당한 투자를 해 성공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손충렬 : 최근 스페인이 재생가능 에너지 시장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미국과 덴마크가 세계 시장의 1, 2위를 차지했는데, 최근에는 독일과 스페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도 독일의 적극적인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을 보면서 1996년부터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역시 1990년대 중반부터 재생가능 에너지 육성을 외친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것은 스페인의 발전 전략이다. 스페인은 풍력 발전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우선 대단위 풍력 발전 산업 단지를 조성해 덴마크 기업을 유치했다. 그리고 3~4년 동안 덴마크 기업으로부터 풍력 발전 기술 이전을 시도해, 독립을 모색했다. 이제는 자체 기술을 축적하고 독자적으로 영업하는 기업들이 아주 많다. 최근에는 외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며,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다.

프레시안 : 그래도 덴마크는 여전히 풍력 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손충렬 : 덴마크에서는 최근 해상 풍력 발전 연구개발에 주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륙의 풍력 발전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해상 풍력 발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해상 풍력 발전은 초기 투자비가 비싸지만, 육상 풍력 발전보다 중장기적인 경제성은 훨씬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도 최근 늦었지만 해상 풍력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벌써 30여년 이상 재생가능 에너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그렇게 다른 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손충렬 : 그들은 바로 앞의 문제에 급급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것이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에는 이미 6~7년 전부터 해상 풍력 발전을 위해,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철저히 검토해왔다. 육상 풍력 발전이 한창 발전하고 있을 때, 이미 그 이후를 내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고용 창출 에너지-지역 균형 발전 에너지"**

프레시안 :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번역된 프란츠 알츠의 <생태적 경제 기적>(박진희 옮김, 양문 펴냄)을 보면, 재생가능 에너지를 환경적 측면만 아니라 고용 창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손충렬 : 맞다. 독일의 경우 재생가능 에너지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사용이라는 측면에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자리 창출 문제와 관련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데,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풍력 발전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렇게 됐다. 대기업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프란츠 알츠는 실제 독일의 경우 태양 에너지로의 전환으로만 1백10만 개, 생태적 교통정책으로 1백만 개, 물 보호 기술과 물 절약 기술의 발달로 25만 개, 생태적 세제 개혁으로 1백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동안 국내에서 이런 점들은 큰 관심을 못 끈 것 같다.

손충렬 :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다. 풍력 에너지는 지역 균형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 여러 지역에 분포되다보니 창출되는 일자리도 지역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이런 이점을 독일의 정치가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이 점을 정책과 연관시켜 강조하곤 한다. 독일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것은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 경제적 맥락도 존재한다.

***"GM, 셸 등이 재생가능 에너지 독식할 수도 있어"**

프레시안 : 최근에 읽은 글에서, "우리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GM이나 셸과 같은 초국적기업이 독점하는 것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손충렬 : 정확한 지적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라고 무조건 지역 분산적이고, 중소기업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GM이나 셸에서 발 빠르게 재생가능 에너지 관련 기술을 독점하고, 그쪽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프레시안 :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가?

손충렬 : 미국의 경우가 가장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 최근에 GM과 같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인수ㆍ합병하는 식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이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의 대기업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단시간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석유 메이저인 셸도 1999년 세계 최대의 태양광 전지 공장을 독일에 세웠다. 발 빠르게 '석유 시대' 이후에도 에너지 분야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 개발만 능사 아니다"**

프레시안 : 이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독일에서 언제 귀국했나?

손충렬 : 1989년도에 귀국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가 풍력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귀국해보니 에너지관리공단 이런 데서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 재생가능 에너지 관련 법률도 있고. 그래서 국내에서 이 분야의 개척자가 돼보겠다 마음먹었다.

한 가지 결정적인 계기도 있다. 한 기업 회장이 한국형 풍력 발전기를 개발해야 한다면서 그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조성돼 있던 '다리우스 방식'의 풍력발전기 모델을 제시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갈 미래는 아니었다. 이미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모델에 돈을 쏟아 붓겠다고 하니,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풍력 발전 연구에 뛰어든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인 현실은 참담했다. 정부에서 풍력 발전 연구개발을 위해 지원은 되는데, 항상 거기서 끝나고 만다. 기술개발을 해도 대개 민간으로 이전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처음부터 중소기업이 참여한 곳은 제대로 된 시장 전망을 못한 탓에 또 사장되고. 항상 서류상의 계획만 거창했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노하우(know-how)가 전무했다. 특히 국제 표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이런 문제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우리나라의 풍력 발전 분야의 기술 수준은 어떤가?

손충렬 : 기술력만을 따지면 우리나라도 많이 확보되어 있다. 올해에는 정부 차원의 기술지원단도 구성돼 활동하기 시작했다. 풍력 발전 분야에 대한 시장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다. 선진국이 한다고 따라가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우리나라 수준에서 풍력 발전 분야의 시장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도 기업도 이런 데 신경을 안 쓴다. 단순히 선진국 따라서 기술만 개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기술 개발과 단기적 또 중장기적 시장 전망 등이 정책과 맞물려 같이 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동북아 지역의 재생가능 에너지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각국에 대한 시장 진출 전략은 어떤 게 있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프레시안 : 최근의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평가 결과를 보면, 에너지 관련 분야 사업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낮다. 한편으로는 에너지 관련 예산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에너지 관련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손충렬 : 한마디로 말해서, 기술개발을 해도 확산이 안 되니까 평가가 낮은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연구개발을 해도 상용화되지 않고 사장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도 대기업 중심으로 짜인 것 같다.

손충렬 : 그렇다. 또 다른 문제점은 모든 것을 대기업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사실 대기업은 자금력이 있어서 처음에는 일을 풀어가기 쉽다. 또 대기업이 움직이면 정부도 따라가니까. 하지만 풍력 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저변을 확대할 때 산업 발전에 적합하다. 정부가 대기업에 은근히 의존하다보니 중소기업이 진입하는 것이 어렵고, 막상 대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방관한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 우리나라 전망 밝아"**

프레시안 : 좋은 말씀 많이 들었다. 그런데 여전히 시민들은 풍력이나 태양 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해서 관심이 적고, 그것으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것 같다. 현실성이 없다는 논리다.

손충렬 :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실제로 많다. '경제성이 없는 것'이라는 편견이 강하게 머리 속에 박혀 있다. 그럼 사람들은 노력하기도 전에 말이 앞서 가는 사람들이다. '개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언젠가 끝날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당장 고유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 이미 우리 과제가 된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 때문이라도 피해갈 수 없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에서는 풍력이나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게 어렵다는 편견도 있다.

손충렬 : 우리나라에서 재생가능 에너지 가능성은 높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풍력 발전을 보면, 다른 재생가능 에너지에 비해 입지나 기술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더욱 좋다. 예를 들어 태양광 분야는 아직 외국 기술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데 풍력 발전의 경우에는 기술 자립도 상당하다.

또 풍력 발전은 대용량화할 가능성도 높고, 풍력 단지를 만들더라도 그 지역을 농지나 초지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좋은 곳은 동해안 지역이고, 서해안 쪽은 일부 지역에서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밀한 전국적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것이 끝나야 좀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조사결과가 나오면 풍력 발전에 관심을 가진 중소기업 등의 투자가 활발해지고,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위한 설득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새만금 풍력단지, 전북 개발에도 도움될 것"**

프레시안 : 계속 논란 중인 새만금 방조제에 풍력 단지를 조성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런 제안을 접하면서, 동북아 에너지 협력 문제를 떠올려 보았다. 동북아 지역의 에너지 문제를 위한 협력 체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원자력 중심으로 가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방향이 미래지향적인 것은 아니라고 평가할 것 같은데...

손충렬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 중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계속 고수해온 많은 나라들이 이제 그것을 팔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가 그 희생양이 되고 있고. 당장 에너지가 필요한 저개발 국가에서는 에너지 기술을 이전해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인도의 비정부기구(NGO)들이 저소득층이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을 보급하는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에 풍력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은 매우 실현가능성이 높다. 전북 지역에 풍력 산업 단지를 조성하면 지역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잠수함 연구하다 풍력으로..."**

프레시안 : 이제 손충렬 교수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들었으면 한다. 풍력 발전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손충렬 :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풍력발전에 대해서 접하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잠수함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독일에 가서 선박 등의 원통 구조물을 연구하는 토목공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런데 독일에서 공부를 하면서, 선박 분야 회사들이 풍력 발전에서 날개를 만드는 분야로 활발하게 진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더구나 환경단체들의 활동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다. '아, 청정에너지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토목공학을 풍력 발전과 연결할 여지가 많아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잠수함에서 풍력발전으로 관심이 변한 것이 대단히 극적으로 보인다. 잠수함에 대해서 계속 연구를 했으면 군사기술을 연구하게 됐을 텐데, 평화와 환경을 상징하는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웃음)

손충렬 : 그렇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웃음)

프레시안 : 현재 재생가능 에너지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에너지대안센터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처음 대표를 맡기도 했다.

손충렬 : 방송대 이필렬 교수를 포함해 생각을 같이하는 여러 분들과 1998년부터 에너지 문제와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방안을 고민해왔다. 그러다 2000년에 에너지대안센터를 만들어 지금까지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 한 가장 보람된 일이다. 앞으로 할 일은 더 많을 테고.

프레시안 :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제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손충렬 :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는 여러 분야의 학문들이 연결돼 있다. 기계공학, 정보통신, 재료공학 등 많은 분야가 함께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로 집약된다. 아직 이런 사실이 많이 소개가 안 된 것 같다.

프레시안 : 제자들에게 재생가능 에너지를 많이 권하고 있는가?

손충렬 : 사실 '좋은 일'이라는 것만으로 재생가능 에너지를 권할 수는 없다. 국내에서는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이 아직은 많지 않기 때문에 당장 취직 문제도 있다. 하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을 내다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좀더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선택이 필요하다. 특히 나는 제자들한테 풍력 발전의 철학적 배경을 강조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져다주는 에너지로서 중요성 말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교수님 노력이 꼭 결실을 맺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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