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통합, '떴다방' 창당…심판은 유권자 몫

[최창렬 칼럼] 분절과 통합의 선거정치

정당이 위기에 처하면 통합을 모색하는 건 하등 이상한 사실이 아니다. '위기와 통합'은 한국정당사를 관통해 온 패턴이며 선거 전후의 연합정치는 정치현상으로서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정당들의 탈당, 통합, 창당 등은 비단 이번 선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선거를 불과 두 달 여 앞두고 창당한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하고 정당지지율 26.7%로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정당의 이합집산을 폄하할 일은 아니다.

이전에도 정치적 성장 배경과 가치의 지향이 다른 정파의 결합을 무수히 보아왔다. 1997년 15대 대선 때의 DJP연합이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이념보다 정치공학을 앞세운 통합의 대표적 예이며, 결국 정권 창출에 성공한 사례로 남았다.

정치에는 규범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명분과 실리는 정치의 양면이고 정치행위자의 입지에 따른 정당의 분열과 통합은 정치의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 행위가 최소한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보편적 상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명분 없는 탈당과 분당, 합당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오직 표의 향배를 쫓는 선거공학에 갇히고 말았다. 투표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의외로 낮게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바른미래당에서 분화한 유승민 의원은 새보수당을 만들었다. 불과 2년 전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쳐서 만든 정당이 바른미래당이다. 안철수 귀국 이후 바른미래당 기반으로 중도정당을 시도할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은 빗나갔다.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통합이 모색되고 있지만 유승민의 한국당 탈당의 원인이었던 박근혜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는 없다. 선거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주권자의 의지와 헌법절차에 따른 탄핵을 반대했던 세력은 결국 아무 반성도 사과도 없고 보수 진영의 통합이라는 정치공학만 남았다.

불과 1년 반 전에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는 안철수 당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를 도왔으나 이후 외국에 체류하다 귀국한 안철수 전 대표는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이유는 실용적 중도정치를 위한 중도정당의 창당을 위함이다. 바른미래당으로는 왜 중도정치가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안철수 탈당은 정당의 통합을 촉발하는 유인으로 이어지면서 손학규 대표는 과거 국민의당의 구성인자들이던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한국당은 누구나 다 아는 '떴다방'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급조해서 비례의석 확보를 노리고 있다. 정치에서의 최소한의 명분과 염치도 사라졌다.

유권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갈등 관계에 따라 갈라지고 다시 표를 얻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통합하면서 유권자에게는 무슨 염치로 지지를 호소하는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정치를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하려해도 모든 일에는 정도(程度)가 있는 법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키려는 한국당의 반정치주의와 이를 애당초 예상 못했던 이른바 '4+1 협의체'의 정치력의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유권자는 정치를 통해 입신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선거일에 한 표를 행사하는 도구에 불과한 '봉'일 뿐이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형해화되다시피한 정당정치를 바로잡는 것도 유권자의 역할이다. 선거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와 선거를 우회할 길은 없다. 연합정치라는 명분으로 유권자가 결정한 정당구도를 유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탈당과 분당, 통합을 통해 빈번하게 변경하는 정치 행태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유권자를 가벼이 여기는 일이다. 이에 대한 심판도 역시 유권자의 몫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위기와 통합'이라는 한국정치 문법이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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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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