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홍어 팬'이 된 사연

[음식天國 노회찬] <4> 상계동 생고기하우스와 마들참홍어집

1.
서울의 북동쪽 끝 노원구 상계동. 노회찬이 떠나고 없는 그곳에 여전히 그의 체취가 남아있다. 그가 살던 집이 있고, 함께 했던 사람들도 여전히 살고 있다. 노회찬이 자주 들리던 작은 식당들도 옛날처럼 지금도 문을 열고 있다. 지역구(노원병) 사무실과 마들연구소가 세 들어있던 건물 1층의 삼겹살집, 마들역 근처의 홍어집은 특별히 노회찬이 사랑한 집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1월의 어느 저녁, 필자 개인적으로는 8년 만에 찾아간 상계동에서 일행을 반겨준 사람들은 노공주회. 2008년 선거 때 유급선거운동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노원의 공주님들'. 예상 밖의 패배로 끝난 선거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노회찬의 지지자가 되어준 고마운 주부 알바들이다. 그들과 반갑게 조우한 곳은 당시 노회찬 지역구 사람들이 단골로 가던 삼겹살집 생고기하우스. 주인 부부 역시 노회찬의 열혈지지자였다. 노회찬이 왜 좋았느냐는 질문에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 일러스트 김경래. ⓒ노회찬재단

2.

노회찬에게 노원구는 애환이 서린 정치적 고향이다. 현실 정치인이 되어 처음 지역구 활동을 시작했지만, 연고가 없는 막막한 곳이었다.

"두려웠다. 안 해본 일이니. 왜 노원구를 택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솔직히 할 말이 없더라. 연고가 없었으니. 그래서 내가 노 씨이고 어머니가 원 씨다. 그러니 내가 노원의 아들이 아닌가? 효도하러 왔습니다, 그랬다. 기지를 발휘하긴 했으나,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아, 여기서 당락을 떠나 진짜 주민을 위한 일을 한번 해보자, 그게 현실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나의 초심이었다. 낙선한 다음 날도 바로 사무실로 출근해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았다."(2011년 3월 14일 자 <한겨레신문> 인터뷰 '한겨레가 만난 사람')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주민을 만나는 주요 창구는 노회찬이 2008년 선거 패배 후 지역구를 다지기 위해 만든 마들연구소였다. 도심에서 먼 서울의 북쪽 끝 노원은 당시 문화적으로 소외감이 큰 지역이었다. 노회찬은 이런 지역 특성에 착안해 평소 인맥을 풀가동해 명사 특강을 시작했다. 유명인사들이 직접 노원에 찾아와 주민들을 즐겁게 해준 이 문화강좌는 금세 노원구 주민의 큰 사랑을 받았다. (선거운동 기간을 제외한다면) 매달 1회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41회를 계속했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이런 일을 꾸준히 계속하려면 무엇보다 성실하게 일을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노공주회 멤버들이 바로 그런 일꾼들이었다.

노공주회. 노원의 공주, 또는 노회찬의 공주님들은 '음식천국 노회찬' 일행의 방문 소식을 듣고는 열 일 마다하고 뛰어나왔다. 회장 오정애 씨와 최고참 이혜숙 씨, 노회찬과 아래로 띠동갑이라는 조진 씨. 그리고 민노당 당원으로 상계동을 누비다가 노회찬의 지역보좌관이 된 주희준 구의회 의원 등등. 서로에게도 모처럼의 반가운 해후였다.

"2008년 처음 만났을 때는 솔직히 노회찬이 누군지도 잘 몰랐어요."

알바로 일당이나 챙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노회찬이 좋아서" 선거 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마들연구소 명사특강 전단을 돌리며 쌓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3.
상계동 마들역 근처에서 삼겹살, 오겹살 등 돼지고기를 굽는 생고기하우스. 4인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가게라 수지가 맞을까 싶었는데 밤이 이슥해지고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가게 앞의 주차장 일부에 쳐진 비닐 천막이 모두 가게가 된다. 주인 부부는 이 자리에서만 18년째 돼지고기를 굽고 있다. 당시 11년째 하고 있던 비디오 가게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업종을 바꾼 것이 지금의 생고기하우스라고. 식당을 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부인 장숙희(60) 씨의 손맛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실은 식당을 차린 이유가 궁금한 게 아니라 맛이 비결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였다. 처음 와 본 생고기우스는 삼겹살, 오겹살, 목살 등 잘 숙성된 돼지고기 맛뿐 아니라 곁들여 먹는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맛깔스럽기 그지없었다.

"노 의원님은 특히 이 집 마늘장아찌를 국보급이라고 칭찬했죠."

부인 장 씨는 순천이 고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미각이 뛰어났다고 한다. 음식장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살았다고 하는데, 비디오가게를 접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면서 식당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믿는 구석은 바로 자신의 남다른 미각.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18년 가까이 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은 처음보는 식재료라도 별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는 감이 온단다. "내년에 제가 환갑이 되어요. 제 음식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라고 자신감을 감추지 않는다.

4. 
생고기하우스에서 나와 박규님 실장의 안내로 발길을 옮긴 곳은 전철9호선 마들역 근처 마들참홍어집. 상계동에 27년된 홍어집이 있다니. 언뜻 믿어지지 않았지만 코스요리처럼 나오는 부위별 홍어회의 맛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지막 나온 홍어라면 같은 이색 메뉴에 이르면 혀까지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노회찬의 미각을 사로잡을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집이다. 가게 벽의 낙서 속에 큼지막하게 쓰인 노회찬 이름 석자가 "이 기자도 홍어 좋아하지? 어때 괜찮지?"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듯한 기분이다.

노회찬은 지역구 활동으로 등산을 갈 때면 꼭 이 집에서 홍어를 맞춰갔다고 하니, 그 역시 무척이나 이 집 홍어 맛을 사랑했나보다. 부산 사람 노회찬이 홍어맛을 알게 된 내력은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어느 날 주례를 서게 되었는데 혼주가 마침 전라도분이었다고. 피로연에서 처음 제대로 된 홍어를 먹어보고는 그날로 홍어 팬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박 실장이 전해준다.

마들참홍어집은 홍어 맛만큼이나 사장님의 너스레와 말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강원도 횡성의 유명한 한약방집 막내아들로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나 사업이 부도난 뒤 포장마차와 식당을 거쳐 홍어집을 차리게 되었다고. 군대 생활을 하며 알게 된 할머니를 전남 진도까지 찾아가 한달간 머물며 숙성비법을 전수받아올 정도로 열성을 기울 끝에 홍어전문점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자신 홍어에 관한 한 도사를 자처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장님의 성공담을 듣다 보니 어느덧 막차 시간이다.

정치인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 그래서 말을 쉬고 싶을 때가 많다. 말 잘하는 노회찬도 가끔은 말을 쉬고 싶을 때가 있을 터, 해지고 비 오는 밤 홀로 찾아와 홍어 한 점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며 미식가다운 음미의 휴식을 취하지는 않았을까. 노원병의 비 오는 밤이 깊을 대로 깊었다.

* '음식천국 노회찬'은 노회찬재단의 소식지 <민들레>에 실린 글입니다.(☞ 노회찬재단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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