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팬데믹 직전 단계"...'제2 사스' 공포 전세계 강타

"팬데믹 직전 단계"...춘제 대이동에 사실상 통제불능

'우한 폐렴'이 '제2의 사스'의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경계선을 넘어섰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 시의 화난(華南) 수산물 시장에서 수산물과 함께 취급하는 박쥐 등 야생동물에서 전파될 뿐 '사람 대 사람 간 전염'은 되지 않는다는 중국 당국의 안일한 초기 판단은 이제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다. 화난 수산물 시장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한 폐렴에 감염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중국 당국도 "사람 대 사람 간 전염이 되고 있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우한 폐렴 환자가 처음 발생한 시기는 지난해 12월12일로 추정되는데 우한 보건당국은 한달 넘게 지난 14일이 돼서야 우한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 체온계 등 검역장비를 설치했다. 전염병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중국 정부가 심각한 사태로 판단하기에 부담을 느껴 우물쭈물한 사이에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한 폐렴' 확진자는 중국 전역에서 쏟아지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2일 오후 4시 기준 우한 폐렴으로 중국에서 9명이 숨지고 443명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날 밤 11시 발표 때보다 사망자는 3명, 감염자는 125명 늘었다.

우한 폐렴 감염자는 태평양까지 건너 미국까지 확산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중국 우한으로 여행을 다녀온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인근 주민이 우한 폐렴 환자로 진단됐다고 밝혔다. CDC는 지난 17일부터 바이러스 상륙을 막기 위해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3개 공항에서 벌이던 검역을 애틀랜타와 시카고 국제공항까지 확대했다.


▲중국 우한(武漢)을 진앙으로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우한 폐렴' 확진자가 국내에서 발생하며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이 '주의'단계로 21일 상향됐다. 22일 오후 서울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우한 폐렴'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중국 '우한 폐렴'에 '흑사병' 수준으로 강력 대응, '춘제 대이동'에 속수무책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연휴를 맞아 중국인들이 중국내 '민족 대이동'과 해외여행에 대거 나서면서 '감염자 수출'까지 하는 양상이다. 이미 중화권에서는 대만이 우한 폐렴에 뚫린 데 이어 마카오에서도 감염자가 나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중국 국적의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마카오 특별행정구 질병예방센터는 우한에서 마카오로 여행 온 중국인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날 대만에서도 1명의 확진자가 나왔으며 홍콩에서는 117명의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

태국에서는 우한 폐렴 환자가 추가로 발생해 총 4명이 확진을 받았다. 추가 확진자는 73세 여성으로 최근 우한을 다녀온 뒤 고열에 시달리다 병원에서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다. 태국 국적자의 확진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정부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우한 폐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을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해당하는 ‘을(乙)류’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대응책은 흑사병이나 콜레라와 같은 ‘갑(甲)류’ 전염병 수준으로 상향키로 했다.

'갑류’ 전염병 수준의 대응은 정부가 모든 단계에서 격리 치료와 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공안이 강제하거나 공공장소에서 검문도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을류’ 전염병 지정에 ‘갑류’ 대응은 2003년 사스 사태 당시에서 중국 정부가 채택했던 특단의 대처다. 하지만 최대 30억 명이 왕래한다는 '춘제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기 때문에 우한 폐렴의 확산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과학자들은 우한 폐렴이 사스와 메르스를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속하며, 사스와 마찬가지로 박쥐에서 비롯됐고, 사스보다는 독성이 약하지만, 감염성은 높다는 진단을 내렸다.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중국이 공개한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사스와 77%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최고 전염병 전문가로 꼽히는 위안궈융 홍콩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우한 폐렴이 팬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 직전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우한 폐렴이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전염되는 전염병 확산 3단계에 진입했으며, 사스 때처럼 지역사회에 대규모 발병이 일어나는 4단계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춘제 연휴로 민족 대이동이 시작돼 우한 폐렴이 팬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본토 중심부에 소재한 우한은 교통의 요지로 육로와 항공편을 통해 각 지방으로 이동할 때 거쳐 가는 중추 경유지라는 점에서 확산의 본거지가 될 충분한 조건까지 갖췄다.

우한 폐렴은 최근 확산 속도가 붙는 추세로 사람 간 전염력이 강해지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때문에 2003년 37개국에서 8000여 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 사태가 재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중국관광객 입국 금지 조치, WHO '비상사태' 선포 임박

'신종 전염병에 일단 뚫리면 확산을 막을 길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북한은 22일부터 아예 중국 관광객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외화벌이가 아쉬운 북한 당국으로서는 '춘제 대목'을 맞아 대거 방북할 중국 관광객들로부터 거둘 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교통의 요지인 우한에서 다음달 3일부터 14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도쿄올림픽 복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도 결국 취소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은 22일 이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복싱 태스크포스(TF) 팀 관계자 말을 인용하며, 우한 폐렴이 확산됨에 따라 참가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변경된 복싱 예선전 일자와 장소는 확정되는 대로 IOC에서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가대표 13명을 선발해 대회를 나설 계획이었던 대한복싱협회는 우한 폐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일단 오는 27일로 예정됐던 출국을 보류하고 IOC의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IOC의 최종 결정을 좌우할 세계보건기구(WHO)의 판단도 국제비상사태 선포를 검토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HO는 22일 오후 7시(현지시간, 한국시간 23일 오전 3시)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한 폐렴'과 관련한 비상사태 결정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WHO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를 5차례 선포한 바 있다. 2009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 인플루엔자(독감), 2014년 발생한 소아마비·에볼라, 2016년 지카 바이러스 확산, 2018년부터 이어진 에볼라 유행 당시에도 비상사태 선포 결정이 내려졌다.

일단 비상사태가 선언되면 WHO 회원국들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감염증 의심 사례가 확인되면 24시간 이내에 WHO로 통보해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걸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도 생긴다. WHO는 감염증이 시작된 중국을 비롯해 주요 발생 국가에 대한 출입국 제한도 권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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