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없다...사회적 타살이 있을 뿐

[안종주의 안전사회] 자살 없는 사회를 위한 긴급 호소

자살은 없다. 타살만 있을 뿐이다. 생명체가 좋아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택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개인의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나 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의 탓이다. 이를 인정해야 문제가 풀린다.

지난해에도 수많은 목숨이 '자살'이란 이름의 '타살'로 스러져갔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에 오른 집단자살 사례만 보아도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연하게 알 수 있다. 한 가족이 풍비박산 난 사례도 많다. 이는 그 가족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서울 화곡동 일가족 4명 자살(1.24) △경남 거제 펜션 20대 청년 3명(2.22) △전남 여수 리조트 한 가족 4명(2.25) △경기 남양주 펜션 3명(3.2) △충남 공주 일가족 4명(3.6) △부산 한 가족 3명(3.13) △경기 양주 한 가족(3.18) △경기 화성 일가족4명(3.26) △경기 시흥 일가족 4명(5.5) △경기 김포 구래 한 가족(5.7) △대구 동구 2명(5.17) △충남 공주 여인숙 2명(5.20) △경기 의정부 한 가족 3명(5.20) △경기 시흥 한 가족 4명(6.9) △울산 모자 자살(7.10) △울산 청년 3명(7.10) △제주 펜션 3명(7.14) △경기 의왕 한 가족 4명(8.17) △대전 한 가족 4명(9.4) △인천 아라뱃길 자매 2명(9.21) △충북 단양 청년 4명(9.22) △인천 남동구 2명(9.24) △제주 연동 한 가족 4명(10.1) △경남 김해빌라 한 가족 3명(10.2) △경기 시흥 한 가족 4명(10.8) △경남 거제 한 가족 4명(10.15) △경기 의정부 모자 2명(10.23) △서울 성북동 한 가족 4명(11.3) △경기 양주 한 가족 3명(11.6) △경기 가평 펜션 젊은 남녀 5명 자살 시도 2명 사망(11.19) △인천 계양구 한 가족 4명(11.20) △충남 천안 쌍둥이형제(12.4) △대구 북구 한가족 4명(12.24)

치명적 바이러스보다 더 치명적인 대한민국 자살 바이러스

때와 장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자살 감염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국민 사이에 펴져가고 있다. 마치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의 암처럼,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처럼 자살은 한국인들의 몸속에 암적 존재로 굳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목숨을 끊은 사람은 살릴 수 없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자살을 막아야 한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선택으로 빚어진 문제가 아니다. 만약 자살을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만 받아들인다면 자살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자살은 막을 수 있다. 좋아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그리고 자살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병 들었다는 증표이다. 자살 외에도 우리 사회의 높은 산재사망률 등 국제 사회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지표 등은 꽤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자살이 아닐까싶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이들도 많이 있다. 이 가운데는 유명인사의 가족 수사로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는 둥 하는 문제로 진영 간 혹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유명 지식인 간 설왕설래 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앞서 사례로 보았듯이 정말로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난 자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발언을 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더 정확하게 옮긴다면 "조국사태보다 더 비일비재하고 더 비극적인 '가족사'가 바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패러다임 전환 시급

자살 예방과 자살 시도자와 자살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첫 걸음은 자살이 결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자살에 대한 인식 전환이 그렇게 이루어진다면 자살 관련 정책과 예산 배정 등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새해 첫 칼럼 주제를 자살로 잡은 것은 평소 자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자살 문제를 다룬 글을 여러 매체에 써왔다. <위험증폭사회>(2012)란 책을 통해서도 별도의 자살 장(章))을 두어 '자살공화국에서 생명공화국' 등의 글을 보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노력과 여러 전문가, 자살 문제에 천착해온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자살은 결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생명지키기 3대 프로젝트의 하나이자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모는 자살은 캠페인 후 외려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이제는 자살예방에 대한 대책을 뿌리부터 바꾸어야 할 때임을 보여준 것이다.

개인 자살이든, 집단 자살이든 모든 자살은 나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사생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에서 온갖 불법과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도 죽고 난 뒤에는 관대하다. 죽음 뒤에도 엄중한 질책과 평가를 통해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 또 자살자에 대해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여론주도층도 언론도 매한가지다. 정말로 사후에 이승보다 편히 쉴 곳이 있다면 이는 자살을 부추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살 사망자, 산재 사망자의 6배-정부기관 설립 절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2천 명가량의 노동자가 산재와 직업병으로 숨지고 있다. 노동부에는 산재예방보상정책국과 산재·직업병과 관련한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이 있다. 연간 자살 사망자수는 산재·직업병 사망자의 6배가 넘는다. 보건복지부 <2019년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자 수는 1만2463명이다.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세계적 자살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와 같은 관련 과 하나를 두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위원회 같은 기구가 아니라 이른 시일 안에 자살 예방과 관련해 실행력이 있는 정부기관을 두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가칭)한국자살예방원 또는 한국자살예방본부 등을 둘 것을 촉구한다. 이 기관은 전국 지역조직을 두어 정책 개발과 함께 자살예방 활동 등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자살 예방을 위한 컨트롤타워 확립과 새로운 정책 개발 및 실행을 떠맡을 조직 신설을 위한 기획과 여론 수렴,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자살예방국가포럼 내지는 자살예방국가협의회 등을 올 상반기 중으로 만들어 한시적으로 운영할 것도 제안한다. 자살 예방과 자살자 수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자살은 대한민국의 위기이자 재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