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단식과 반정치

[최창렬 칼럼] 정치협상 차단한 극한투쟁

한국 정치는 사실상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 전형적인 소용돌이의 정치다. 물리적 폭력을 보유하는 거대한 집단에 대한 마지막 저항 수단이었던 단식이 난무하는 정치는 정상적이지 않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단식은 절박하게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수단이었다. 1990년 김대중 단식은 지방자치 실시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단식이 일상적인 주장을 펼치는 데에까지 동원되면서 단식은 정치적 효율성을 높이는 기능적인 도구로 전락해가고 있다. 비장함보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이벤트로 희화화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단식은 주장하는 아이템이 무엇이든 목숨을 걸고 나름대로 온 몸을 던지는 정치행위다. 함부로 비아냥거리거나 폄하해선 안 되는 이유이다.

삭발과 장외 투쟁, 단식의 극한 정치를 감행하는 정치세력은 이에 조응하는 정치적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주로 야권 정치인이 행하는 단식의 소재가 정당 간 원내 협상 차원에서 논의되고 토론되는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의 명분은 지소미아 종료 철회와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반대였다. 그러나 지소미아 종료는 연기됐다. 황 대표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되어 있는 선거법 개정안을 막겠다는 의도임을 밝혔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와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국회법에 따른 절차라고는 하지만 제1야당을 명시적으로 배제하기에 여권이 질 정치적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황 대표의 단식 이후 협상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상황에서 접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단식이라는 극한투쟁이 정치 실종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치 실종이 일상화되고 정치 부재가 관행화된 정치 문화, 특정 정파에 편승하지 않고는 생존 불가능한 진영 정치, 이에 조응하는 시민사회의 극단적 구호 등은 한국 정치를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들고 있다.

타협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거대정당의 카르텔 체제에서 시민사회의 균열이 제대로 반영되거나 약자의 목소리가 제도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다는 걸 기대할 수 없다. 이를 막기 위해 여러 정당이 병렬적으로 존재함으로써 구조적인 적대와 증오의 정치를 줄이자는 게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다. 그러나 한국당은 아예 비례대표 폐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이를 관철시키고자 극단적 투쟁으로 정치적 협상을 차단하고 있다.

이유는 다분히 정치공학적이다. 한국당을 제외하고 지금의 군소야당들은 진보적 성향이 지배적이다. 만약 개정 선거법이 통과되어 군소야당에게 유리하게 된다면 집권여당은 이들과 연대하여 장기 집권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란 논리가 연동형 제도의 반대 명분이다.

그러나 이에는 너무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 우선 문재인 정권 임기 초에 개혁을 위한 범진보연대가 강조되었으나 결국 집권세력은 권력 내부의 역학관계를 더 의식했다. 결국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개혁에 대한 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임기 초의 정권에 대한 긍정 평가가 상대적 우위를 견지한 것 때문에 굳이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는 여러 변수들이 있다. 보수통합론, 신당 창당 등과 맞물리면 선거제도의 변경만으로 진보 진영에만 유리해진다는 가설도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진보 야당들의 약진이 이루어진다 해도 한국당의 생각대로 범진보연대는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게임이다.

연동형 제도와 준연동형 중 어느 제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는 지역구 의석과 권역별 의석에 따라 달라진다. 정당에 따라 반드시 연동형이 유리하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준연동형 제도가 유리하다고 할 수도 없다. 물론 지금의 병립형 제도가 유리한지도 의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당이 선거 이후에 진보연대를 통한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부한다면 당위와 명분이 약한 논리다. 게다가 지난 해 12월 15일 합의했던 연동형 선거제로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당 주장처럼 아예 비례제를 폐지하는 것은 합의 정신에 위배되고, 중장기적인 정치개혁과는 배치된다.

선거 경쟁에서 정당이 제도가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계산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도 최소한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한국당의 주장은 이에서 벗어나 있다. 게다가 단식 등 강경투쟁이 반정치를 부추긴다. 협상과 타협을 통한 조정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이다. 한국당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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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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