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목숨 걸 일은 따로 있다

[황재옥의 한반도 '톡'] 지소미아 아닌 '민생'에 목숨 걸여야

지난 2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GSOMIA) 종료 철회를 요구하면서 청와대 앞 단식을 시작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면서, 황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무엇이냐. 한미동맹은 절벽 끝에 서 있다"라고 단식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동북아의 국제정치 특성상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미동맹은 절벽 아래로 안 떨어진다. 일국의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분이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한미동맹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단식을 시작하다니,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안목과 식견이 이 정도인가 싶어 허탈하다.

오히려 미국의 무모한 방위비 분담 증액을 결사반대한다는 것도 단식에 포함되었더라면, '고통마저 소중'하다는 황 대표의 단식투쟁을 지지‧성원하는 여론도 증가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면 의사(義士)‧열사(烈士)라는 칭송을 받을 텐데 한미동맹 그 자체도 아닌 지소미아에 목숨을 거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정치인의 단식이라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지소미아는 23일 0시 종료를 앞두고 22일 오후 6시 NSC 결정으로 조건부 연장됐다. 황 대표가 한미동맹의 핵심 고리쯤으로 착각하고 연장시키려 했던 지소미아의 운명은 이제 황 대표의 단식 일수가 아닌 일본 정부의 결심 여하에 달려있다. 그리고 미국이 얼마나 일본을 '압박'해 들어가느냐에 따라 지소미아의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의 식견이나 행동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다. 작년 '9.19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체결된 '9.19 군사분야합의서'가 발표되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보도는 익히 알고 있다.

그의 불쾌감의 근원은 미국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것에 기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9.19 군사분야합의에 따라 남과 북은 DMZ내 GP를 철거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권총 한 자루 없는 완전 무장해제 구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장 해제되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는 남과 북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반대로 남북왕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필자도 올해 초 판문점을 다녀왔는데, 북측지역을 바라만 볼뿐 건너가지 못했다. 남북이 합의해도 우리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아직 미국에 있기 때문에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북한에 독감이 번져 통일부가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차량으로 북한에 보내려 했으나 유엔사가 DMZ 통문을 열어주지 않아 결국 못 보내기도 했다.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지원도 유엔사의 동의가 없으면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8월 23일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해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을 맹비난한 적이 있다. 그 일로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에게 초치되어 공식 항의를 받기도 했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음에도 최근 해리스 대사는 또 도 넘는 일을 했다. 보도에 의하면 해리스 대사가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대사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증액과 관련하여 30분 면담에 20번이나 반복했다니, 이는 '요구'가 아닌 거의 '협박'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미 태평양군사령관 출신인 해리스 대사가 전직 군인 출신이라 강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도급 인사들이 평소에 보여준 대미 자세, 이것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에서는 주재국의 국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지 정치인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은 우리나라 안보의 유력하고 유효한 수단이고 방법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외교목표도 아니고 국권 행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외교목표는 평화와 통일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은 동맹을 목적시하는 경향이 있다. 동맹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에 한일 지소미아도 미국이 시키는 대로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제1야당 대표가 '죽음을 각오'하고 단식하는 것은, 미국 조야에서 우리를 생각할 때 어떻게 생각할지, 봐도 한 참 아래로 보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일을 알아서 해 줄 뿐 아니라 때로는 목숨까지 걸겠다는 정치인도 있고, 또 그걸 지지하는 언론이 있는 한 미국은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착각하고 신념화해 나갈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지소미아에 목숨 걸 필요 없다. 한미동맹도 안보의 수단이고 방법일 뿐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닐진대, 한미동맹의 요소도 아닌 한일 지소미아 때문에 왜 죽을 각오로 단식까지 한단 말인가? 이제 한 달만 지나면 해가 바뀐다.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돌아가라. 민생도 처리하고, 2020년 총선도 준비하면서, 우리 국익과 국격을 높이는 일에 여야가 '따로가 아닌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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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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