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물갈이'보다 시급한 '정당 물갈이'

[최창렬 칼럼]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정치개혁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선거 경쟁을 통해 정당정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민주주의 원론이 제기하는 선거의 중대성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 걸까.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들은 쇄신과 혁신을 화두로 꺼내기 시작했다. 공천방식의 변화, 새로운 인물을 통한 인적쇄신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이러한 작업이 성공해서 혁신 공천을 하고 청년과 여성, 사회에서 성공한 스토리를 쓴 인물이 정치권에 유입되면 한국정치는 바뀔 수 있는 걸까. 이제 각 정당들이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가 불변인 상태에서는 새 인물과 청년·여성 등의 비율이 높아져도 국민의 이해가 제대로 대표되거나 정치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영역이 될 수 없다.

정치를 재구성하기 위한 제도적 혁신과 국회 운영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한 선거제 개편이 이루어진다 해도 당파적 양극화가 완화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선거제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의 정치구도가 비생산적이면서 양극단의 정치세력에게 유리한 이유는 중간지대의 유권자들을 담아 낼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선전하고 정당득표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으나 박근혜 탄핵과 파면, 조기 대선이라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사건들의 과정에서 중도정당으로서의 정치적 역할 수행에 실패했다. 대선 과정에서 정치공학에 몰입한 가치를 공유하지 않은 정파들의 이합집산은 결국 다당제의 실패로 끝났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과 균형을 지향한다면 이는 중도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 이념에 매몰되지 않되 한국사회가 갖는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여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진정한 중도 정당이다. 이 정당은 중도좌파 정당이 될 수도 있고 중도우파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민심에 흐름을 역행하지 않는 보편과 상식에 입각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 중도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들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정치적 대립이 관리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극단적 대립을 걸러낼 수 있다.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선거제도의 개혁의 초점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문제는 지금의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 숫자가 늘어난다면 과연 다양한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한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정당득표를 정당의 전체 의석에 연동시키는 제도는 최소한의 정치개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비례대표 자체를 폐지하자는 한국당의 주장은 뜬금없다. 비례대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들의 예도 있지만 정당들이 적대적이지 않은 나라들의 예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비례대표 후보를 정당의 영향력 있는 인사가 좌우하거나 평소에 정당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정당이 선호하는 목소리를 내 온 부류의 인사가 다수 비례대표로 영입된다면 원내에 진출하더라도 정당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 것이다. 기존 정치인을 능가하는 정치적 퇴행을 보일 수도 있다. 지난 선거 때도 40%에 달하는 물갈이가 있었으나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물 영입과 쇄신의 구체적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21대 국회도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소신 발언을 하던 사람이 들어와도 당론에 묻히고 공천과 관련하여 위선과 위악의 압력을 느끼는 구조라면 인물 영입은 국민을 향한 상징적 쇼에 불과하다. 1970년대의 냉전적 권위주의와 1980년대 저항적 이념에 기인하는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세력의 출현이 절실하다.

조국 정국 이후 집권당 내에서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정치화두로서 한국정치를 재구성하는 구체적 쇄신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보여준 행태들은 아직도 제1야당의 주류는 박정희의 향수와 냉전적 사고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새 인물의 영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조국 정국에서와 같은 중대 국면에서 정당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들이 영입되지 않으면 이러한 인물들이 정치를 재구성할 수 없다. 기득정치와 더욱 빠르게 타협하고 재선을 모색하기 위해 구악을 능가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에 대한 참회가 이철희와 표창원의 불출마선언이었다. 그나마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움직임조차 없다. '누가 덜 못한가'의 경쟁으로 전락한 한국정치의 인물 영입과 쇄신 경쟁에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내년 총선에서 정치혁신을 공약으로 내걸고 정당들이 경쟁해야 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 영입과 공천경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를 재구성하기 위한 정당개혁 노력들이다. 정치개혁을 선거화두로 내걸 수 있는 프레임의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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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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