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29일 자 <연합뉴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측은 최근 협의 과정에서 '한반도 유사시' 뿐 아니라 '미국의 유사시'라는 문구를 추가해 미국이 안보 위협으로 평가하는 영역까지로 위기관리 범위를 넓히자는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 측은 협의 과정에서 미국의 의견에 일단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한국일보>도 같은 보도를 내놨다.
관건은 대외비에 속하는 '한미 동맹위기관리 각서'에 어떤 문구가 적시되느냐에 있다. 만약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면 한미동맹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고, 한국의 국익과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험을 잉태하게 된다. 미국이 지구촌 곳곳에서 직간접적으로 벌이게 될 군사작전 및 전쟁 수행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도 그만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미국과 중국, 미일동맹과 중러협력체제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만큼, 이들 국가들 사이의 무력 충돌에 휘말리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생존과 번영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에 해당된다.
한국군 파병은 위험의 일부
국내 언론들은 '한미 동맹위기관리 각서'에 '미국 유사시'가 포함되면 호르무즈 해협이나 남중국해 유사시 한국군 파병에 길을 터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는 위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중차대한 문제는 주한미군의 군사 자산이나 미국의 증원 전력이 '미국 유사시'에 투입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는 한반도외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약한 고리들'이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그리고 동중국해가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하나같이 미국과 중국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곳들이다.
만약 이들 지역에서 미중간의 무력 충돌 위험이 고조되거나 실제로 발생하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군사 자산을 투입하거나 한국을 증원 전력의 중간 기지로 이용하려고 할 수 있다. 오산 및 군산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미 공군력의 대중국 군사 활동, 제주해군기지에 미 해군의 전략 자산 투입, 경북 성주의 사드 레이더 활용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3국인 한국은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미중간의 무력 충돌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국에 대해 경제 제재에서부터 군사적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복 조치를 강구하게 될 것이다.
미중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양측의 대비 태세 강화만으로도 한국의 국익은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최근 중국, 혹은 중러 양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 활동 강화 추세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평택미군기지 확장, 성주 사드 배치 등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미중 충돌에 한국이 연루될 위험이 차곡차곡 쌓이던 터에 '미국 유사시'까지 한미동맹에 명시되면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방기'의 두려움을 떨치고 '연루'를 차단해야
동맹 이론에는 '방기(버림받음)와 연루(휘말림)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동맹국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고, 요구를 거부하자니 버림받을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이론화한 것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미국 유사시'도 포함시키자고 요구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이 딜레마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방기의 두려움에 휩싸이면 미국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파기로 위협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미국이 동맹의 이름으로 한미동맹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한국의 사활적인 이익까지 침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