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대남 비난, 더 이상 나가면 후회한다

[황재옥의 한반도 '톡'] 남한 없이 북미협상 성공 어려워

10.5.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이후 북한 대남선전매체들이 연일 쏟아내는 비난공세는 '막가파'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남한 정부를 상대로 하는 비난은 도를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남한 정부와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비굴한 추태, 세치 혀 장난, 낯짝' 등의 저급한 언사로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에 대한 화풀이를 문 대통령과 남한 정부를 향해 이어가고 있다.

백 보 양보해서 생각해보면, 북한의 이같은 비난 또는 투정의 까닭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한은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기로 했고 북한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지난해는 낮은 수준에서 진행했지만 올해는 이보다는 강한 강도로 진행됐으며 F-35A 스텔스 전폭기 같은 가공할 전략자산을 도입하기도 했다. 장차 북한의 대남 군사력 열세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과 비난을 쏟아낼 나름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도 내일을 기약하려면 어제를 돌아보고 입장을 바꿔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2.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후 북한이 보여준 군사적 행동은 남한 국민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5월부터 동해상으로 쏘아댄 미사일이나 방사포, 지난 2일 발사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같은 무기들은 방향만 살짝 틀면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위협적인 무기들이다.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에는 0.1%의 전쟁 발발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이 남한 정부의 국민에 대한 책무다. 물론 방사포 미사일 SLBM 발사 같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대남 억지력 유지와 대미협상 카드 확보 차원의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의 5000만 국민들은 불안을 금할 수 없다. 이같은 군사적 도발이 반복되면 남한의 여론도 적대적 입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

그런 데다가 북한 대남 선전매체들이 쏟아내는 막말 퍼레이드를 보고 있노라면 북한은 지난해 2월 김여정 특사의 방남 이후 전개된 우호적이고 평화 지향적이던 남북관계를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다. 어제를 잊다보니 내일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노이 노딜과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한이 미국에게 이행을 촉구하고 있는 바로 그 '6.12 북미 공동선언'을 만들 수 있었던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혼자서 성사시킨 것이 아니다. 공치사 같지만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특히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라고 성격 규정한 문 대통령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고 기대할 수도 없었던 것이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이다.

좀 구체적으로 복기해보자. 지난해 3월 초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 파견으로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이 구축되어 가는 와중에 5월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대미비난 담화를 발표했다. 벼랑끝 전술의 일환이었겠지만,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북미 정상회담 모멘텀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그 때 문 대통령은 신속하게 5월 26일 판문점에서 '원 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을 했고, 그 회담의 결과를 한미가 공유함으로써 북미 정상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세기의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북한이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미국에게 이행을 촉구하는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은 문 대통령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의 산물이라는 것이 실체적 진실이다.

비록 이번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북한의 표현에 따르면 결렬됐지만, 이것도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에서 장차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열기로 약속한 가운데 성사된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대남비난을 멈추고 6.30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이 누구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시 회동은 문 대통령의 주선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스톡홀름 실무회담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북한이 북미수교와 평화체제 구축으로 안전권과 생존권이 보장되는 '내일'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그동안 구축해 온 한미 협력관계를 이용해서 북미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는 동맹관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도 북한에게 '선 비핵화'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셈법을 좀 바꿔,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라도 일단 성사시켜야 할 것 아닌가" 라고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지구상에 남한 정부 밖에 없다.

굴종, 낯짝 등의 남한 정부를 모독하는 언사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남한이 촉진자 역할을 해야만 북미협상이 잘 될 수 있고, 남한의 중재자 역할은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에게 더욱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응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 대남 선전매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지난 6.12.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비록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긴 했지만 그것도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문 대통령의 역할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향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의 벼랑끝 전술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결국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문 대통령이 물밑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남쪽의 외교안보팀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해야만 3차 북미 정상회담도 성사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3차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디딤돌이 되는 경우, 북미수교와 평화협정까지 체결해 나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남한 정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문 대통령과 남한 정부가 험한 언사로 비난을 쏟아내는 대상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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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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