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사협력' 세계 꼴찌? 누가 평가했나 보니…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WEF 보고서 제대로 뜯어보기

세계경제포럼(WEF)이 <2019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The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 2019)>를 발간했다. 쪽 수는 앞뒤 표지를 포함하여 666페이지에 달한다.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국제 기구들의 통계 같은 양적 정보와 더불어 관계자 의견 수렴이라는 질적 접근도 채택하고 있다. 질적 접근은 관계자의 주관적 의견을 말하며, 이는 보고서에서 노사관계를 평가하는 주요 방법으로 활용된다.

1979년 처음 나온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는 '글로벌 경쟁력 지표 4.0(Global Competitiveness Index 4.0)'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2019 지표는 세계 GDP의 99%를 차지하는 141개 국가와 경제권을 분석하여 "경쟁력과 번영의 성과 공유, 환경적 지속가능성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조사 대상국에 대한 경제 전망을 제공한다.

'경영자의 의견 조사'라는 주관적 평가

보고서의 근간을 이루는 '글로벌 경쟁력 지표 4.0(이하 GCI 4.0)'은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의 데이터에 '경영자 의견 조사(Executive Opinion Survey)'를 더한 103개 지표들의 총합이다.

국제 기구의 데이터가 객관적인 양적 정보라면, 'WEF 경영자 의견 조사'는 조사 주체나 대상자가 가진 주관적 견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이 맨날 꼴찌를 기록하는 노사관계 분야는 후자의 방법, 즉 한국에서 일하는 자본가들에 대한 의견조사를 통해 얻어진다. 객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정서적 평가와 심리적 반응의 결과물인 셈이다.

103개 지표는 제도, 인프라, 정보통신기술 채택, 거시경제 안정성, 보건, 숙련, 생산물 시장, 노동시장, 금융 시스템, 시장 규모, 사업 역동성, 혁신 역량이라는 12개 분야(pillars)로 나눠진다. 평가는 0점에서 100점으로 점수화 되는데 100점에 가까울수록 '생산성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음을 뜻한다.

한국 경쟁력은 캐나다, 프랑스, 호주보다 앞서


보고서는 싱가포르가 84.8로 글로벌 경쟁력 1위라고 밝혔다. 한국은 평점 79.6으로 작년보다 두 단계 올라 13위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를 살펴보면 미국 2위(83.7), 홍콩 3위(83.1), 네덜란드 4위(82.4), 스위스 5위(82.3), 일본 6위(82.3), 독일 7위(81.8), 스웨덴 8위(81.2), 영국 9위(81.2), 덴마크 10위(81.2), 핀란드 11위(80.2), 대만 12위(80.2)다.

다음으로 캐나다 14위(79.6), 프랑스 15위(78.8), 호주 16위(78.7), 노르웨이 17위(78.1), 룩셈부르크 18위(77.0), 뉴질랜드 19위(76.7), 이스라엘 20위(76.7), 오스트리아 21위(76.6), 벨기에 22위(76.4), 스페인 23위(75.3), 아일랜드 24위(75.1) 순이다.

한국의 거시경제 안정성, 세계 최고

주요 경제국들의 순위를 보면 말레이시아 27위(74.6), 중국 28위(73.9), 이탈리아 30위(71.5), 태국 40위(68.1), 러시아 43위(66.7), 멕시코 48위(64.9), 인도네시아 50위(64.6), 그리스 59위(62.6), 남아공 60위(62.4), 인도 68위(61.4), 브라질 71위(60.9), 아르헨티나 83위(57.2) 순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인프라, 정보통신, 거시경제 안정성, 보건, 혁신역량 등 5개 분야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고 평가한다. 이 중에서도 거시경제 안정성과 정보통신은 세계 1위, 연구개발 지출은 세계 2위다. 이를 근거로 WEF는 한국을 세계 혁신 허브의 하나로 꼽았다.

12개 분야별로 살펴보면 한국은 제도 26위, 인프라 6위, 정보통신 1위, 거시경제 안정 1위, 보건 8위, 숙련 27위, 생산물 시장 59위, 노동시장 51위, 금융 시스템 18위, 시장 규모 14위, 사업 역동성 25위, 혁신 역량 6위다.

글로벌 경쟁력을 방해하는 요소들

보고서는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부장적 기업 문화(85위), 다양성 부족(86위), 변화에 대한 저항(42위), 고위험 기피(47위), 시장 비효율성(59위), 내부 경쟁 부족(66위), 무역 장벽(76위) 등을 꼽았다.

또한 한국의 노동시장 분야도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내부자' 정규직과 '외부자' 비정규직의 이중 체제라는 특징을 갖는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경쟁력(51위) 문제를 지적한다. 여기에 덧붙여 향후 개선할 문제로 저조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59위), 갈등적 노사관계(130위),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노동자 권리 보호(93위)를 제시한다.

한국의 노동 유연성, 주요 선진국 수준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하는 12개 평가 분야 가운데 여덟 번째인 '노동시장'은 '유연성' 영역과 '능력주의와 보상' 영역으로 나눠진다.

유연성 분야의 한 지표인 '인력감축 비용'에서 한국은 116위로 하위 그룹이다. 기업의 인력감축 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나라라는 의미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로는 터키(124위), 중국(116위), 이스라엘(116위), 필리핀(116위), 칠레(116위), 칠레(116위), 베트남(110위), 말레이시아(109위), 멕시코(103위), 독일(100위), 룩셈부르크(100위) 등이 있다.

보고서는 스웨덴(59위), 네덜란드(71위), 벨기에(91위) 등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들에서도 인력감축 비용은 상대적으로 높은 현실을 보여준다.


임금 유연성, 덴마크나 독일보다 높아


유연성에 관련된 또 하나의 지표인 '채용과 해고의 관행'에서도 한국은 102위로 경직성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로는 일본(104위), 터키(100위), 스웨덴(98위), 핀란드(97위), 프랑스(90위) 등이 있다. 채용과 해고에 관한 자본가의 자유가 한국보다 부족한 나라로는 브라질(133위), 이탈리아(127위), 칠레(124위), 스페인(116위), 벨기에(115위), 호주(111위), 멕시코(107위) 등이 있다.

흥미로운 지표는 '임금 결정의 유연성'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84위로 중하위권인데,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로는 오스트리아(140위), 핀란드(139위), 이탈리아(135위), 남아공(134위), 스웨덴(133위), 네덜란드(128위), 브라질(123위), 덴마크(118위), 태국(116위), 벨기에(108위), 독일(102위), 중국(100위), 호주(95위), 인도(88위) 등이 있다.

'노사협력' 지표가 꼴찌인 이유

보고서는 유연성 영역의 여러 지표에서 한국이 주요 경제국들과 추세를 같이 함을 보여주지만, 그렇지 못한 지표들도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협력'과 '노동자 권리'가 그것이다.

한국의 '노사 협력' 지표는 130위로 세계 최하위다. 이는 다른 유연성 지표들에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인 호주(53위), 독일(30위), 스웨덴(7위), 핀란드(18위), 덴마크(3위), 네덜란드(4위), 일본(5위) 등과 큰 차이를 보인다.

재미난 점은 한국의 노사협력 수준에 대한 평가가 남미와 아프리카의 대표적 경제 강국인 브라질(128위) 및 남아공(139위)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다. 이들 두 나라와 한국과의 공통점은 자본가와 국가가 유착한 독재 체제에 맞서 전투적 노동운동이 민주화와 노동권을 위해 싸웠다는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 '경영진'의 반노동 의식


노사협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보고서가 사용한 방법은 조사 대상의 주관적 의견을 묻는 질문지 방식이었다. 보고서의 한국 측 참여 단체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업의 '경영진' 100명을 상대로 "귀하의 나라에서 노동-사용자(labour-employers) 관계의 특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1= 전반적으로 대결적; 7= 전반적으로 협력적)"라는 내용의 질문지로 주관적 의견을 조사를 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지표는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를 명시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 협약조차 반대하는 한국 '경영진'들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141개 조사 대상 중 130위로 꼴찌 수준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

국제노총(ITUC) 자료를 갖고 평가한 '노동자 권리' 지표에서 한국은 93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우리나라와 노동 유연성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은 대부분 노동권 보장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 1위, 핀란드 6위, 덴마크/네덜란드/독일 공동 8위, 프랑스 12위, 일본 14위, 벨기에 18위와 비교할 때 한국의 93위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한국에서 노동권 수준은 홍콩/그리스(116위), 인도(112위), 터키(109위), 브라질/필리핀/태국(104위) , 중국(93위) 수준이다. ILO 기본 협약의 비준과 더불어 관련 노동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서둘러 글로벌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노동권을 개선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수구 언론과 관료의 곡해

WEF가 낸 <경쟁력 보고서>와 관련하여 전경련의 선동지인 <한국경제>는 "한국 실업난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자칭 경제지인데 "한국 거시경제 안정성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비슷한 부류인 <매일경제>도 마찬가지다. 실업난 리스크를 강조하면서 "한국 국가경쟁력 13위지만, 노사관계 130위로 역주행"이라는 기사를 냈다. <아주경제>라는 매체는 민주노총 집회 사진까지 첨부한 기사에서 "노동시장 경직성이 국가 경쟁력 갉아먹었다"고 '오버'를 했다.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많이 일하는 YTN 같은 매체도 WEF 경쟁력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노사관계 최하"라는 대목만 언급할 뿐 "왜 최하인가"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기획재정부, 실제로는 KDI가 뿌린 보도자료를 베낄 뿐 별도의 취재나 분석은 없다.

재정기획부는 보도자료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은 전체 순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이라고 썼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경직성은 우리나라와 규모가 비슷한 주요 경제국들과 비교하여 별 차이가 없다.

사실 노동 문제와 관련하여 WEF 보고서의 글로벌 경쟁력 순위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반노동 의식에 찌들어 노동자와의 협력을 부정하는 응답을 내어놓는 100명의 응답자 구성에 변화를 주면 될 것이다.

홍콩 혼란의 원인

홍콩 관련 지표들을 짚어보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보고서의 글로벌 경쟁력에서 홍콩의 순위는 싱가포르와 미국 다음인 3위고, 노동시장 분야에서는 7위로 최상위권이다.

노동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홍콩에서 자본가가 누리는 '채용과 해고의 자유'는 1위(한국 102위), '임금 결정 유연성'은 2위다(한국 84위). '인력감축 비용'은 13위로 자본가가 별다른 재정 부담 없이 노동자를 자를 수 있다(한국 116위). 여기에 더해 자본가가 노동자의 임금을 생산성에 연동시키는 자유도 1위다(한국 14위, 중국 27위, 일본 35위).

그런데, 노동자 권리 보장 수준은 116위로 중국(93위)보다 못하다. 반면에 노사관계 협력 수준은 9위로 평가되는데, 이는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기보다 노사관계에서 자본가가 누리는 자유의 수준, 즉 노동자가 당하는 착취와 억압의 수준을 보여주는 수치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할 때 홍콩 사태의 원인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WEF 경쟁력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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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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