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개념이 철저히 누락된 채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기반은 시민이며, 시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사법체계를 포함하는 국가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검찰 권한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다
검찰 권력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 권력이 뚜렷이 부각된 것은 군사정권이 종식되는 과도기였던 6공화국 이후였다. 문민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법치'라는 이름하에 정치군인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검찰조직이 차츰 접수해나가면서 마침내 지금과 같은 검찰권력 전성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천부인권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공리(公理)'이다. 그러나 검찰독립이나 검찰수사권이 마치 신성불가침 혹은 절대적 권리처럼 간주하는 일종의 '천부검권(天賦檢權)'이란 존재할 수 없다.
검찰이라는 제도는 본래 프랑스에서 왕의 '편의'를 목적으로 해 위해 만들어졌다. 13세기 무렵부터 프랑스에서 왕과 영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대관(代官, procureur)을 두게 됐고, 14세기 이후 왕의 대관은 점차 모든 중죄의 고발자로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면서 왕의 대관은 "중죄가 처벌돼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익에 해당한다"는 관념에 따라 단순한 왕의 이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피해당사자의 소추와 독립해 일반이익, 즉 공익을 대표해 소추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검사, 마땅히 '공적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가져야
'검사(檢事)'라는 명칭은 물론 일본으로부터 유래했다. 반면, 독일에서 검사라는 용어에 대응하는 용어는 'Staatsanwalt'로서 '국가의 법률가' 혹은 '국가의 변호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체포'나 '검속'의 의미를 연상시키는 검사와 근본적으로 달리 '공적(公的)' 의미를 지닌다.
독일에서도 검찰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오랜 시간의 논의 과정을 필요로 했다. 그 논의의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검사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검사의 "객관 의무에 관한 규정"의 명문화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에서 검찰은 "공적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우리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는 너무 상이하다.
검사의 주민 직선제, 검찰에 대한 시민의 유력한 통제 수단
검찰제도는 각국마다 상이한 제도로 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이른바 '직업적 검사'의 존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검사는 연방검사와 지방의 지방 검사장(District Attorney)으로 구분되는데, 연방검사는 모두 94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당적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지방 검사장이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다는 사실이다. 검사에 대한 주민 직선, 이 방식은 검찰을 주인인 시민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우리에게 대단히 유효한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검찰 기소독점 제도 역시 시민에 의해 견제돼야 한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부터 비롯됐다. 말 그대로 일제잔재에 속한다. 그런데 이 검찰의 기소독점 제도는 오늘날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를 결정한다. 그리해 시민은 대배심, 혹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직무집행명령제도(mandamus)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한다.
한편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사인(私人) 소추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가 소추주의만이 관철되면, 범죄 피해자의 피해 배상과 정당한 응보 감정을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형사소송 절차는 또한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소추를 할 수 있는 사소권(私訴權, Action civile)을 인정함으로써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남용에 대한 제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범죄 피해자는 가해자를 형사법원에 직접 소환의 방식으로 범죄피해의 배상을 요구하는 사소를 제기할 수 있고,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있더라도 범죄 피해자가 예심판사에게 사소당사자가 되는 신청을 해 공소권을 발동시킬 수 있다.
국민 불신기관 1,2,3위인 국회, 검찰, 경찰개혁은 반드시 '시민통제'를 기본으로
비단 검찰개혁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혹여 최근의 검찰개혁이 경찰의 권한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만 결과돼서는 안 될 일이다. 경찰 조직 역시 국민들의 커다란 불신을 받고 있다. 실제 국회와 검찰 그리고 경찰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불신기관 1,2,3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있다.
경찰조직 역시 시민의 통제 하에 둬야 한다. 영국은 2002년 제정된 경찰개혁법에 근거해 2004년부터 경찰비리민원조사위원회(IPCC)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수백 명으로 구성된 이 독립적 경찰감시기구에는 의장과 위원에 경찰경력이 있는 인사를 철저히 배제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직권으로 경찰의 위법행위를 조사할 수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경찰관 기소를 검찰총장에게 권고·요구할 수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야말로 대표적인 국민 불신기관이다. 정쟁으로 지새면서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국회를 견제할 수단과 제도는 전혀 없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절실하다.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제가 있다면 국회가 지금처럼 이렇게 국민의 요청에 철저히 귀 닫을 수는 없다. 시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반드시 '주인'인 시민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 그 유력한 방안은 바로 소환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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