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립 70년, '중국 자본주의'의 탄생 이야기

[최재천의 책갈피] <붉은 황제의 민주주의>, <중국인 이야기7>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成立)70주년'이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번역한 우리식 표현은 '건국'이 아니라 '수립'이라는 게 흥미롭다.

독일 사람들이 통일과정에서 사용했던 농담이 하나 있다. "독일사람 칼 마르크스의 유산을 동서독은 어떻게 분배했지?" "서독은 <자본론>을, 동독은 <공산당 선언>을 가져갔어."

마르크스의 어머니가 이렇게 불평했단다. "우리 아들이 자본에 대한 책을 쓰는 대신 자본을 모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본론>의 영어판은 1887년에 나왔는데, 1890년 <자본론>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5000권이 금방 팔렸다. 도서업자들이 <자본론>을 '자본을 모으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광고했기 때문이었다. (<거장의 귀환>)

중국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의 중국전문가인 가토 요시카즈의 <붉은 황제의 민주주의>와 시대의 이야기꾼 김명호 선생의 <중국인 이야기7> 두 권을 종합했다. 김명호 선생의 책이 훨씬 리얼하고 상세하다.

시중쉰은 산시성의 농촌에서 태어나 12세 때 공산주의 청년당에 참여하고, 14세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농민운동에 참가했다. 그런데 1962년 시중쉰이 제작에 관여한 소설 <류즈단>에 '반당' 낙인이 찍히는 바람에 마오쩌둥은 시중쉰에 대해 사상 검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정치적으로 부활한 1978년까지 16년간 시중쉰은 실질적으로 연금 생활을 하게 된다.

"시중쉰을 구한 이는 저우언라이였다. 저우언라이는 시중쉰을 정적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당 중앙에 진언해 복권시켰고, 그의 생활환경까지 마련해주는 등 힘을 썼다. 그리고 1977년 말 인사를 담당하는 중앙조직부 부장 후야오방이 시중쉰의 '무죄'를 입증하고, 시중쉰을 광둥성으로 파견했다." (가토 요시카즈)

1996년 12월 24일 푸젠성 부주석의 시진핑은 25년 전 베이징 교회에서 있었던 부자상봉을 얘기하며 감회에 젖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얼떨결에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동시에 나도 한 대 물고 불을 붙였다." (김영호)

"특구가 좋겠다. 시중쉰은 특구 전문가다. 반세기전 시중쉰이 만든 산간닝 변구도 처음에는 홍색특구였다. 이번에는 경제특구를 만들어라. 지원할 돈이 없다. 재주껏 살길을 찾아라." 덩샤오핑이 시중쉰에게 했던 말이다. 경제특구는 이렇게 탄생했고, 중국식 자본주의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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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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