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역학조사만이 돼지열병 확산 막을 수 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살처분이 아니라 선제적 대응할 수 있는 정보가 관건

파주, 연천에 이어 경기도 김포 통진읍과 파주 적성면에서도 23일 저녁과 24일 오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양돈농가에서 잇따라 확진됐다. 지난 17일과 18일 파주와 연천에서 각각 확진된 지 5~6일 만이다. 파주, 연천에서 발생한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감염 경로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오리무중 상태에서 잇따라 최초 발생 인근지역에서 치명적 돼지 전염병이 발생하자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든다.

물론 아직 전국 확산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초기부터 방역대응 최고단계인 심각 경보 발령을 내려 경기도가 파주, 연천뿐만 아니라 포천, 동두천, 철원, 김포 등 모두 6개 시군을 중점관리지역으로 정하고 모든 양돈농가 소독을 마쳤는데도 발병했기 때문에 전국 확산을 염려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등 가축전염병 방역 당국과 시도, 시군구, 그리고 양돈농가들은 농장 주변 소독과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농가 주변 사육돼지 살처분, 돼지 반출 엄격 통제 등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조치도 물론 돼지 전염병 확산을 막는데 매우 중요하다.

바이러스 확산 차단 1차 저지선 뚫려 2차 발병

문제는 최초 발생 이후 초기부터 밤낮없이 강력 대응을 해왔음에도 김포에서 3번째 발생했고 거의 동시에 다시 파주에서도 4번째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김포는 한강 이남 지역이어서 앞으로 경기 남부 지역, 더 나아가 우리나라 돼지 최대 사육지인 충청지역으로까지 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김포와 파주 2차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은 1차 발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난 17일과 18일 1차 발생이 확진됐기 때문에 현재까지 우리가 감염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1차 감염의 시기는 이달 초순~14일께로 추정할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는 4~19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2차 발병은 1차 발병 뒤 5~6일 지난 시점에서 확진됐기 때문에 반드시 1차 발병 양돈농가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됐다고 100%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전파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인 가축전염병의 경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먼저 정부는 초기부터 총력을 기울이는 긴급 대응에도 불구하고 1차 저지선이 뚫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왜 아직까지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와 함께 저지선이 왜 뚫렸는지도 시급하게 알아내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은 사회적 재난

그렇지 않으면 2차, 3차 저지선도 뚫린다. 그렇게 되면 전국 확산은 시간문제이다. 대재앙이다. 우리나라는 법정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도 고병원성 조류(鳥類)인플루엔자와 더불어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 재난이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다음 주까지가 재난으로 가는 문턱 시기가 된다. 지난 1주일가량 전국 곳곳에서 사력을 다해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을 막기 위해 싸우는 일선 공무원과 양돈농가들 사이에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다시 힘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내야 한다.

효과적 방역을 위해서는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발병농가가 확인된 뒤 그때서야 인근 농장 돼지를 살처분하고, 사람과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돼지의 유통을 금지하는 등 제한하는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기에 충분한 조치는 아니다.

다시 말해 확진되기 3주전부터 확진된 농가를 다녀간 차량과 사람 등에 대해서는 일일이 조사하고 이들까지 의심 대상으로 분류해 확진된 농가와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2015년 메르스 창궐 때 감염자나 환자와 접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택격리를 일정 기간 동안 한 것처럼 말이다.

살처분이 아니라 선제적 대응할 수 있는 정보가 관건

당시에도 너무 많은 사람이 가택 격리 대상이 됐기 때문에 인권 침해 논란과 효과 등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소 과잉 대응으로 보이는 그런 조치 때문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해서도 똑같은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

이미 전국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됐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대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양돈농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하다.

역학조사관은 조사대상 양돈농가에서 거짓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는 거짓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중요한데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중요 정보를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건성으로 하는 조사가 아니라 치밀하게 묻고 따지는 자세가 역학조사에서는 성패를 좌우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는 것은 살처분이 아니다. 살처분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정보다. 바이러스 전파보다 사람이 더 빨리 그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정보다. 정보는 치밀한 역학조사에서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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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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