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 정치 판갈이 시작됐다

[이충렬 칼럼] 8월29일은 기쁜날: 정치판갈이 시작됐다.

8월 29일은 경술국치라 하여 1910년 조선이 일본에 병탄된 날로 기념된다. 그러나 어제 2019년 8월 29일은 참으로 기쁜 날이었다.

국민에게 가장 불신받는 국회에서 정치혁명의 고동소리가 힘차게 울렸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홍영표의원)는 자유한국당의 '막장'스런 훼방을 돌파하고, 이른바 '준연동형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빠르면 11월 17일부터 본회의에서 최종투표가 가능해졌다.

선거제도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예측이 많았다. 선거구 조정 몇 개 하는 것도 자기 손으로 못하는 국회의원에게 제도 자체를 바꾸는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해냈다. 작년말 십여일에 걸친 단식을 통해 선거법 개정의 불씨를 되살려낸 손학규 대표의 노력을 기억한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가장 손해를 많이 보는 정당이 집권 민주당이다. 그런데도 이 개혁안을 뚝심있게 밀어부친 홍영표 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아직도 전도에 대해 비관적인 관측이 여전히 많다. 지역구가 백여 개 가까이 재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본회의 투표 시 비밀·무기명 투표라는 함정에 빠져 부결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통과를 낙관한다. 그 이유는 비관론자들의 근거가 틀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단 두 가지를 지적해보자. 첫째, 자유한국당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장외투쟁? 협상거부? 결국 그들은 이성을 되찾아 자신들의 안을 제시하면서 협상 국면을 열 것으로 본다. 아마도 개헌 문제도 연동될 가능성이 크다.

1988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는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촛불혁명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했듯이,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자유한국당의 손바닥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촛불혁명이 정치혁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둘째로 극우와 보수진영의 통합논의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준연동형제'로 선거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극우와 보수진영에 새로운 정치분화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 '반문재인' 기치로 모든 세력이 한데 모이자는 대통합론은 승리를 위한 유일한 활로로 주장되어 왔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우리공화당에서 자유한국당, 유승민, 안철수까지 모두 한 텐트에 모이자는 대통합론이다.

그런데 사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라는 '바지사장'을 내세운 친박의 당이다. 친박이 주도하는 범 야권통합론은 비박의 정치적 소멸을 의미한다. 그들은 유승민의원과 안철수전대표까지 우리공화당과 버무리기를 원한다. 그런데 비박과 유승민·안철수가 새로운 제도하에서 친박의 헤게모니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추석을 넘기면서 보수세력의 분화 양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이 흐름은 결국 보수대통합보다는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른 분별정립의 양상을 초래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준연동형제'가 단순히 보수분열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정치에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한다. 즉 소선거구제도가 그동안 심화시켜온 정당별 독점·카르텔 시스템이 무너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분석기사가 지난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바탕으로 각 정당의 유불리를 계산하는데 이야말로 단견에 불과하다. 가령 정의당을 예로 들어보자. 바뀐 제도하에서 정의당만이 유일한 진보정당일까? 진보정당의 대표성을 100% 가져갈 수 있을까? 필자는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기득권도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기존 정당의 분화가 일어날 수 있고, 그동안 제도의 진입장벽앞에서 좌절했던 새로운 사회세력이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동할 수도 있다. 내년 총선에 대해 '준연동형제'를 실시하면 '가봐야 안다'가 현재로서는 필자의 답이다.

대통령직선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첫째 정권이 탄생하면 집권당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고 대통령직계인맥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독점카르텔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희극적인 '후보단일화' 또는 '사표방지론' 등의 정치공학이 민심을 왜곡하게 만드는 것도 소선거구제의 비극이었다.

민주당도 진보정당도 보수정당도 심지어 극우정당도 광범위한 분화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 핵심에는 제도적 기득권이 이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세력도 이제는 자기의 실력만큼 의석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현재의 '준연동형제'에 대한 필자의 유일한 걱정은 유권자들이 '정당의 최종의석수'가 '정당투표'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착각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를 본게임으로 생각하고 정당투표는 단순한 선호투표로 잘못 알 수가 있다. 역으로 민심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완전연동형제'를 실시하되 '지역구 득표율과 정당득표율을 합산 반영하는 복합형 연동형제'를 주장해왔다.

범민주세력의 경우, 필자는 민주동맹이라는 개념을 주창해왔다. 6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고 있는 핵심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필자는 여러 번의 칼럼을 통해 민주동맹은 '김대중이 이끌었던 호남'과 '김영삼이 이끌었던 PK지역' 그리고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대학생 등 지식인 운동가'들의 3각동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해왔다.

88년에 소선거구제가 아니라 '연동형제'에 가까운 제도가 실시되었다면 민주세력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민주동맹'의 헤게모니는 구축되었을 것으로 본다. 아마도 김영삼의 3당합당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간 민주동맹은 호남과 PK지역의 연합과 분열의 투쟁사였고, 지식인운동가들은 독자적 영역과 이념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득권제도의 일부로 안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준연동형제'가 실시되면 민주동맹 내부의 '정치과정'이 훨씬 더 민주적으로 재조정될 것이다. 나쁜 쪽으로 가면 파벌정치가 심해질 것이며, 좋은 쪽으로 가면 '민주동맹의 화학적 결합'이 강해질 것이다.

민주동맹의 연속집권을 위해서는 새로운 선거제도하에서 더 높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권력구조의 일부 손질을 포함한 개헌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자유한국당이 개헌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협상을 제안해 온다면 열린 자세로 응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제 8월 29일은 예전에 노대통령이 말한 대로 '야! 좋다!' 바로 그 심정이다. 그 분의 필생의 소망이 이제라도 성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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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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