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지소미아' 종료, 위기 아닌 기회다

[좌담회] 지소미아 종료 평가와 이후 한반도 정세 전망

지난 22일 정부는 일본의 수출 통제 및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지소미아, GSOMIA) 종료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나서서 당혹감과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지난 7월 25일 이후 연일 미사일 시험을 발사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도 차츰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지소미아 종료의 의미와 이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김동엽 교수는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지소미아의 본질은 한일 간 정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면서 "이번 지소미아 종결이 지소미아가 가지고 있는 '한미일 3각' 틀에 얽매이는 고리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본다"고 평가했다.

정욱식 대표는 "지소미아 종료의 타이밍은 적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종료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했다. 이는 지소미아가 체결됐던 사유가 개선된 상황으로,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던 상황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지소미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협정이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관련돼있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 사안을 최대한 한일 문제로 좁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지소미아 종료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 대화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향후 남한이 북미 간 대화에 중재자나 촉진자로 참여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과 미국의 반응을 보면 한국의 역할에 대해 북한은 남쪽을 미국의 대변자로, 미국은 반대로 남한이 자신에게 이야기도 안하고 북한과 손발을 맞춰서 자신을 코너로 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지소미아 종료가 자국의 안보 영역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미국 입장에서 안보 사안인 북미 간 대화에 우리를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북미 사이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는게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등의 다른 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역시 지소미아 종료가 북미 회담과는 크게 관련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우리가 북미 양측을 중재하기 위한 조건과 환경이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남북 간 대화는 단절돼있기 때문에 한미 공조를 통해 미국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미 간 협상에서 핵심은 결국 '빅 딜'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에 달려있다. 양측이 대타협의 안을 만들어서 밀어붙여야 한다"며 "연내 합의가 가능하다면 북한도 5개년 경제발전 계획인 내년에 맞출 수 있고 미국도 재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 연내 빅 딜을 타결하고 내년에 이를 본격 이행하는 국면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좌담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의 사회로 26일 진행됐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지난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적 분위기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미중 무역전쟁에 한일 무역갈등뿐만 아니라 지소미아 종료 문제까지 불거졌다.

지소미아 종료가 향후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우선 이번 조치에 대해 평가해본다면?

김동엽 : 개인적으로는 지소미아가 처음에 맺어졌던 2016년부터 반대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종료돼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점이 지금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신중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시점에 어떤 파장이 있을지 고려해야 할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에 대비해 여러 시나리오들이 점검됐다면, 그리고 그에 맞춰 나름의 복안이 있었다면 괜찮았다고 본다.

그런데 지소미아의 본질은 한일 간 정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그 시작점이 그랬듯 한일 양측의 갈등보다는 미국과 관련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는데, 오히려 이번 지소미아 종결이 지소미아가 가지고 있는 '한미일 3각' 틀에 얽매이는 고리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 측면에서 왜 종료했냐도 중요하지만 향후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욱식 : 지소미아 종료의 타이밍은 적절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종료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했다. 이는 지소미아가 체결됐던 사유가 개선된 상황으로 종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던 상황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현 상황에서 정부가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할 부분은 일본과 계속 이런 형태로 갈등을 지속할 것이냐, 아니면 일본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동참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지금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는데 정부는 북일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편으로 정부는 미국 반응을 잘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미국 주류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지켜보자는 반응을 내놨다. 그렇다면 한미 간 갈등은 정상 간 전화통화를 하든 메시지를 보내든 해서 톱 다운 방식으로 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소미아는 오바마 대통령 집권 당시에 했던 일이라는 점을 잘 주입시켜서 갈등 국면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동엽 : 그런데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 정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전략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 때 이야기했던 '재균형', '아시아로의 회귀' 등과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트럼프의 전략은 오바마 때보다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의 핵심은 태평양 축이었다. 즉 태평양으로 확장하는 중국에 맞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반도, 대만, 필리핀이 중요했는데 지금은 이를 확대해서 인도, 호주까지 연결한 것이다.

물론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세운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태평양이 아닌 서쪽으로 진출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에너지원 물동량의 70%가 인도양을 통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국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름'을 빼는 파이프관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 축적되고 있는 과잉 건설, 자본, 인력 등을 밖으로 빼는 과정을 통해 예전 일본이 겪었던 '버블 경제'를 겪지 않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이걸 미국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중국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묶어버리면 안에서 이 고름이 터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 등도 활용하는 것이고.

앞서 말했지만 이번 지소미아 종료를 통해 우리가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후 정부의 움직임이 미국의 중국 봉쇄 하위 구조에서 이탈하겠다는 식으로 이어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일단 현 상황에서는 지소미아 문제를 한일 간의 문제로 완전히 좁혀서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욱식 : 물론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이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이름이 바뀐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때 미국의 기본적 전략은 동맹과 우방국들의 군사 능력을 높이고 군사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패권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과 관련해 이러한 전략보다는 '금전'을 중시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자체적인 힘으로 중국을 상대할 수 있다면서 굳이 동맹에 미국의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군사 기술과 경제력, 여러 전략 무기의 우수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독자적으로 하면 되지 굳이 과거처럼 동맹국을 결집시켜서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렇다보니 미국 주류의 연속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통령이 바뀌는 과정에서 미국 내부의 응집력은 줄어들고 있다. 만약 오바마 정부 때 지소미아 종료가 일어났다면 우리한테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우리가 복안을 가지고 현 상황을 잘 풀게 되면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해 동맹의 업그레이드 언급했는데,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동맹이 강화하는 일변도로 빠지면 안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군사적 부분은 유연화 시키면서 평화 구축을 도모할 수 있는 동맹 관계로 끌어가는 것을 구상해서 하나 둘씩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 상황은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향해 가던 분위기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맞다. 이후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냐가 중요한데, 지소미아 종료와 맞물리면서 9월 북미 회담의 성사 여부와 그 결과가 미칠 여파가 커질 것 같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프레시안 : 지소미아 종료 이후 미국 정부가 강력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이번 사건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켰고 우리가 북한에 대해 더 취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동엽 : 미국이 강하게 불쾌감을 표시한 것은 우리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그만큼 미국이 모양 빠지게 된 상황이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시아로의 회귀든, 인도-태평양 전략이든 미국은 이를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 구상하고 있다. 그런 미국에게 이번 사건은 타격이 될 수 있다. 러시아가 최근에 독도 영공을 침공했을 때 여기에 같이 대응해줘야 할 한국과 일본은 독도 문제를 가지고 대립했다. 이를 보고 중국과 러시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국 너희 뜻대로 될 것 같아? 밑에서 저렇게 싸우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중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볼 때 미국 입장에서 가장 견고하게 중국을 막을 수 있는 지역이 그나마 동쪽, 즉 한반도와 일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일본-한국의 구도를 가져왔는데 최근 이것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니까 미국은 모양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소미아 종료까지 나오니 미국은 기분이 많이 나빴을 것이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 한국군이 이번에 독도 방위 훈련을 실시했는데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규모가 커졌다. 이 훈련을 두고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동엽 : 대내, 대외적인 목적이 다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안 할 수는 없다. 현재 한일 양국 정부는 상대방과 관계에서는 잘못되고 있는 측면이 있지만 자신들의 정권을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양국 간 접점이 생기려면 상대에게 압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과 일본 국민이 자기들 정부를 상대 쪽으로 틀게 해야 하는데 양측 정부 모두 여기서 굽히고 들어가면 대외, 대내적으로 헤어나기가 힘드니까 이렇게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독도 방어 훈련의 명칭을 '동해 영토 수호 훈련'이라고 바꿨던데 이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훈련의 규모는 두 배나 커졌지만 동해라는 용어를 쓰면서 어떤 특정국가가 아니라 불특정 국가와 세력에 대비해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는 차원의 훈련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훈련도 독도에 일본의 극우단체가 상륙하는 상황과 함께 불특정 국가의 침범 상황, 주변 국가 함정의 영해 침범 상황 등을 가정해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이번 훈련이 단순한 독도 방위의 훈련이 아니라 포괄적인 여러 상황을 감안해 진행했고, 이를 통해 일본과 적대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욱식 :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이 국내 정치적으로 '적대적 의존관계'에 들어간 상황이 가장 우려된다. 실제 양측의 갈등이 국내에서 각자 정부의 지지율을 받쳐주는 효과가 드러나고 있기도 하지 않나? 그런 상황이라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이 갈등 국면을 타개하려는 동기가 위축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국가 간 관계가 나빠지면 결국 국가 구성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우리야 일본이 숙이고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현재 그런 징후는 없고 앞으로도 별로 그럴거 같지 않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경제적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부분에 대해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미국, 한일 갈등 중재할 이유 없다

프레시안 : 미국이 보기에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자신들의 동아시아 전략에 있어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중재를 할법도 한데, 왜 미국은 가만히 있었을까?

정욱식 : 7월 초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고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는 경제 보복 조치가 가시화될 때 국내에서는 '미국이 개입할거다. 타이밍의 문제다'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은 팔짱 끼고 있었다.

군사 및 안보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한일 간 관계 악화가 미국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전쟁에 준하는 상황의 발생은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트럼프 정부는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을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향후 REC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한중일 FTA 등 자유무역과 관련한 조치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한일 갈등으로 이같은 조치가 다 물 건너가게 생겼다. 즉 동아시아의 자유무역질서를 억누르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일본의 수출규제와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트럼프 정부가 개입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또 이번 조치에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장기적 목표는 남북경협의 본격화를 예방한다는 측면도 있다. 전략물자 통제를 엄격히 하면서 북한에 이러한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이 부분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이미 이야기가 됐을 것이라고 본다. 일본의 이 조치는 미국의 '최대 압박' 전략과도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 25일(현지 시각)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AFP=연합뉴스

한편으로는 전면적인 개입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가 한일 간 개입을 꺼리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나 주요 국가 문서에 과거 같았으면 한국, 일본, 호주 등과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게 언급됐을텐데 지금 트럼프는 이보다는 '공정함'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 지난해 북한과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북한 위협론의 필요성도 굉장히 떨어졌고, 중국과는 경제전쟁을 하다 보니 여기서 한일 문제에 개입해봐야 득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일 간 갈등에서 미국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한일 간 경쟁이 붙을 수 있는데, 그럴 경우 트럼프는 꽃놀이패를 쥐게 되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이나 무기 판매에 있어 경쟁이 붙은 양쪽에 청구서를 들이 밀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부분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김동엽 : 미국 개입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미일 구도를 옭아매고자 미국이 노력했던 것이 한일 양국의 역사적 갈등 해결이었다. 위안부 합의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뤄진 셈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한일 간 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면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군사적 차원에서 동북아 문제들을 바라보고,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즉 한일 간 다양한 역사적 문제에 개입하는 순간 대중국 전략의 의도가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미국이 쉽게 개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또 미일 간 이 문제와 관련해 일정한 공감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여기에 괜히 개입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이 중요시하고 있는 미일 동맹 자체를 더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했을 수 있다.

지소미아 종료와 북미 대화

프레시안 :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나 불확실성은 결국 북핵 위협이 없어지고 남북관계가 풀리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지소미아 종료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전망하나?

김동엽 : 지소미아 시작점 자체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관련돼있다. 따라서 미국이 생각하는 구도 등을 생각했을 때 분명히 지소미아 종료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래서 이 사안을 한일 문제로 좁혀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관건인 북미 대화가 지소미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반도의 전체 안보 환경이나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자면 지소미아가 큰 변수이긴 한데, 북미 관계라는 양자적 차원에서만 보면 지소미아의 유무는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가 북미 간 대화에 개입하려고 했을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남한은 지난 1년 동안 북미 사이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잘 해왔다. 평창 올림픽부터 시작해서 9월 평양 정상회담까지의 과정은 좋았고, 올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4월에는 워싱턴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면서 중재자든, 촉진자든 나름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6월 30일 판문점에서의 남북미 정상 회동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할 부분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나타나는 북한과 미국의 반응을 보면 한국의 역할에 대해 북한은 남쪽을 미국의 대변자로, 미국은 반대로 남한이 자신에게 이야기도 안하고 북한과 손발을 맞춰서 자신을 코너로 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양측 모두 우리를 균형된 중재자가 아니라 일방적 메신저 또는 중재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소미아가 종료된 현 시점에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북미 간 협상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즉 미국이 우리에게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 동참할 기회를 줄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미국은 지소미아 종료가 자국의 안보 영역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북미 간 테이블에 우리를 다시 불러 들일 가능성이 낮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북미 사이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는게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등의 다른 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정욱식 : 지소미아 종료는 북미 회담과 별로 관계가 없을 거라고 본다. 한미 관계는 좀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우려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소미아 연장을 선택했다면 남북관계에 악재가 됐을 수 있다. 그래서 추가적인 악재를 차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부분도 있다고 본다.

또 북한이 최근에 정부에 막말을 하고 한국만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는 미사일 시험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려를 표명한다든지, 경고를 한다든지 등등 발언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 일체 그런 것이 없다. 오히려 북한에서 오케이하면 실무회담을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역시 분명 과거와 달라진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북미 양측이 처음 만났을 때는 남한 정부가 중재 또는 촉진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게 필요 없어졌다. 여기에 북한은 한국의 중재 역할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과 바로 소통이 가능한데 남한이 끼어들 필요가 있냐고 보는 것 같다. 이는 지소미아 종료 이전부터 있었던 생각으로 보인다.

물론 지소미아 종료에 따른 한미 간에 일시적인 불편함이 생기긴 했으나, 오히려 이제는 한미 동맹 문제에 관해 우리가 어젠다를 가지고 치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싫다고 하고 북한도 이걸 가지고 물고 늘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한미 정상 간 합의를 통해 적어도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 훈련은 중단하겠다는 정도의 조치를 이끌어내는 등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소미아, 위안부에 이어 사드 배치까지?

프레시안 : 지소미아 종료를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2017년 사드 배치 등 미국의 관여로 만들어진 사안들이라고 한다면,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는 정리됐고 이제 남은 것은 사드 배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나?

정욱식 : 현재 사드 배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갔고 내년 초에 끝난다. 약식평가에서는 상관 없는데 일반 평가에서는 주민 공청회를 해야 한다. 이게 변수인데, 정부에서는 최대한 공청회를 미뤄서 주민들의 반발을 근거로 정식 배치를 늦추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지소미아 종료 이후 사드 철수 문제도 한미 간에 논의를 해야 할 사안이다. 당연히 미국 주류는 반발하겠지만 트럼프는 한국에 사드 갖다놓은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한미 간 합의로 사드를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자신의 성과로 포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이 정식 배치를 의제화할 경우 우리는 철수를 의제화하는 맞대응이 필요하다. 양국 정상이 합의를 통해 철수를 위한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프레시안 : 이미 사드 포대를 비롯해 시설은 다 들어온 것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철수할 수 있을까?

정욱식 : 현 상태로 유지한다고 하면 우리 정부가 2017년에 공언했던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사일방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식 배치가 공론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발전기를 가져다 놓고 레이더를 돌리고 있지만 정식 배치되면 송전선을 깔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국이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하면 2017년의 3불 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그 상황이 가기 전에 우리 측에서 먼저 철수를 의제화하면서 의제 선점 효과를 노리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김동엽 : 시설적 측면만 놓고 본다면 다를 수도 있지만 임시배치에서 실제배치로 넘어간다고 해서 이것이 '3불'을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3불은 추가적인 포대가 늘어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가 정식 배치 단계로 접어들면 어떤 경우든 중국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사드를 가지고 들어온 가장 큰 명분 상 이유인 북한의 위협을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해야 한다. 이와 연결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드 임시배치를 정식배치로 넘겨야 할 정도로 안보적 상황이 급변되거나 악화된 건 아니지 않나? 지금 안보 상황이 사드를 배치했던 2017년보다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사드를 배치했던 때와 비교했을 때 임시배치를 정식배치로 빠르게 전환할 만한 명분이 부족하다면, 이를 이용해 우리가 시간적인 여유를 갖는게 중요하다.

정욱식 : 사드 문제 관련해서 하나 더 짚고 싶은 부분은, 만약 정식배치에 돌입하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미국의 필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이 군사적 대응을 공론화할 것이고 북한도 가만히 있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동시에 불러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중거리 미사일 배치 명분을 쌓을 수 있다.

따라서 북미 회담이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사드 정식배치가 현실화되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현실화될 수 있고 그러면 동북아 내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 지난 2017년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성주골프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엽 :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사드와 다르다. 사드는 나름 배치 명분이 있었지만 중거리 미사일은 한국에 배치되는 순간 신냉전의 시작이다.

중거리 미사일은 사거리 500km 이상의 미사일을 의미한다. 이건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사드는 고각이든 뭐든 구실을 만들어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거리 미사일은 그런 명분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상황이 뒤바뀌지 않는 이상, 즉 북중러의 '북방 3각'이라는 개념을 통해 중국이 주한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나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은 이상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또 사드 정식배치 문제가 중국이나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해도 이걸 명분으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수는 없다. 또 실제 미국의 반발과 실제 물리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긴장 상황의 고조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중국이 말로는 긴장 고조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지리적으로 봤을 때 중국은 추가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더라도 괜찮은 상황이다. 오히려 사드 정식배치 됐다고 해서 단순한 말을 넘어선 추가적인 행동을 하면 그걸로 인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중국이 현명한 전략가라면 이러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가지고 올 정도의 실질적인 긴장 고조까지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의 '막말'은 간절함의 표시?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의 동향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북한이 저렇게 막말을 하고 연이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북한의 본심은 대체 무엇인가?

정욱식 : 우선 대내적인 측면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달 29일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있고 아마 그 이후에 북한은 나름의 '빅 딜'안을 준비해서 북미회담에 임하려고 할텐데, 북미회담이 잘된다는 건 곧 북한의 핵 포기를 의미한다. 즉 회담이 잘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결단을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구도인만큼,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초대형 방사포'로 자위력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 분야에서 계속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남한에 보내는 메시지도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문제뿐만 아니라 남한이 전면적 군비 증강으로 나가고 있는 부분과 관련해 이를 중지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또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도 있다. 미국이 지금 하는 단거리 미사일 시험 정도는 넘어가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자신들의 자위권 문제이며, 막말로 미국까지 날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냐면서. 어쨌든 미국은 눈감아주고 있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북한이 이렇게 연이어 미사일 시험을 감행하는 것은 역으로 비핵화 담판을 준비하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래서 9월부터 상황변화가 있을 수 있고, 이런 부분들을 우리 국방 예산에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 25일 북한 매체들은 지난 24일 북한이 '새로 연구 개발한 초대형 방사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가 25일 오후 공개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이 방사포를 뒤로 하고 활짝 웃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사실 남북, 북미 관계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 중에 하나가 남한이 내년 국방예산을 어느 정도 규모로 책정할 것이냐는 문제다. 북한이 과거에 이야기했던 병진노선과 지난해 채택한 새로운 전략노선은 상당한 모순관계에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지난해 새로운 노선을 이야기하며 군비 조절을 통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내적자원을 동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이 군비 경쟁 드라이브를 걸어 버리니까 골치아픈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물론 한반도 문제가 북미 간 적대관계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북미 회담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은 맞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금 남북관계가 상당히 악화됐다는 점을 살펴보고, 여기에는 북한의 언행이 유감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은 없는지 따져보기도 해야 한다.

김동엽 :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발언들, 특히 지난 4월 12일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포함해 지금까지 보도를 통해 나온 북한의 언사를 오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북한의 발언은 대내적 메시지로 귀결된다.

북한은 지난 7월 25일 이후 지금까지 미사일 발사 시험을 7번 했는데 처음에는 F-35 전투기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언급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러한 부분은 발표 내용에서 사라진다. 이를 통해 북한이 남한의 군사적 행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것이 최근 메시지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거나 동‧하계 군사 훈련 등을 김정은의 현지지도라며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는 어떻게 보면 김정은이 지난해 정상적인 통치 활동을 제대로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남한, 미국과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의 중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다.

김정은은 지난해 중국에 비행기를 빌리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싱가포르로 갔고 60시간이 넘게 기차를 타면서 베트남으로 향했다. 미국과 협의를 통해 인민들에게 선물을 안겨주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은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동안 훈련다운 훈련도 제대로 못했고. 이런 과정에서 북한 내부에서는 우리 안보는 어떻게 하냐는 의구심도 나왔을 것이다.

하노이 결렬의 충격을 받은 김정은은 이로 인해 두 달 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4월 12일 시정연설을 하면서 입장을 밝혀고 이후 처음으로 했던 공개활동이 군 부대 방문이었다. 이는 김정은이 지난해처럼 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훈련이든 군비 확충이든 할 건 다하면서 연말까지 미국에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즉 대화의 문은 열어 두되 내가 할 것은 다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결국 미국에 양보하는게 아니라 '니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본다. 또 트럼프가 트위터로 6월 30일 판문점 만남을 구상했지만 이걸 기회로 잡아 1시간 대화로 만든 것은 김정은이다. 이후 김정은은 7~8월 내부 통치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미국의 말도 오독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 훈련은 필요 없다, 북한 미사일 발사 별거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미국 너희들은 미사일 안맞으니까 그렇게 말하는거 아니냐, 우리만 맞아 죽으라는 거냐'라고 해석하는데 사실 트럼프 발언 역시 대내 정치적인 메시지로 봐야 한다. 1년 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대통령선거 후보 입장에서 발언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남한을 신경쓰기보다는 대선에 임하는 자신의 업적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북한과 협상을 해서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지난 6월 30일 판문점 회동 이후에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이해한다고 넘기면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쓸데없고 돈 낭비라고 일갈하는 이유도 북한과 협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각하면서 실무진에서는 어떻게 하든간에 지도자 간에는, 즉 김정은과 자신의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혹시나 있을 수 있는 회담에서의 북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해석된다.

한국, '중재자' 또는 '촉진자'만이 능사 아냐

프레시안 : 최근 북한이 WFP(세계식량계획)를 통해 전달하려던 우리 쌀은 받지 않고 중국이 지원하는 쌀은 받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중 간 경협이 다시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는데, 반면 남북관계는 상당 부분 막혀있다. 남북관계 복원, 그리고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정욱식 : 북한에게는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다. 살아서 돌아오려면 뒤에 묶인 줄이 튼튼해야 한다. 북한 인민들의 지지는 물론이고 중국 혹은 러시아와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공고히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가서 중국 수뇌부 만나서 군사협력 강화하겠다는 것도 미국과 본격 담판에 돌입하기 전에 안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중국과 러시아가 단단히 잡아주겠다는 메시지가 있어야 북한도 나름대로의 빅딜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4월 시정연설을 통해 북미 간 협상 시한을 올해 말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내부적으로도 그렇게 시한을 잡아놓은 것이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에게 '너희들이 양보해라'라는 메시지만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협상안을 준비하자는 일관된 메시지를 밝히고 있다.

물론 미국이 이걸 받아들일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만약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을 초래했던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면 협상판은 100% 깨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내년부터 '새로운 길'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된다면 트럼프도 더 이상 지금과 같이 나올 수는 없다.

그래서 북미 회담이 중요한데, 우리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지금 우리가 양측을 중재하기 위한 조건과 환경이 상당히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남북 간 대화는 단절돼있기 때문에 한미 공조를 통해 미국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영변 핵 실험장 폐기 카드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이 방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우리 나름의 안을 준비해서 미국에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북미 간 협상에서 핵심은 결국 '빅 딜'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에 달려있다. 양측이 대타협의 안을 만들어서 밀어붙여야 한다. 연내 합의가 가능하다면 북한도 5개년 경제발전 계획인 내년에 맞출 수 있고 미국도 재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 연내 빅 딜을 타결하고 내년에 이를 본격 이행하는 국면으로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FP=연합뉴스

김동엽 : 남한에 대한 북한의 수위 높은 이야기를 보면 절절함이랄까, 간절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막말 자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다른 길을 가지 않게 붙잡아 달라는 신호로 보인다. 또 여기에는 남한에 대한 실망감과 섭섭함, 아쉬움 등도 묻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이후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핵화 문제에서, 또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문제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려고 했었는지에 대한 부분을 역지사지의 자세에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반성을 시작점으로해서 우리가 향후에 어떻게 현 상황을 풀어갈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동안 남한이 했던 중재자 또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다 버리라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다시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부분을 인정하고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다.

이번 정부는 처음에 출범했을 때는 남북관계를 통해 뭔가를 극복해 보겠다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었다. 남북관계를 통해 생길 수 있는 한미관계에서의 약간의 소원함 등을 감수하겠다는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것과 하려는 것의 차이가 커졌고 여기에 용기도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려고 해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은 오히려 남북관계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치고 나가야 한다.

북한이 통미봉남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 남북관계는 통미봉남으로 갈 수 없다. 이건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북한도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선후관계는 있을 수 있으나 누구하고는 이야기하고 누구하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식의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물론 북한이 플랜 A와 B를 모두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플랜 A는 당연히 미국과 담판을 짓는 것이다. 그게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올해 11월부터 내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고 새 정부가 짜여질 시기까지, 즉 앞으로 1년 6개월 정도는 북미 간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면 그 1년 6개월을 버틸 수 있도록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 것 외에 또 다른 합의 사항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트럼프 입장에서도 자신의 대선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시험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올해 11월 전까지 되돌릴 수 없는 북미관계를 일정 부분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걸 북미 관계로만은 할 수 없다. 남북관계도 함께 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만큼, 이를 동력으로 삼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모멘텀을 구축해야 한다.

북한이 만약 플랜 B로 간다면 미국을 젖히고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국제사회로 나가겠다는 건데, 이게 가능하려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유예하고 있어야 한다. 또 그 상황에서 남북 간 평화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 플랜 A를 택하든, 플랜 B를 택하든 간에 남북관계가 일정 부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있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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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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