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보복 국면을 남북 협력의 시대로 전환시키자

[기고] 유연한, 그러나 원칙 있는 '균형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구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장기적으로 살펴볼 때, 일본은 북미 접근을 계기로 북한을 적으로 설정해온 기존의 국가전략을 수정하여 이제 북한을 대체하여 한국을 '새로운 적'으로 설정해가는 과정에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하여 단순한 수세적 대응만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현 국면을 활용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감하면서도 절묘한 '베트남식 균형외교'

2011년 10월 11일, 베트남 공산당 응우옌푸쫑 서기장은 중국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평화적인 협상과 우호적인 협의를 통해 해상 국경분쟁을 해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그로부터 닷새 뒤에는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이 인도를 방문하여 베트남과 인도 간 정상 회담을 가졌다.

이러한 베트남의 ‘양다리 정책’에 대하여 중국의 언론 매체들은 베트남의 당 서기가 방중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을 우호적으로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동시에 베트남의 주석은 인도를 방문하여 인도와 합작유전개발에 합의한 것은 전형적인 '뒤통수 치기'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하면서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인도와 남중국해 유전개발협정을 체결하였다. 즉, 베트남은 중국과 인도의 대립 국면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자국의 안전보장을 강화하였다.

다만 베트남 정부의 기관지인 <인민보>는 쫑 서기와 중국 지도자 회견 기사를 톱뉴스에 다루면서 쯔엉 주석의 인도 총리 회견은 그 아래에 배치하고, 회견 장면을 담은 사진도 방중 사진을 두 배의 크기로 다뤘다. 인도에 비하여 중국을 보다 중시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중국의 분노를 감소시키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도 방문을 통하여 인도의 '동방 확대' 정책과 인도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베트남과 인도의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하여 쌍방은 남중국해 분쟁이 무력 사용이나 무력사용 위협이 아니라 관련국 각측의 평화적 방식에 의하여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렇게 베트남은 중국과 인도라는 지역 내 강대국을 상대로 그 대립 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함으로써 일종의 지역 내 세력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베트남식 균형외교'이다.

이밖에도 베트남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인도 해군에 자국 나짱항을 개방하여 주둔을 제의하는 동시에 러시아로부터 2100톤급 최신형 호위함 딩띠엔호앙 1호와 2호를 넘겨받아 해군함대에 배치했다고 공개하는 등의 다양한 연대 전술을 구사하였다.
과거의 적, 미국과 협력하여 중국에 대항하다

한편 2010년 8월 8일, 미국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베트남의 중동부 항구도시 다낭 부근의 남중국해(중국명 南海)에 도착하였다. 워싱턴 호는 양국 해군이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하는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다.

다낭은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로서 미국은 지난 세기 60년대 베트남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곳에 대규모 미군 기지를 구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다낭은 중국과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수역에서 베트남이 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지난 1970년대 말 중국과 치열한 국경 전쟁을 벌인 바 있었고,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서도 80년대 말 전쟁을 치른 바 있다. 그러한 베트남이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함대를 끌어들여 손을 잡았다. 중국은 설마 베트남이 과거의 원수 미국과 같은 배를 탈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영해 주권을 수호하려는 베트남의 의지는 미국과 한 편이 되어 중국에 대항하는 전략까지 구사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경사'는 너무 지나치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트럼프라는 개인 정치가에 북한 문제의 해결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것이 냉엄한 국제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국에 대한 우리의 경사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미국의 말에 순종한다고 하여 북한 문제가 풀려나갈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트럼프는 싸움꾼이고 협상가이다. 하나를 주면 또 다른 것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마냥 그의 말을 들어준다 하여 일이 성사되고 협상력이 높아질 리 만무하다. 최근 방한한 존 볼튼은 한일 간 조정을 빌미로 방한하여 불난 집 부채질하는 식으로 우리에게 방위비 올리라는 겁박만 하고 돌아갔다.

앞에서 언급한 베트남처럼 국제관계를 다변화하고 실리적 접근으로 미국을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유연하게, 그러나 원칙을 견지하면서 ‘합종’하고 ‘연횡’하는 ‘균형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일본 경제보복 국면을 남북 협력의 국면으로 전환시켜야

북한이 지금 남측을 보이코트하는 것은 냉전적 사고방식의 관행에 사로잡힌 남측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존재한다.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 단지 말로만 약속하고 아무런 후속 조치와 실천도 없는데, 신뢰가 존재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현재 남측을 만날 아무런 흥미도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 객관 조건이다. 북한에게 흥미와 유인을 제공하고 ‘체면’도 세워줘야 한다. 이제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이 어이없는 국면에서 남한과 북한이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에 공동으로 대응하여 협력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현재의 유엔 국제 제재 결의안에 북한 개인 관광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존의 금강산 관광을 비롯하여, 특히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분단된 조국, 도대체 지금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 자기 가족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 생지옥과 같은 곳이 달리 존재하는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도 이는 너무도 당연하고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다.

작은 접근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시작하면 협력의 장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신뢰란 공허한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적으로 간주하여 감행하고 있는 오늘의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남과 북이 협력한다면, 일본을 맞서는 그 과정에서 마침내 민족이 하나 되는 그날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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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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