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위헌적 조직"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일부 보수언론과 제1야당인 자유 한국당이 벌이고 있는 시비(是非)의 핵심은 2012년과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어떻게 보는가에 있다. 이 판결이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경제제재의 근거로 지목되자, 그가 페북을 통해 국내에서 판결 내용을 공격한 세력을 "친일파" 또는 "이적(利敵)"행위자라고 분명하게 지목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그의 실명을 내세워 각기 지난 7월 22일과 25일 사설을 통해 총공세에 나섰다.
이런 반격 행위 자체가 바로 자신들이 그런 지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반증해 준다. 아니었다면,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대외적으로도 옹호하면서 제대로 된 보도를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두 신문의 논지를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두 신문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위헌적 조직"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불법성을 모든 판단의 중심에 놓은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거나 부정한다면 그건 무얼 의미하겠는가?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 있는 세력이겠는가? 이들이 주장한 "사법자제"라는 용어로 대법원 판결이 내건 헌법 정신의 가치를 "자제"하라는 건 무슨 말인가? 누구를 위해서? 누구 앞에서?
혹여 언론의 비판이 가능하다고 해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기본 전제로 하지 않은 비판은 무슨 말을 하던 일차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에 손을 들어주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두 신문은 이에 대해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의 경우, 참여 판사 일부의 별개 의견이 첨부되어 있으나 이 역시도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기본전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2012년에 이어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점기의 불법성과 그것을 전제로 한 식민지 지배책임"을 분명하게 확인했고 피해배상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 된다"고 명확히 정리해 놓았다.
이걸 부정하면 무엇이 될까? 조국 전 민정수석이 페북에서 말했던 바처럼 "마땅히" 무엇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옳을까? 그가 말한 것과 다르게 부를 방법이 있긴 한 걸까? 게다가 "친일파"에 그치지 않고 "헌법 부정"이라는 규정까지 더해질 수 있다. 헌법 부정은 다른 말로 "위헌(違憲)"의 개념에 속한다. 그것도 어쩌다 모르고 한 게 아니라면 그 죄는 더욱 무겁다.
비판 아닌 인신공격과 대법판결에 대한 능멸
조선일보는 조국 전 민정수석을 향해 "친일로 국민 편 가르지 말라"면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친일이라는 딱지부터 붙이고 나오는 집권 세력의 버릇"이라고 몰아세웠다. 중앙일보는 서울대 동료교수들의 견해를 앞장세워 "삐뚤어진 법률관"과 "오만한 자세"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적 용어를 쓰면서 그를 비난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모두 정작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 내용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 평가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거나 또는 안다면, 그 논쟁이 극도로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논쟁은 제대로 하면 할수록 두 신문에게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논쟁이다. 판결의 내용이 공개되어 있고 그 논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사설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국 민정수석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 신문 사설은 "조 수석은 '한·일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정부 입장을 뒤집으면서 혼란을 일으켰다는 지적에 대해 친일이요, 이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 한일협정 문서공개에 대한 민관합동위원회 결론에 대한 이해도 잘못되어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글에서 확실해지는 것은 "대법원 판결이 혼란을 일으켰다"는 대목에서 드러난 조선일보의 시각과 자세이다. 그 주장을 대법원 판결이 혼란의 주범이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로 읽힐 수 있을까? 게다가 "혼란"이라. 과연 그런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기초한 일본의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사법적으로 정리한 논지가 어째서 혼란을 조성했다는 것인가?
또한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합동 위원회는 조선일보가 주장하듯 "강제징용 문제도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판단", 한일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개인적 청구의 권리가 없다고 한 적이 없다. "한국 국민은 징용 자체의 불법성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일본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음"이라고 오해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조선일보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공식적으로 논쟁하는 즉시 패배하고 말 것이다. 헌법 정신 부정 세력이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순간 헌정질서 교란을 선동한 책임을 이유로 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더 논쟁을 하고자 한다면 대법원 판결의 헌법 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우선 밝혀야 한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권리구제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청구인들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 등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전제 아래 해석상 분쟁발생시 중재조처가 적시되어 있는 한일협정의 내용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부작위"는 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식민지 피해 문제에 대한 사법기관의 명확한 판단이 내려진 획기적인 사태 진전이었다.
2011년의 헌재 결정,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은 모두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내려진 결론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의 오랜 노력과 각고의 투쟁이 열매를 거둔 결과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법적 판결의 역사적 의미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국가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비난이나 부정 또는 왜곡은 따라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중앙일보 사설의 무지 또는 의도
중앙일보 사설의 첫 머리는 어떨까? "'일제의 강제징용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을 부정·비난·왜곡·매도하는 사람은 친일파'라고 주장했던 조국 민정수석을 향해 서울대 로스쿨 교수마저 우려와 비판을 표출하고 있다."라고 적고 있다.
동료교수들의 지적과 우려라는 내용을 이 신문은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그가 국제법에는 어두워 법학 전반에 대한 통찰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정적이며 이분법적으로 법을 해석하고 정의한다"며 이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인용문은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은 수십 년간 이어진 논쟁이며, 이는 국제법의 시각에서도 함께 봐야 한다"로 되어 있고, 그가 좁은 시야와 지식으로 판결을 봤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도한 자신감에 따른 자의적 법해석"의 문제, 셋째는 "진영에 함몰돼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제3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내용과 근거 없이 활용한 인신공격성 비난이라는 점에서 논의의 가치가 애초부터 없다. 이 신문의 수준을 스스로 드러내주고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거론한 국제법에 어둡다는 이야기와 한일협정 해석의 논쟁사에 대해 살펴보자. 조국 전 민정수석이 교수시절 전공이 국제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법에 어둡다"라는 말이 틀리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의 전공과 비교해볼 때 법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인 평가가 되는 것이지 무지한 상태의 심각성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비약이다. 국제법의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가?
더욱이 국제법 이해의 부족 때문에 법학 전반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는 단정은 그야말로 이 신문 사설이 말한 대로 "단정적이며 이분법적"이다. 부족해서 뭐가 문제가 되었는지 구체적인 실례를 거론해야 논리적 합당성을 얻는다.
국제법이라....
미국 대법원이 역대로 내렸던 명 판결이 국제법에 무지해서 그 판결의 가치가 손상된 바 없다. 인종차별 철폐나 베트남 전쟁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 공개에 따른 대법원의 판결은 그 자체로서 인권과 평화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기준이 되었다. 게다가 국제법은 패권질서의 구축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주권국가간의 외교적 합의 또는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진전된 의식이 반영되어 그 내용이 구체화된다.
따라서 강대국이 만든 질서가 국제법으로서의 정당성을 자동적으로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국제질서는 변화해왔고 그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바로 국제법적 발전의 과정이 된다. 만일 조국 전 민정수석이 부당한 국제질서를 옹호하고 있는 국제법적 체계에 대한 변화를 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에 어두운 것이 아니라, 국제법적 진보를 이루는 노력과 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예는 외교사에 무수히 많다.
또한 한일협정을 기본적으로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우리를 구속할 수 있는 국제법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조약 서명 당사자가 아니기도 하고, 그것은 내용상 제2차 대전 승전국이 패전국 일본의 국제적 행동반경을 결정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러하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아시아 냉전체제의 구축을 위한 미국의 질서를 담은 것에 불과하고 이는 탈냉전시기에 들어서면서 균열이 생겨났고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도 이에 가세해서 그 질서의 기본 전제가 붕괴하고 있다. 패전국가 일본의 행동반경을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범위를 아베의 일본이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국제법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를 돌파할 국제법적 정의를 말하는 것인가?
한일협정 해석 논란이라
또한 중앙일보는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해석"이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하는데, 누구와 누구 사이에 이어져온 논쟁인가? 그 수십 년간의 논쟁은 우리와 일본 사이에 지속되어 왔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논쟁의 핵심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있다. 청구권 논란도 한일협정의 기본관계 문서를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다.
한일협정 내용을 조금이라도 접한 이들이라면 기본관계 조약에 제2조에 명시된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약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하다"를 놓고 그 시점이 언제인가가 한일 간에 얼마나 치열한 쟁점이 되었는지 알 것이다. 우리는 애초부터 무효이고, 일본은 1948년부터 무효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미국을 비롯한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국제법적으로 한일합병의 정당성을 옹호했다고 해서 그걸 "국제법의 시각에서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국제법은 유엔의 발전 과정에서 이미 폐기된 상태이다. 법은 언제나 진전된 현실을 담아내야 정당성을 갖게 되며, 그렇지 않으면 저항과 변화 그리고 철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한일협정 문제를 국제법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탈식민지적 정의가 담겨 있는 국제법의 정신에 근거해야 한다. 아니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국제질서 내지 패권적 체제 안에서 힘의 논리에 어쩔 수없이 받아들인 바가 있다 해도 그것이 곧 그런 질서와 법체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법학자라면 당연히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사유해야 한다. 아니면 그것은 부당한 기존질서의 수행도구에 지나지 않는 법 기술자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 로스쿨 교수들이 중앙일보의 증언대로 조국 전 민정수석을 비난했다면 그야말로 우리가 우려하게 되는 것은 조국이 아니라 서울대 로 스쿨과 그 교수들이 될 것이다.
결국 중앙일보는 결론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밝힌다. "조국 법무장관" 싫다는 것이다.
"조 수석이 지금까지 보여준 편협하고 삐뚤어진 법의식이 어떤 개혁의 후유증을 낳게 할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향후 판결과 검찰 수사 역시 다양한 시각을 배제한 채 '조국식의 이분법'으로 진행된다면 나라엔 악몽이 될 뿐이다. 더구나 야권 설득이 필수적인 개혁 입법 역시 그간 보여준 조 수석의 불통과 오만한 자세, 전무한 법조 현장 경험으론 언감생심이다. '조국 법무장관' 같은 최악의 무리수는 대통령도 재검토하는 게 사려 깊은 선택이다."
명백히 잘못된 결론이며. 잘못된 요구이다.
법과 외교, 그리고 역사
애초 기대했던 "조국 법무장관"은 검찰개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고 있다. 21세기 동북아시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외교와 이를 뒷받침할 법적 토대의 마련, 그리고 이런 힘과 역사의식이 결합하는 작업이다. 조국의 그간 활동과 사유에서 우리는 이 세 가지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본다. 그럴 수 있는 역량 또한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국제법 또는 국제정치를 공부한 적지 않은 이들이 보이는 역사지식의 부재, 역사의식의 빈곤은 재론하기조차 민망하다. 일본의 경우, 외교와 법이 한 몸이 되어 움직여 온 과정이 지금까지이다. 패전 직후 이들은 그런 식으로 국제상황에 대응해왔고 여전히 그렇다. 여기에 역사에 대한 제국주의 의식까지 결합되어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판이다.
한일관계는 단지 한국과 일본만의 관계가 아니다. 동북아 전체 질서를 새롭고 짜 들어가는 과제 자체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상태에서 남북의 분단 해소와 북한과 미국의 대치 종결, 미국과 중국의 대립 완충,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 변경 움직임에 대한 제동 등은 모두 우리 민족의 총체적 역량을 요구하는 절실한 도전이다.
그렇지 않아도 1965년 한일협정 체제는 이미 하나씩 붕괴되어왔다. 냉전의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노력,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 민중의 역사의식의 발전, 그리고 피해자들의 절절한 운동이 법적 권리를 획득한 과정, 일본의 초조감, 이 모두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변화되고 진전된 현실이 있다면 그걸 담아내는 내부의 대응과 국제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만일 일본이 한국에 대해 "화이트 리스트 배제"를 선언하면 그 순간 "관계 정상화와 경제협력"을 강조했던 1965년 한일협정의 정신과 가치를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예고해야 한다. 이는 매우 새로운 계기를 창출해낼 것이다.
어업협정 개정 논의 과정에 일본은 1998년 1월 23일 기존의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바 있다.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어업협정이 1998년 11월 19일 만들어졌던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화이트 리스트 배제 선언"이 아베의 전략 수정으로 불발이 된다 해도, 우리는 1965년 한일협정 체제 이후의 재구성을 전략화해야 한다.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 질서를 향해
일본의 지식인들이 최근 "한국은 일본의 적이 아니다"라며 일본 아베정권의 대한정책 수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고마운 일이며 함께 손을 잡고 나갈 일이다. 이와 함께 무라야마를 비롯한 고이즈미 등의 일본 총리들이 했던 신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 발언과 사죄 그리고 특히 고노 관방장관의 위안부 군 관여 인정 발언 등을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양국의 비준이 요구되는 국가 간 기본관계 문서에 공식화할 기회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그간 식민지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몇몇 총리들이 수차례 공식적으로 발언했으니 이를 새로운 기본관계의 근거로 삼는 일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더욱이나 일본의 장래에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여론을 일본 시민사회에 확산하는 노력이 지금 절실하다. 식민지 지배 불법성의 문제는 남과 북이 일본에 대해 공동으로 제기하고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점도 잊지 말아할 대목이다.
일본 정부에게 말한다. 한국이 오늘날 이 정도 나라가 되었는데 36년 식민지 지배에 대해 모두 배상해내라고 하겠는가? 아직 생존해계신 여러 차원의 피해자들이 수명이 남아 있는 시간동안 그 개인적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나서야 한다. 그게 일본으로서는 이리도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소모적인 외교적 기회비용을 줄이고 국가적 양심을 회복해 제대로 된 "정상국가"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이웃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어갈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이 일본에게 위협이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체제와 유라시아 체제가 하나로 만나 이어지는 너무나 소중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한일관계의 핵심에는 이런 미래를 바라보며 평화인가, 전쟁인가의 기로가 걸려 있다. 이런 시대에 법무장관으로 나설 조국의 보다 결연한 전투력을 기대한다. 페북의 공간을 넘어서.
전선(戰線)은 날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가치와 이를 적대하는 자들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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