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널리 보급된 살인 도구"

[최재천의 책갈피] 래리 커해너 <에이케이47>

"나는 내가 만든 AK47 소총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농민의 아들이었던 젊은 전차병 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프(Mikhail Timofeevich Kalashnikov)는 동쪽으로 진격하는 나치에게 입은 총상에서 회복되는 중이었다. 그는 병상에서 가장 단순한 자동화기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공식 병기로 채택된 해를 가리키는 '1947년형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 1947)'의 약자인 AK47은 2차대전을 끝내기에는 너무 늦게 실용화되었지만, 이 총의 탄생은 세계 전역에 죽음과 파괴를 퍼뜨리기에는 완벽할 정도로 시기적절했고, 금세기까지도 그런 죽음과 파괴는 지금도 계속 중이다.

소련은 이 소총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이른바 형제 나라들에 주는 선물이라며 AK 제작 기술을 제공했다. 라이선스 수수료나 기타 비용 없이 AK를 대규모로 생산하도록 허용했다. 총은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에 널리 널리 확산됐다. 북한도 1958년에 기술을 제공받아 실전에 배치했다.

데이비드 핵워스(David Hackworth)가 <전사의 심정으로>라는 책에서 불도저로 기지 건설 공사를 하던 중에 땅속에 묻힌 베트콩 병사와 AK를 발견한 이야기를 적었다. 핵워스는 진흙 속에서 총을 잡아 꺼내 노리쇠를 후퇴시켰다. 그리곤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거 봐. 진짜 보병 화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지." 그 말과 함께 그는 소총이 1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게 아니라 그날 아침 깨끗하게 닦은 것처럼 30발을 발사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병사들이 필요로 하고 가질 자격이 있는 총기였다. 병원처럼 깔끔하게 닦지 않으면 막혀버리는 M16이 아니라."

AK47 소총은 M16과의 전투에서 확실한 비교우위였다. 하지만 돈에서만큼은 전혀 달랐다. M16을 개발한 스토너는 M16 한 자루가 팔릴 때마다 1달러 정도를 받았다. 칼라시니코프는 M16보다 10배 넘게 팔린 자기 발명품에 대해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발명한 것이니 조금도 마음 쓰지 않는다'고 했다.

2004년 잡지 <플레이보이>는 '세계를 바꾼 50가지 제품'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AK47을 4위로 꼽았다. 1위가 컴퓨터. LA타임스는 AK47을 "역사상 가장 널리 보급된 살인 도구"라 칭했다.

▲ <에이케이(AK)47>(래리 커해너 지음, 유강은 옮김, 이데아 펴냄).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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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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