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17세 청년도 80세 노인도 앗아갔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폭염 재난, 올해도 재현되나 초긴장

다시 폭염의 계절이 왔다. 햇볕에 쪼여 온 몸과 마음이 불에 타는 듯한 뜨거운 날씨가 일상을 힘들게 만든다. 폭염은 지구 재난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재난이다. 이 불청객은 이제 매년 한반도를 찾아와 우리를 괴롭힌다. 농작물과 가축, 반려동물과 함께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급기야 생명마저 앗아간다.

요 며칠 동안 전국 거의 모든 곳에서 시민들이 한낮에는 길거리를 10분 이상 걸어가기 힘들다. 쏟아지는 땀과 함께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불쾌지수가 계속 높아간다. 횡단보도 녹색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지자체가 햇볕가리개로 설치해준 파라솔 안에 잠시 머물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길거리 파라솔은 도시 곳곳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지난주 서울에서도 최고기온이 36도를 넘는 등 폭염의 한반도 습격은 지난해와 2016년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염 재난의 재현을 우려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기후 전문가들은 올해 폭염의 정도도 만만찮을 것으로 본다. 그 까닭은 6월말, 7월초인데도 벌써부터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는데다 유럽, 인도 등 세계 곳곳에서 이미 폭염 피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인도 등 세계 곳곳 폭염으로 몸살

프랑스, 스페인, 독일, 체코, 폴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는 6월에 이미 기록적인 폭염 현상이 나타났다. 폭염 때문에 독일 아우토반의 속도가 시속 120킬로미터로 제한됐다. 스페인에서는 폭염의 영향으로 축구장 5,600개 면적의 산이 불에 탔다. 또 스페인에서는 40도가 넘는 더위에 농장에서 일하던 17세 청년과 80세 노인이 숨지는 등 사망자도 발생했다.

프랑스는 때 이른 폭염으로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자 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2003년 폭염으로 1만5천여 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폭염재난을 겪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인들에게는 폭염 트라우마가 있다. 프랑스는 폭염이 닥치자 즉각 휴교령을 내렸다. 유럽 도시 곳곳에서는 살수차와 물안개를 뿜어대는 차량이 도심의 열을 식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인도 곳곳에서도 6월말부터 섭씨 45도가 넘는 무더위가 이어져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미 1백 명이 넘는 인도인이 폭염으로 숨졌다. 인도 기상청은 올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5도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추운 지역인 알래스카에서도 섭씨 32도까지 치솟는 더위에 아이스크림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기상전문가들은 폭염을 몰고 오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날 곳으로 인도를 꼽고 있다. 인도인들은 2015년 최악의 폭염을 온몸으로 겪었다. 4월부터 시작된 당시 인도의 폭염으로 6월초까지 주로 남부·동부 지역에서 2,500명 이상이 숨졌다. 같은 해 파키스탄에서도 폭염이 6월부터 본격화해 6월말까지 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유엔에 딸린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도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2015년부터 5년 연속 폭염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기구는 또 "올해 열파는 더 강렬해지고 기간도 길어진다. 즉 예전보다 더 일찍 시작해서 늦게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폭염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건강은 물론 환경, 농업·축산업 분야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6월말~7월초 폭염은 전초전에 불과하고 앞으로 7월말~8월 폭염이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폭염재난의 시작, 1995년 시카고에서 7백 명 사망

폭염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그해 7월,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됐다. 그 여파로 7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폭염 재난이 사회적 문제로 처음 떠오른 사건이다.

폭염은 홍수나 태풍, 지진처럼 건물을 삼키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즉 재산 피해를 내는 것이 아니다. 홍수나 태풍, 지진, 폭설처럼 놀라운 시각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 희생자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죽어간다.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자신의 저서 <폭염 사회>에서 시카고 폭염을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 비극의 관점에서 접근해, 정치적 실패로 규정했다. 폭염은 사회재난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시카고 폭염 당시 폭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으로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나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홀로 살다가 더위에 쓰러져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희생자들의 거주지는 하나같이 사회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 싸구려 호텔들이었다. 그는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의 진단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 사회는 노인 빈곤층이 급격히 많아졌다. 이들은 에어컨도 없는 싸구려 여관방을 전전하거나 쪽방에서 지내다 폭염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빈곤노인층은 또 저혈압, 당뇨를 비롯한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한 여름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폭염의 제물은 주로 막노동 노동자와 빈곤 노인층

또한 저임금 막노동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60세가 넘었는데도 폭염 속에서 야외 중노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농촌에서도 70세가 넘는 노인들이 한낮 밭일을 하다가 폭염의 제물이 되고 있다. 지난해 폭염으로 숨진 이들은 40명이 넘었는데 대부분이 이들이었다. 올해는 이런 폭염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가 홍보와 소통, 그리고 현장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기상청은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이면서 이 더위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 주의보를 발령한다. 또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이면서 이 더위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 경보를 발령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다.

폭염주의보·경보가 발령되면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으며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낮 활동과 야외 작업은 잠시 쉬어야 한다. 폭염에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온열질환으로 일사병, 열사병, 열실신, 열경련 등이 일어나 고열, 두통, 어지럼증, 근육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제때 대처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6년 여름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그해 8월 한 달간의 기온은 다른 해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서울 시민들은 22일 동안 계속된 열대야 현상으로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1973년 이래 가장 긴 열대야였다.

폭염피해 예방 가능, 행동요령 알고 실천하는 것이 필수

올해도 수도권을 포함해 중부지방은 최근 한 달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장마철인데도 비는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부에서만 내렸을 뿐이다. 비를 기다리는 기도를 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주 중반 비가 하루 이틀 뿌린 뒤 더위가 주춤할 것이라는 일기예보 소식은 정말 반갑다. 하지만 이것이 잠깐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지난해에도 2016년 못지않은 폭염이 전국을 강타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그때부터 각종 폭염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 별로 무더위쉼터를 곳곳에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취약계층과 폭염 취약집단을 주 대상으로 하는 이 무더위쉼터는 지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위치를 알 수 있으며 각 보건소와 구청, 읍면 사무소 등에 쉼터를 마련해 놓았다.

정부는 폭염 대비 국민행동요령을 TV, 인터넷, 라디오 등을 통해 수시로 알리고 있다. 폭염 시대를 맞아 시민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전 11~오후 5시 외출 자제하기 ▲뜨거운 음식과 과식을 피하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 섭취하기 ▲규칙적으로 이온 음료와 과일주스로 적정한 수분 균형 유지하기 ▲알코올이나 카페인 다량 함유 음료를 자제하고, 헐렁하고 밝은 색의 옷 착용하기 ▲피부가 장시간 햇빛에 노출될 때는 자외선 차단제로 피부보호하기 ▲폐쇄된 공간에서 선풍기 사용 자제 및 사용 시 잦은 환기 등의 안전·건강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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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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