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공무원 직급명칭, 폐기돼야 한다

[기고] 우리는 진정 '독립'한 걸까?

'이사관'과 '서기관'은 총독부와 통감부의 관직명

우리나라 2급 고위직 공무원은 '이사관'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이사관'이라는 명칭은 놀랍게도 대한제국 시기 을사늑약에 의해 강요된 한국통감부의 관직명에서 비롯됐다.

당시 제정된 "통감부 및 이사청관제(理事廳官制)"에 의거해 '이사관'의 업무는 "통감의 지휘감독을 받아 영사사무와 제2차 일한협약(1905년의 을사늑약을 가리킨다) 및 법령에 기초해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이사관'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제국군대 사령관에 출병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부이사관'은 "이사관의 명을 받아 청무(廳務)를 처리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부이사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오늘날 우리 3급 공무원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의 4급 공무원 직급명칭인 '서기관'은 '대일본제국헌법' 하의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공식 관직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1급 공무원 명칭인 '관리관'과 5급 '사무관'을 비롯해 주사, 서기 등의 명칭은 모두 일본의 관직명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이사관', '부이사관', '서기관' 등등 우리 근대사의 비극적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나아가 '식민성'이 내재한 이런 관직명을 국가를 대표하는 공무원의 명칭으로 여전히 사용하고 있어야 할 일인가?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민족 정기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우리 관료사회는 용어부터 아직 일본 식민지를 전혀 독립하지 못했다. '이사관', '서기관' 등의 '식민지 명칭'은 폐기돼야 한다.

일본 용어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며칠 전 TV 뉴스를 보다가 어느 교수 인터뷰에서 '비점오염원', '용존산소'라는 말을 듣게 됐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생소한 용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어였다. 왜 우리는 독자적인 용어를 만들지 못하고 항상 일본어를 베껴서 사용할까?

언론이나 학계 등 모든 영역에서 아무런 의식과 부끄러움과 수치심 없이 일본 용어를 그대로 베낀다. 마치 구한말의 개화파처럼 '신문물(新文物)'이라도 되는 양 앞을 다투어 베끼고 있다.

일본어인 '오타쿠, 御宅(おたく)'의 발음을 변형시켜 만들어진 '덕후'라는 말부터 '입덕'이니 '덕질'이라는 말들은 어느덧 '국민용어'로 자리잡았다. TV 자막에는 '츤데레'라는 말이 버젓이 사용된다. 대로변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대형광고판에도 '최애(最愛)'라는 용어가 보인다. 역시 일본어이다.

일본 정부의 우월감과 확신

오늘도 한 신문은 일본 아베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드러난 아베의 혼네"라는 제목을 쓰고 있다. 아베의 '본심'이라 하면 될 것을 왜 구태여 '혼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한일 양국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1/4이나 된다면서 "한국 국민의 수준에서는 '친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정부 그리고 일본 보수 세력은 과거사에 대해 반성이 전혀 없다. 아니 한국에 대해 진정 우월감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인들이 영원히 일본의 하위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심리적 토대 위에서 이번과 같은 막무가내 경제보복도 서슴없이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정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식민지 용어인 '이사관', '서기관' 등 우리 공무원 직급명칭부터 바꿔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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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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