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스페이스 선(仙), 이들이 村스럽게 사는 모습

[연속기고] 사회적경제 기업 탐방

시민사회, 사회적경제분야와 관련해, 협동조합 아이쿱이 지난 7년간 사회적경제 파트너들과 상호거래, 역할,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6회에 걸쳐 관련 사례를 소개합니다. '협동조합 경제'를 응원합니다. 편집자

욕실 선반에 샴푸가 여럿 있다. 남편에겐 탈모샴푸, 사춘기 아이 정수리 냄새에는 두피정화샴푸가 제격이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흰머리가 늘어나기 시작한 나는 미용실 원장님의 권유로 프랑스산 샴푸를 쓰고, 계면활성제가 들어있지 않다는 생협표 샴푸도 쓴다. 최근 또 하나의 샴푸가 선반에 자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천연비누인데 거품이 풍부하고 세정력도 좋다. 향 또한 은은해서 자주 손이 간다. 유명 브랜드도 아니고, 심지어 이름이 '村스러운 샴푸바'로 크기도 자그마한 이 비누는 80g에 12,000원 선(아이쿱자연드림 조합원가 기준)으로 생각보다 비싸다. 이 샴푸바를 만든 사회적기업 스페이스 선은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한 비누를 만들겠다는 사명을 제품에 녹여내고 있다.

스페이스 선(仙)_인간(人) + 자연(山)의 조화를 담은 공간

▲ 그림으로 표현된 스페이스 선 전경 ⓒ아이쿱생협

강원도와 충청도의 경계쯤, 스페이스 선은 남한강 부근 충주시 소태면에 자리해있다. 스페이스 선은 한자 선(仙)의 의미 그대로 인간(人)과 자연(山)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공간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탁 트인 시야에 모내기를 끝낸 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밤나무밭이 크게 자리 잡았고, 동물 친구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순하게 생긴 리트리버 한 마리가 반겨준다. 동물만 있으랴, 텃밭에는 감자, 가지, 고추, 토마토가 줄지어 자라고 있다. 비누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스페이스 선 엄수정 대표(이하 엄 대표)는 이곳에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소개한다.


▲ 해원동물농장 ⓒ아이쿱생협


"지금 이곳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섯 청년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저(엄 대표)와 같이 도시의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 어울려 삽니다." 이곳에 사는 동물들의 삶에도 스페이스 선의 가치가 잘 녹아있다. 함께 사는 유기견 몽이와 감자, 한라말 네 마리, 황소 두 마리, 양 세 마리는 아프거나 입양된, 각각 사연 있는 동물들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해원동물농장은 '해(풀 해 解)원(원통할 원怨)', 아픔을 풀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엄 대표는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이 산채로 땅속에 묻히는 것을 접하고 인간의 이기심에 희생당하는 동물 문제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섯 청년과 해원 동물 가족은 스페이스 선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스페이스 선의 인간(人)과 자연(山)의 조화로운 삶과 그 가치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생태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다고 엄 대표는 전한다.

다른 존재들에 귀 기울인 스페이스 선의 비즈니스, 지구에게 듣다

▲ 지구에게 듣다, 레인스피커(스피커 모양의 빗물탱크, 벤치로 활용) ⓒ스페이스 선


스페이스 선의 슬로건은 '지구에게 듣다'이다. 이를 잘 반영한 비즈니스는 꽤나 매력적이다. ▲빗물 저장 탱크인 '레인스피커', ▲'생태 화장실', ▲'촌스러운 하루 체험 프로그램'이다. 농사를 기반으로 한 시골살이는 자연스레 자원의 올바른 쓰임을 고민하도록 했다. '어떤 물에서 키워야 농작물이 건강할까?'에서 시작하여 물 부족 문제까지 이어진 고민. 전 세계 70억 인구가 지구 물 보유량의 0.0086% 양을 나눠 쓰는 현실 앞에 스페이스 선은 빗물을 받아쓰기로 결정했다. 국내외 시중 빗물탱크는 비용 부담이 컸다. 스페이스 선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고자 빗물 탱크 제작까지 결심했다. 빗물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자는 의미를 담은 스피커 모양, '레인스피커'다. 자급자족을 넘어 이미 상용화를 실현하고 있는 스페이스 선의 빗물탱크는 현재 서울⦁경기와 그 외 지방의 빗물 마을 조성사업과 근린공원, 요양원, 복지관, 학교 등 50여 곳에서 다양한 쓰임으로 있다. 특히 학교에선 '빗물로 가꾸는 텃밭 프로그램' 등 교육용으로도 활용된다.

스페이스 선의 물 절약 모토는 '생태 화장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루 4인 가족 기준 수세식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은 1.5L 페트병 125병이라고 한다. 정화작업에 쓰일 또 다른 자원까지 고려한다면 물 없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스페이스 선에 (요즘 말로) '찰떡'이다(충분히 어울린다는 뜻). 이들은 생태 화장실에서 퇴비를 얻어 농사에 활용하고, 그렇게 지은 농작물을 먹고, 다시 배설하는 순환형 생활을 꿈꾼다. 연구 끝에 개발된 대소변분리기는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 중이다. 국내에선 귀농⦁귀촌 농가와 도시 농업 지역에, 18년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 27곳에도 설치되었다. 아프리카 곳곳은 물 부족 문제와 위생이 생존과도 직결된 곳이다. 올해는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 확대 설치될 예정이라고 하니 자연과 공존하며 이들의 생존권을 지켜가는 스페이스 선의 비즈니스가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삶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모두에게 생태공동체를 강요할 수는 없죠. 또한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이용하는 생활은 일반 대중들에게 장벽이 높습니다. 스페이스 선 모습 그대로를 경험케 하며 자연 친화적인 삶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생태적인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인 '촌스러운 하루'를 운영하게 되었죠." '촌스러운 하루'는 단체와 학교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오픈 하우스를 열어 일반 방문객도 만나고 있다. 텃밭에서 키운 나물로 음식을 짓고, 동물들과 교감하고, 생태 화장실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반나절의 체험이다. 엄 대표는 친환경 생활이 별거 아님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좋은 것임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스페이스 선은 2017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 스페이스 선의 村스러운 비누 시리즈 ⓒ아이쿱생협


앞서 소개한 레인스피커, 촌스러운 하루, 그리고 천연비누로 말이다. '촌스러운 하루' 체험이 자연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경험이라면 천연비누인 '村스러운 샴푸바'는 더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 삶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 2018년 스페이스 선은 아이쿱생협과의 거래를 통해 소비자조합원에게 '村스러운 샴푸바'를 선보였다. 아이쿱생협은 매년 조합원에게 사회적경제 기업과 제품을 소개한다. 자세한 내용은 사회적경제 기업 대상 아이쿱생협 입점 상시 모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 ☞바로가기)


'村스러운 샴푸바'는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는 스페이스 선의 노케미(No-chemi) 라이프 생활을 반영한다. "유명 브랜드의 많은 생활용품을 써봤는데 건강한 원료로 직접 만든 생활용품들이 제게 더 잘 맞았습니다. 만들어 쓰는 용품들이 세제, 비누 등 종류가 다양해졌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과 함께 사용했죠. 만족한 후기를 듣고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원료를 사용한 제품은 사람 몸에도 좋지만 씻겨 흘러 들어간 자연 속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엄 대표는 덧붙여 전했다.

이처럼 스페이스 선은 좋은 등급의 원재료만을 고집하고 있다. 건강한 농작물을 짓는 농부들에게 재료를 수급 받고, GMO 작물은 사용치 않으며, 채취방식부터 화학 용매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오일만을 사용한다. 해원 농장 동물 친구들과 살다 보니 모든 재료는 식물성이다. 또한 시중에서 판매되는 세제류는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게 리퀴드(액체)로 제작되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한다고 한다(이를테면 계면활성제). 스페이스 선의 세제류가 비누 형태인 탄생 배경에도 그들이 자연과 공생하는 가치가 담겨있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고집, 아이쿱생협 조합원과 함께 실현하다

"보통의 샴푸 못지않게 거품도 많고, 세정력도 좋고, 같은 중량의 샴푸보다 더 오래 쓴다는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의 피드백을 즐겁게 받고 있습니다. 500ml 리퀴드(액체) 샴푸 약 3통 정도의 양을 하나의 비누로 대체할 수 있으니 품질뿐만 아니라 가성비가 좋다며 만족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좋은 제품을 오래도록 쓰고 싶은 조합원들의 마음이 전해졌다고나 할까.

▲ 村스러운 비누 사탕수수 종이포장 ⓒ아이쿱생협


포장재도 친환경으로 바꾸었다. "이전부터 친환경 포장지를 제작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기존 산업구조에선 다량 제작이 필수였고, 중소업체로서 판로가 적었던 어려움과 함께 제작비의 부담이 컸죠. 그러다 아이쿱생협에 입점하며 친환경 포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村스러운 샴푸바'를 감싼 포장은 사탕수수 원료로 된 종이로 생분해됩니다. 또한 리퀴드(액체) 세제와는 다르게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 없죠." 제품에 수요가 있고, 친환경 포장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조합원이 있어 그간 해보려고 했던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엄 대표는 전한다. 그 흔한 스티커 한 장 붙어있지 않은 포장엔 엄 대표의 친환경 제품에 대한 고집을 확인할 수 있다.

조합원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도 열려있다. "최근 부산과 천안에선 아이쿱생협 조합원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청주아이쿱생협은 스페이스 선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죠. 가까이에서 소비자분들과 제품 스토리를 나누며 서로 격려와 응원을 보태며 끈끈한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 생각합니다. 스페이스 선의 시도들을 알릴 기회들이 열려있어 좋습니다. 특히 제품을 쓰는 것만으로도 스페이스 선의 자연과 공생하는 가치에 동참하는 것 같다는 조합원분들의 메시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쿱생협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엄 대표의 진심도 조합원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스페이스 선의 사업 철학은 마음에 걸리는 일은 하지 말고, 내가 쓰지 못하는 건 팔지도 말자는 것. 좋은 원료로 건강한 기능을 하는 '村스러운 샴푸바'를 알아주고, 그 가치에 공감하는 조합원들과의 인연을 엄 대표는 뜻깊게 생각한다.

사회적경제와 함께하는 스페이스 선의 도전

곧 친환경 대나무 칫솔로 알려진 닥터노아와 함께 스페이스 선의 여행용 키트가 공개된다. 네이버 해피빈 펀딩을 통해 대중과도 소통하겠다고 하니 오픈일이 기다려진다. 제품의 원재료 또한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수급 받는다. "비누에 코코넛유가 많이 사용되는데 히든테이스트(예비사회적기업)의 공정무역 제품(원산지 : 필리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중 코코넛유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스페이스 선과 함께 해당 기업들이 공생하길 바라죠. 사업의 확장만을 생각하기보다 사업을 함께 지속할 수 있는, 뜻 맞는 기업들을 계속 찾아볼 예정입니다." '村스러운 샴푸바' 이후 아이쿱생협에 입점될 '트래블키트' 원재료도 주목할 만하다. 샴푸바, 샤워바, 클렌징바로 구성된 키트 중 샤워바는 아이쿱자연드림의 미강가루(현미가루), 클렌징바는 콩가루를 사용한다. 국내 쌀과 잡곡 소비량 증가에 미약하게나마 동참하려는 취지다.

생태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고, 관련 가치를 담아 비누를 만들어 파는 스페이스 선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하길 바란다. 반가운 소식은 아이쿱생협에 입점 후 6개월 만에 거래액이 56%가 증가했다. 더불어 2019년에 두 명의 직원을 충원했다. 앞으로도 스페이스 선의 촌스러운 삶이 사회적경제 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하길, 건강한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촌스러운 삶이라는 것은 귀촌이 될 수 있고, 생태체험을 하는 것, 또는 천연재료로 비누를 만들어 쓰는 일일 수도 있다. 이렇듯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사는 스페이스 선은 도시인들과 자연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선(줄/실 線)이다. 냄새에 민감한 계절이 아니던가! 은은한 향기에,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들을 취해보자.

아이쿱 연속기고
1) 아이쿱과 사회적경제기업이 상호거래를 지속하는 힘은?
2) 우간다 아이들과 가치를 나누어 멥니다, 제리백

3) 제품을 알아주는 소비자, 가치를 이해하는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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