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트럼프 '케미' 권력정치 넘어설까?

[정욱식 칼럼] 비핵화와 제재 완화, 동시에 일어나야

트럼프 대통령 :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좋은 케미스트리가 있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위원장 : 우리 각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하루 만에 이런 상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관과 장애를 견인하고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나 전세계를 향해 밝힌 소회이다. 트럼프의 깜짝 제안과 김정은의 수락으로 성사된 '판문점 회동'은 두 정상의 독특한 기질과 케미가 만들어낸 각본 없는 드라마이다.

특히 트럼프는 "김 위원장이 희망한다면 언제든 백악관을 방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이게 성사된다면 트럼프가 미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북한 땅을 밟아본 최초의 인물인 것처럼, 김정은도 미국을 방문하는 최초의 북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유세 당시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대해 햄버거를 먹으면서 대화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트럼프의 백악관 초청을 수락하면 트럼프는 대선 공약을 지키는 셈이 된다. 동시에 2020년 11월 대선 이전에 김정은의 방미가 성사되면 트럼프는 재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 6월 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이건-고르바초프 '케미'의 기시감

미국 대통령이 적대국 지도자와의 케미와 우정을 이토록 강조하고 있는 것은 로널드 레이건 이후 처음이다. 레이건은 미소간의 신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그래서 '핵 겨울(nuclear winter)'이라는 말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을 때 미하엘 고르바초프를 만났다. 그리고 두 정상은 여러 차례 실패를 딛고 핵 군축 협상에 극적으로 합의해 냉전을 종식시킨 당사자들이었다.

레이건은 훗날 회고록에서 "고르바초프와 나는 화학작용을 일으켜 우정과 대단히 흡사한 뭔가를 만들어낸 게 분명하다"고 썼다. 고르바초프 역시 낸시 레이건에게 "당신 남편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두 사람의 케미는 불신과 권력 정치가 지배한다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인간적 요소'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시대 상황과 정상회담의 전개 방식, 그리고 케미와 우정을 강조하는 화법은 오늘날 김정은과 트럼프가 연출해온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하지만 중대한 차이점도 있다. 세계 패권과 글로벌 아마겟돈을 놓고 자웅을 겨뤄온 미국과 소련은 미우나 고우나 서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었다.

반면 북미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오랫동안 북한을 소련이나 중국의 꼭두각시로 취급했었다. 그래서 북한 지도자와의 담판보다는 냉전 시대에는 소련 지도자에게, 1990년대 이후에는 중국 지도자에게 '북한을 잘 관리해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깡패국가"나 "악의 축"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화의 상대보다는 악의적 무시를 통한 현상 유지나 정권 교체의 대상으로 바라봤었다.

트럼프는 이러한 미국의 오랜 외교 문법을 깨뜨렸다. 대선 후보 때에는 '친북 시비'를 감수하면서까지 김정은과의 대화를 공약했고, 이번 판문점 회동까지 모두 세 차례나 그를 만났다. 역설적으로 트럼프 취임 이전까지 북미정상회담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 트럼프의 승부욕과 정치적 계산을 자극한 셈이다.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우정

그렇다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궁합은 레이건-고르바초프의 케미가 빚어낸 미소 냉전 종식에 이어 한반도 냉전 종식이라는 역사적인 과업을 이루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백악관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하는 모습과 트럼프가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수십만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은 어떨까? 남북미중 정상이 평화협정 체결식을 갖고 '한반도 냉전 종식'을 선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번개 회동은 이를 향해 다시 걸음을 내딛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북미 정상이 실무회담을 조만간 재개하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평화의 길을 가다가 예기치 못한 돌부리를 만날 수 있고, 평화의 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의 저항과 반격도 일어날 수 있다.

관건은 권력 게임을 넘어서는 인간적 요소의 현실화에 있다. 트럼프는 한 손에는 "최대의 압박"을, 다른 한 손에는 최대의 우정을 들고 김정은을 상대하고 있다. 그런데 최대의 압박은 전형적인 권력 과시를 통한 상대방 굴복시키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제재를 앞세운 압박을 계속하면 그 우정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하여 트럼프는 북한의 경제적 고통을 약점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비핵화의 수준에 맞게 하나둘씩 제재를 풀어가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도 가까워진다.

또 한 가지.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역사적 과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호 군축' 합의와 이행에 있었다. 대북 협상도 이 관점에 서야만 행복한 결말을 기약할 수 있다. 미국도 북한처럼 완전히 비핵화하라는 취지는 아니다. 적어도 북한을 상대로 한 군사적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가시적이며 물리적인 조치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선 문재인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한 해야 한다. 판문점 회동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한미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과 군사력 증강을 하향 조절해야 한다. 남한은 여전히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면서 북한에게는 '비핵화에 의한 평화'를 요구해온 방식을 바꿔야만 평화체제와 비핵화 실현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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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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