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 터치? 여긴 기자들이 편집국을 부숴버릴 겁니다"

[삶은경제] 직장내 성폭력에 대항할 힘: 노조

여성 기자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우린 분노했다. 잔잔했던 국물은 어느새 끓고 있었고 만두는 식지 않았다. "남성 선배가 술자리에서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대는 거예요. 근데 그게 0.1초 정도로 휙 지나가니까 뭐라고 하기가 망설여지는 거죠. 고의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분이 다니는 회사는 선후배 문화가 엄격하며 한 주 노동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노사 협의체 및 노동조합은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얘기를 다른 여성 기자에게 했다. 이 분이 다니는 회사는 노동조합이 있으며 한 주 노동시간이 지켜지고 있다. 물론 지적하고 싶은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황교안스러운' 비상식은 없었다. "허벅지 터치하는(스치는 혹은 만지는) 일이 생겼으면 여기는 기자들이 편집국을 부숴버릴 겁니다."

첫 문장부터 굳이 여성과 특정 직종을 강조한 것이 불쾌할 수 있겠다. 성을 규정해야만 얘기를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성+직업'으로 글을 시작한 것은 권위의식이 강한 집단일수록 성범죄 경향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를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별과 폭력의 일상화, 권위에 맞설 조직력이 있는가

사무금융노조 여성위원회는 지난달부터 이달 20일까지 '나쁜 질문·나쁜 농담' 사례를 조사했다. 모집된 사례들에서 가해자는 남성이다. 몇 개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옷차림을 보며) 저녁에 어디 다니는 거 아니지?" "못 생기면 영업도 못 하는 거야." "여자는 화장을 해야 예의지." "(남성들의 여성 외모 평가를 지적하자) 너 그럼 그 (못 생긴) 남직원이랑 키스할 수 있어?" "(여성이 노안임을 지적하며) 나랑 갑?" "애도 안 낳았는데 (몸매가) 왜 그래?" "여직원들이랑 술을 마셔야 주식이 오르더라. 오늘 시장을 올려줘." "생리휴가는 가임 여성만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얜 나를 옆집 개새끼 대하듯 대해. 너 남편한테도 이런 식으로 하니?" "어제 애인이랑 뭐 해서 하품을 해?" "(남자친구 있어서) 많이 힘든가 봐? 입술에 상처가 가시질 않네." "야 내가 OOO 출신이야. 내가 너 이 업계에서 매장시킬 수 있어."

숨 가쁘게 몰아붙여 사죄한다. 당신의 현재이자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직장생활 하면서 앞서 언급된 말 중 단 한 개도 들어보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거나 한국이 아닌 곳이다. 정도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차별과 폭력의 일상화 수준은 해당 조직이 권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췄는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있고 여성위원회가 있는 회사. 여기자협회가 있고 직장 민주주의 교육을 실행하는 곳. 경찰 총경 승진 예정자들처럼 성평등 교육에 집단 분탕질하지 않는 기관. 이런 직장은 마음으로는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을 뱉지 못하게 하는 방어력이 높다. 술자리에서 살짝 만지고 싶고, 치고 싶고, 어깨동무하고 싶겠지만, 주변 동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허허 요새는 미투(#METOO) 때문에 여직원이랑 대화도 못 하겠어"라는 피해자 흉내까지 막기는 어렵다고 한다.

지성과 성인지 감수성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최영미 시인은 문학계의 권위적 성폭력을 폭로했다. 영화계의 성폭력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용기 있는 분들의 공개로 우린 알게 됐다. 글과 영상으로는 감성을 울리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짓이겼다. 파편화된 개인이 모인 집단은 권력이 집중된 개인의 성폭력을 막을 장치가 없다.

모든 성이 차별받지 않는 연대

물론 노동조합이 만능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하다. 젠더 감수성이 강한 곳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때론 자기들의 때가 드러날까 노동조합이 회사 내 성범죄에 눈 감은 사례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얘기하고 싶은 것은 상식은 모이고 쌓인다는 점이다. 상식을 모으고 쌓을 수 있게 해주고 누군가 이를 부수지 못하게 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예전에는 상식이었던 행동이 무뢰한의 무례가 되고, 생각은 규범이 되는 과정이 진행되지 않을까. 노동조합이든 뭐든 연대가 공기 같은 곳이라면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권력에 의한 폭력에 저항할 힘이 커지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피해자가 비교적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아직까지 꺼내지 못하고 가슴 속에 숨겨둔 성폭행 피해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끄집어내는 것은 가해자 응징이 아니라 나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일 테다. 우리가 살아가는 조직은 모든 성이 차별받지 않는, 연대가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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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정책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오기 전에는 만 8년 정도 기자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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