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상생'은 어디에?
현대중공업 주총은 사회 지배층이 입만 열면 거론하는 '노사 상생'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구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라면 극우 진영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같은 개혁 진영에서도 '귀족 노동자'와 '귀족 노조'로 비판받던 이들이다.
진짜 귀족이라면 자신이 혜택을 누리는 기업 구조의 변화에 대해 발언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배 엘리트가 조작한 허구 속의 귀족이었던 대한민국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을 내리칠지도 모를 인수합병의 결정 과정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체계적으로 배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익들은 입만 열면 한국의 노사관계가 후진적이라며 그 잘못을 노동조합에 돌리지만, 한국의 노사관계가 후진적인 진짜 이유는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정규직 대기업 노동조합조차 인수합병이나 구조조정 같은 기업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소외되는 반민주적 현실에 있다.
선진적 노사관계의 특징은 합병이나 구조조정 문제를 이사회나 주주총회장에서 결정하기 전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데 있다. 노동자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노사가 이에 협의하거나 합의한 이후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것이다.
단물만 빨아온 정몽준
현대중공업 주총장의 또다른 기괴함은 실질적 소유주 정몽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정몽준'을 검색하니,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이다. 7선 국회의원으로 제13~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나온다.
한국 조선산업의 위기와 관련하여 한국의 언론은 정몽준의 책임 소재를 묻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불로소득인 현대중공업의 소유주 행세를 해온 정몽준은 회사 덕분에 대통령 후보도 도전하고, 대한축구협회와 FIFA 임원도 하고, 울산 동구를 기반으로 국회의원도 하면서 회사를 직접 경영하지 않고도 무위도식하며 살아왔다.
2018년 12월 28일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는 정몽준 본인과 그의 아들에게 895억 원을 배당하였다. 2014년 52조 원을 넘었던 현대중공업 매출이 2015년 46조 원, 2016년 39조 원, 2017년 15조 원 대로 쪼그라든 때였다. 회사가 망해가는 데도 정몽준은 경영상 책무는 물론 소유주로서의 책임을 전혀 추궁당하지 않았다.
불로소득 무위도식의 재벌 소유주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 주주이자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다. 현대중공업이 경영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영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복귀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정몽준은) 지주회사 최대 주주에 올랐다. (중략) 정몽준의 측근으로 꼽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지배구조 개편을 진두지휘했다"(☞ 관련 기사 : [Who Is ?]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정치판과 체육계를 기웃거리면서 자신이 잘나 회사가 잘 되는 것처럼 나댔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경영 일선에 나서기는커녕 숨어버렸다. 그리곤 회사의 운명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경영진과 노동자들에게 미루고 있다.
부모 잘 만나 대통령 후보직까지 도전했던 정몽준은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몇 번이나 당선시키면서 정계와 체육계 활동의 발판을 마련해줬던 울산 시민들에게 한마디 입장 표명도 없다.
지배 엘리트의 '기생충' DNA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 귀족'이라 욕먹으며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들은 주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자신이 고용한 경영진과 노동자들의 피땀에 기생해 무위도식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온 책임자는 경영엔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다.
조선을 일본에 팔아먹은 이 씨 왕조의 적통들은 자기 핏줄을 일본 황족의 핏줄에 편입시킴으로써 부와 권력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역사는 이들을 민족의 반역자이자 사회경제적 기생충으로 평가한다.
현대중공업 주총은 지배 엘리트에 고유한 '기생충'의 DNA가 지금도 면면히 이어져 재벌가의 핏속에 끈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괴하고도 우울한 풍경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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