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전쟁 속 문재인과 김정은, 그들의 선택은?

[이충렬 칼럼] 미중대결시대의 한반도생존책략

1. 최근 며칠 동안 미중 대결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유튜브 방송을 집중 시청하였습니다. 패권을 지속하려는 미국과 견제를 뚫고 G1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정면 충돌이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시작되었답니다.

1-2. 소감을 말씀드리면, 일감(一感)은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공룡이 21세기의 패권을 둘러싸고 한판 승부를 시작했는데, 그 스케일과 전선의 다양함, 그리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치밀한 수 읽기 등등, 어느 소설보다도 더 박진감을 줍니다.

2. 한반도가 남극이나 북극에 있거나, 아니면 지구 밖에 위치해 있다면, 제3자로서 즐기기만 하면 되지만, 우린 미국과 중국에 꼭 끼어 있지요. 이 전쟁의 여파는 곧 우리에게 생사흥망을 가르는 선택의 강요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생각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화웨이 제재 여파로 삼성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는 단순 반응은 전체 그림 속에 별 의미도 없습니다.

2-1. 이 시기에 국내 정치는 '막말 정치'로 점령당한 상태입니다. 내년 총선에 초점을 맞춘 막말 정치는 이조 후기의 '예송논쟁'을 상기시킵니다.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적 무력을 갖춘 서양 열강이 새로운 시장과 자원을 찾아 동양으로 함대를 이동시키는 동안, 조선은 세계 동향에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농민을 더 착취해 자신의 재물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약간 과장했습니다). 아! 쓰다 보니 이조 후기의 양반이 화를 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송을 논했지, 막말을 주제로 삼진 않았다'고 말입니다.

2-2. 어느 진영에 속하는 지에 따라 이 전쟁을 보는 관점이 확 다른 것 같습니다. 보수진영은 환호성 일색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노선을 견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시진핑 중국주석과 정면으로 '맞짱' 뜨는 그에 대해서 박수 갈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생각 아래에는 '거 봐라. 역시 세계의 패권은 미국이 쥐고 있다. 반미? 꿈 깨!'라는 소리를 진보진영에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2-3. 대다수 진보진영은 세계관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미중 대결을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어떤 진보 논객도 쓰질 않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피해 (collateral damage)를 입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는 우려를 표명하는 정도입니다. 지난 번 사드 사태를 통해 중국의 보복이 얼마나 우리의 아픈 데만 정밀타격(surgical strike)하는 지를 체험한 바 있습니다. 관광 취소, 롯데에 대한 선별 타격, 현대자동차의 붕괴, 등등. 그럼에도 자신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삼성의 반도체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2-4. 이번 전쟁을 엿보면서, 새삼 대한민국은 안보는 미국과 동일체이고, 경제적 생존은 중국과 동일체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빠진 한국의 안보는 중국과 일본의 놀이감 밖에 안됩니다. 동시에 중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흑자를 올리고 있으며, 미국의 첨단 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1991년인가요, 중국은 남한을 경제발전의 과외 교사로 삼고자, 항미원조 전쟁의 혈맹인 북한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한국과 수교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그런 비정한 면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3. 본론을 이야기 합시다. 우리의 관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도대체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미국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그도 아니면, 봉합일까? 두 번째, 우린(한반도의 남북을 포함하여) 헤쳐나갈 길이 있나? 미국과 중국이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압력 하에서 지혜롭게 위기를 벗어나면서 오히려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있을까?

3-1. 처음에는 무역전쟁으로 시작했다가 화웨이를 계기로 기술 전쟁으로, 더 나아가 환율 전쟁과 금융 전쟁으로까지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어떤 분석가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금년 내 군사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대국굴기를 확실히 아작내겠다는 것이랍니다.

3-2. 저는 이 전쟁을 정확히 예측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관적 추론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 전쟁의 향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패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파탄을 고했고, 미국은 이제 미끄럼 타고 내리막길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 대다수 진보진영의 분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미국 패권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본 것입니다.

3-3. 상황의 반전을 가져온 것은 '기술혁명'이었습니다. 2012년 유가가 배럴당 130불을 오락가락할 시절에 미국에 '세일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까지 채산성이 없었던 '셰일가스와 오일'을 약 60불 정도의 채굴원가로 파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매장량이 어마어마해서 향후 수백 년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는 여전하지만, '석유고갈론'은 이 시점을 계기로 완전히 꼬리를 감추게 됩니다.

3-4. 2018년 연말에 이르러 '셰일가스'의 채굴 원가는 40불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참고로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가진 베네주엘라의 채굴 원가는 70-80불이라고 합니다.) 이제 미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 국가에서 에너지 자립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에너지 수출 국가로 변모합니다. 이로 인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견지해온 세계 전략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중동 석유에 발목잡힌 에너지 안보전략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3-5. 작년 미국은 3.2%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율을 기록했습니다. 고용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합니다.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개인의 독특함에 주목한 나머지 미국의 이 구조적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봅니다. 중국이 '대국굴기'와 '중국몽'이라는 희망사항을 읖조릴 때, 미국은 이미 이전과 다른 '패권굴기'를 이루었습니다.

3-6. 중국은 아직 공산당 1당독재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입니다. 소프트파워 강대국이 되기에는 근원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이, 자신이 가진 세계 최고의 군사력, 기술력, 달러 패권을 왜 순순히 중국에 양도하겠습니까? 중국이 반전을 이루기에는 전체적인 국력에서도 밀리지만, 지난 수 년간 많은 패착을 두었다고 보입니다. 남한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도 '소탐대실'의 후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그럼, 한반도는? 한마디로 갑갑합니다. 국제 정치는 진실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선 남한의 처지가 어렵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엄청난 무역을 한다지만, GDP 대비 무역량은 30%이하라고 들었습니다. 일본조차도 38%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00%가 넘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미국과 중국이 경제 보복을 취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운명은? 뻔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4-1. 우선순위를 말한다면, 첫째 대한민국은 미국의 동맹이라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결정적 고비에서 중요한 것은 동맹의 확보입니다. 더욱이 상대가 세계의 패권국이라면 그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9세기말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에 이어 러시아의 도움으로 왕조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러시아의 숙적이었던 영국은 당연히 일본 편에 섰고, 일본은 당시의 패권블록 영국과 미국을 동맹으로 확보했던 것입니다. 더 이상의 결과는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4-2. 둘째로 중국의 '시범 빳다'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화웨이 오너의 딸이자 CFO를 체포한 것은 미국이지만, 중국은 미국보다는 체포를 도운 캐나다를 패고 있습니다. 사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배치했는데, 힘없는 한국만 공격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화웨이의 백도어 프로그램'이 드러나자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있습니다. 지나친 영유권 분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권하자마자 반미, 반트럼프를 외치고 친중을 표명했던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권도 중국이 자국의 영유권을 침범하자 (낯간지러울 새도 없이) 친미반중으로 외교 전략을 한순간 변경했습니다. 우리의 우군을 늘리고 맨 앞에서 '시범 빳다'를 안 맞아야 합니다. 병자호란을 앞두고 최명길 노선과 김상헌 노선이 생각납니다. 살아남는 나라가 강한 나라입니다.

5.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생각해 봅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에 미국의 주적을 나열할 때, 중국, 시리아, 이란을 언급하고 북한은 빼고 있습니다. 처음 북미협상이 시작될 때, 중국을 북미협상을 도와주는 변수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닙니다. 미국의 주 타깃은 중국입니다. 정말로 다행히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는 대화노선을 채택하고, 북한의 외교적 비핵화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고 한답니다. 심지어 북한을 친미 블럭에 넣어 중국방어망을 강화하려는 구상도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5-1. 북한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가 70억불 가까이 올랐다가 최근 체제의 여파로 20억불 미만으로 줄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여전히 중국은 북한의 목줄을 쥐고 있습니다.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인 양빈을 신의주 장관으로 임명하고 특구를 개발하려하자 중국은 바로 양빈을 잡아다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유서에 '중국을 믿지 말라'는 말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5-2. '중국의 종속에서 탈피한 북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안될까요?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킴으로서 미국과 적대국이 되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이라는 뒷배를 배경으로 냉전시대를 버텼던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해체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국제 미아가 되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정상 관계를 이룬다면, 미국의 자본과 기술과 심지어 안전 보장을 받는다면?

6.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난다면, 이제 탐색전을 그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본론을 말할 때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역발상을 통해 한반도의 안전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논할 때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는 '미국·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의 패권 경영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중국의 단독후견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라는 새로운 파트너와도 동거를 해볼 것인가? 우리 민족의 명운을 가름할 중대 분수령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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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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