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넷플릭스! 그 두려운 진격

[넷플릭스 세계여행]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나

'AOC 돌풍'이 거세다. 지금 미국에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20대 여성이자 전직 웨이트리스 출신인 코르테즈는 지난해 뉴욕 주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그녀는 미국 민주당의 10선 의원이자 권력 4인방 가운데 하나인 조 크롤리를 경선에서 무너뜨렸다. 지난 14년 동안 그 누구도 '감히' 조 크롤리의 경선 후보로 나서지도 못했다. 그는 뉴욕 기득권 네트워크의 넘사벽 상징이었다.

20대 노동자 출신의 여성 도전자 코르테즈는 오직 풀뿌리에 기반한 선거 캠페인으로 거함(巨艦)을 무너뜨렸고 이는 민주당, 공화당으로 상징되는 거대 기득권 정치에 대한 하나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정치인을 원한다'는 슬로건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부드럽지만, 아픈 역설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2019)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업로드됐다. 여기에는 코르테즈를 비롯해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때문에 치료가 가능한 딸을 잃은 에이미 빌렐라, 비무장 상태인 흑인 남성이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 과정에서 정치적 각성을 시작한 간호사 코리 부시, 석탄회사 때문에 암을 비롯한 질병에 시달리는 가족과 주민을 위해 출마를 선언한 광부의 딸 폴라 진 등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주민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득권 정치에 대항한 노동자 출신의 선거 출마 운동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코르테즈를 좀 더 알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다. 뉴스 보도는 항상 단편적이고 화제 중심으로 다뤄진다. 그녀의 삶과 정치적 비전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천연덕스럽게 그 일을 해낸다.

넷플릭스가 순식간에 1억3000만 명의 유료관객을 끌어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넷플릭스 이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어느 날 문득 우리 앞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에 대한 전방위적인 접근성은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우리는 매월 커피 두세 잔 값만 지불하면 무제한으로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양질의 전 세계 콘텐츠를 볼 수 있다. 가격의 관점에서 봐도 이제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구매 행위는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은 201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 다큐멘터리 부문 관객상과 영화제 인기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를 보는 것은 아주 쉽지만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콘텐츠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넷플릭스 자체에 대한 담론은 거의 생산되지 않는 이유다. 넷플릭스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보통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고 퉁 친다. OTT(Over The Top)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를 정의할 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말은 충분한가? 그럼 IPTV는? 아프리카TV는? 유튜브는?

우리는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과거의 언어 습관으로 규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 현상이다. 낡은 것으로 새것을 규정하려는 순간 이 새롭고 순식간에 보편화된 기술과 서비스는 이미 저만치 달아나서 게으른 우리를 기다린다. 서비스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고유명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보통명사가 된다. 구글은 구글이고, 네이버는 네이버고, 유튜브는 유튜브고,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다. 스타벅스는 커피숍인가? 스타벅스는 그저 스타벅스로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느낌을 전달한다.

넷플릭스 역시 우리가 과거의 언어로 정의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그저 넷플릭스가 되었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다. 동영상이라고 말하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지만, 우리가 유튜브라고 부르거나 넷플릭스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고유한 향기와 색깔을 갖는다. 이는 마치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무런 이미지도 떠올리지 못하지만 장미 혹은 국화라고 부르는 순간 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30개 나라에서 동시에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넷플릭스는 190개 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막강한 자본력과 세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매우 공격적인 콘텐츠 전략을 구사한다. 월트 디즈니의 OTT 진출에 대한 대응을 위해 최근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조선 좀비 드라마 <킹덤>, 아이유 주연의 <페르소나> 등 이미 한국의 메이저 영화와 드라마에도 넷플릭스 제공이 박히기 시작했다. 워쇼스키의 <센스8>은 세계 각국의 8명의 히어로를 연출하기 위해 8개국의 핵심 제작진과 협업하기도 했다. 나이젤 뱁티스트 넷플릭스 파트너 관계 디렉터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에서, 세계의 콘텐츠가 한국에서 사랑받도록 하겠다."

넷플릭스 제국의 야망은 바로 이것이다. 단지 할리우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전 세계에 흩뿌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토종 제작진이 만든 웰메이드 작품을 동시에 배급하는 것이다. 여기엔 배급업자, 상영업자의 기득권 논리가 스며들 여지도 없다. 제작과 동시에 190개 나라에서 동시에 자국어 자막과 함께 상영되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의 전파 속도나 영향력 측면에서 기존의 배급 방식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로 즐기는 세계 여행

나는 최근 넷플릭스 세계 여행을 즐기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세계 각국의 문화와 민주주의, 인권 의식, 인간관계, 자연과 문화유산을 두루 살필 기회를 갖는 것이다.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시즌 3, 7월 예고)은 은행이 아니라 조폐공사를 점령하고 돈을 찍어내서 가져가는 범죄 드라마다. '남의 돈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새로 만들어서 가져간다'는 발상은 금융을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폭로한다. 드라마의 완성도도 매우 높지만 스페인 청춘 남녀들의 분노와 좌절을 엿볼 수 있는 드라마다.

독일 드라마 <베를린의 개들>(시즌1)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복잡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독 출신 형사와 터키계 이민자 마피아의 복잡한 관계가 터키 출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살해 사건을 계기로 하드 보일드하게 전개된다.

스웨덴 드라마 <노르바카 살인사건>(시즌1)은 소심한 영국 남자 형사와 무모한 스웨덴 여자 형사의 좌충우돌 살인사건 수사를 그린다. 캐나다 밴쿠버를 배경으로 한 SF 범죄 드라마 <컨티넘>(시즌4)은 기업독재국가라는 민주주의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고,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를 배경으로 한 <릴리 해머>(시즌3)는 올드 조폭의 노르웨이 정착기를 탄탄한 스토리로 그려낸 작품이다.

심지어 아이슬란드 드라마도 볼 수 있다. '노르딕 누아르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결합'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미스터리 수사물 <트랩트>(시즌2)를 보고 있으면 왠지 아이슬란드가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호주 드라마 <시크릿 시티>(시즌2)를 보면 태평양 한가운데의 호주가 왜 세계 최대의 통신감청국가가 됐는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미중 권력투쟁이 어떻게 호주 정치를 편 가르기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넷플릭스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성 문화에 관한 매우 풍성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 넷플릭스에서는 미국과 영국뿐 아니라 독일, 스웨덴, 스페인, 캐나다 등 전 세계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콘텐츠 이미지 갈무리.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가? 넷플릭스 진격이 두려운 이유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로마>(알폰소 쿠아론 감독)가 아카데미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한 것은 기존의 영화산업이 넷플릭스의 존재 자체를 추인한 '영화적 사건'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넷플릭스 돌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아니 그것이 당분간일까? 어디로 가서 무엇과 융합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새로운 이야기를 평등하게 접하고, 세계의 모든 드라마를 싸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넷플릭스는 디즈니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확장해 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좋기만 한 일일까? 할리우드보다 더 강력한 콘텐츠 지배자가 초래할 위험은 없는 것일까?

냉전 시대 할리우드는 미국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매카시 사건은 할리우드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그런데 할리우드보다 고도로 집중된 하나의 기업이, 그것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기업이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고 심리를 조종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은 없을까? 넷플릭스가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같은 빅데이터 기업과 연합한다면 그들이 갖게 될 힘은 제어가 불가능한 정도에 이를 수도 있다. 우리가 싸고 편리하고 다양하며 풍성한 넷플릭스 콘텐츠를 즐기되 기술혁명이 초래할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난 9일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휴즈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페이스북 해체'를 주장했다.

휴즈는 "저커버그는 성장에 초점을 두면서 클릭 수를 위해 보안과 예의를 희생하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반독점법을 적용해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왓츠앱 인수를 취소하고 향후 몇 년간 재인수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페이스북 독점이 네트워크 산업 활성화를 막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개별 콘텐츠는 힘이 적지만, 수억 명의 가입자들이 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발신하는 데이터는 그것을 누가 소유하고 지배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막강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발 하라리의 질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가?

"나의 DNA와, 나의 뇌와, 나의 생명에 관한 정보는 나에게 속하는가, 정부에 속하는가, 기업에 속하는가, 아니면 인류 공동의 소유인가?"

* 위 글은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27호(2019.06)와 공동 게재합니다. (☞ 바로 가기 : <유레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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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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