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안 된다

[창비 주간 논평] 공수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이 갑자기 표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몽니를 피해 패스트트랙으로 직행할 듯했으나 바른미래당의 이상한 견제구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공수처가 작금의 검찰처럼 막강한 권력기관이 될지도 모르니 그냥 수사권만 주고 기소권은 빼야 한다는 것이 바른미래당이 구사하는 딴죽걸이의 내용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수처 법안은 영화 제목 같은 운명에 처했다.

주지하듯, 공수처 설치 방안은 우리 사회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제대로 뿌리 뽑는 방편으로 제기되었다. 그간 고위공직자들의 불법·범죄 행위들이 속출하였지만, 정작 이를 처단해야 할 경찰이나 검찰은 도리어 이 권력자들에 기생하면서 기소는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수처는 이런 식으로 사회적인 부정의가 구조화되는 상황을 깨기 위한 수단으로 논의되었다.

물론 공수처는 검찰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되어온 법과 정의를 제대로 확보하는 역할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맞추어 공수처의 조직과 권한과 절차가 정해져야 한다. 고위 권력자들이 행사하는 위력에 맞서 제대로 그들의 비행을 응징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에서 기소권을 없애면 어떻게 되나


시민사회에서 그동안 공수처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점,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해 강력한 형사사법권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 있어야 하며, 여전히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확보해내지 못한 검찰과 경찰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 독자적인 힘으로 부정한 고위권력자들을 처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독립된 수사권과 독자적인 기소·공소유지권은 이 점에서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만큼이나 중요한 핵심 권한이다.

그럼에도 공수처 설치 자체에 회의적인 자유한국당에 더하여 바른미래당은 이 기본골격을 흔들고자 한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단순하다. 바로 '기소권 없는 공수처'다. 하지만 공수처로부터 기소권을 소거하는 와중에 덩달아 삭제되는 것은 공수처의 강제수사권이다. 현행 헌법상 강제수사의 기본이 되는 영장신청권은 검사만이 가지며, 이때의 검사는 법원에 대하여 형사사법권을 행사하는, 그래서 기소와 공소유지의 권한을 가지는 공직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즉 공수처에 기소권을 가진 검사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공수처에 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검사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의 경찰처럼 영장 하나 받으려고 검사실 문을 두드려야 하고, 증거나 신병의 확보가 아무리 중한 상황이라도 검사가 거부하면 손 놓고 지붕만 쳐다봐야 하는 그 이상한 가역반응의 도식이 그대로 공수처에 이식되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대안 없는 몽니

그럼에도 바른미래당의 공수처 법안에는 그 대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현재의 경찰청 특수수사대 정도의 권한만 부여할 따름이다. 혹은 기껏해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출석요구를 했으나 단숨에 거절당한 저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바른미래당의 공수처는 기소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효적인 수사권조차 소거된 텅 빈 공수처로 전락한다. 고위권력자의 비리·부정을 처단하지 못하는 검찰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수처를 설치하자는 주장에 대해, 그들은 거꾸로 그런 검찰의 협조 없이는 실효적인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의 존재 이유는 비리·부정을 저지른 고위권력자를 수사하여 그들에게 법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형사처벌을 가하도록 함에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악용하여 권력에 기생해왔던 검찰권력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요청 또한 자리한다. 검찰을 믿지 못하기에 검찰의 역할을 공수처에 이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른미래당의 안은 공수처를 못 믿겠으니 검찰에게 기소권을 맡겨두자고 한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권력형 범죄에 무력했던 바로 그 검찰에 모든 수사자료를 송두리째 넘긴 채 벌거벗은 상태로 검사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고 강변한다. '못 살겠다 바꿔보자'고 외치는 민중들 앞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억지논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고위공직자 '치외법권'을 없애야 할 때

거듭 말하거니와 공수처 설치안은 고위권력자의 비리·부정을 척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검찰을 믿지 못하고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그래도 의미있게 세상을 바로잡을 방법을 공수처라는 제도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공수처의 설계 과정에서 기존의 검찰에 의존하게 만들거나 혹은 검찰과 권력을 공유하게 하자는 제안은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인지 묻게 한다. 기소권도 없고, 따라서 강제수사권도 없는 공수처, 한갓 경찰청 특수수사대만 못한 공수처가 무슨 쓸모일까.

물론 공수처가 또다른 권력기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의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걱정이 지나쳐서 그 기구의 존재 이유까지 없애버리는, 빈대가 무서워 초가삼간 불태우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조직의 문제(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권한의 문제(기소권과 강제수사권)로 오도함으로써 20년을 넘게 공수처 설치를 외쳐온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일거에 부정해버리는 주장은 비합리적이고 반민주적이다.

공수처 설치는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대적 과업이다. 그동안 경찰과 검찰의 직무유기 속에서 치외법권을 향유해온 고위권력자들에 대해 우리가 주인임을, 그래서 우리의 법이 세상을 관철하고 있음을 보증하는 최선의 대안이다. 더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바른미래당은 시대적 정의를 외면하며 하늘의 성긴 그물을 짜내는 민심의 도도한 요구를 거부해온 자유한국당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 그것을 강요한 자의 운명이 되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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