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이냐 '스몰딜'이냐, 트럼프의 결정에 주목

[정세현의 정세토크] 새로운 판을 짠 북한, 미국 호응할까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6~8일 평양에 방문해 북한과 실무협상을 진행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단을 만나 "양측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견을 좁히는 것은 다음 회의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6일부터 2박 3일동안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가진 협상에서 북미 모두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다자협상을 언급했다. 이건 비핵화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핵화만 떼놓고 할 수는 없지 않냐는 뜻"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체제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등이 비핵화와 무관하지 않으니, 비건 특별대표가 들어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전체 그림을 그리자고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이건 기존의 협상과는 다른 새로운 판을 짜자는 이야기"라며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방안을 실무자들이 진행하는 후속협상에 맡겼더니 비핵화 이야기만 하고 평화체제 문제나 북미관계 수립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연계시키는 판을 짜자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은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개선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결국 북미 간 핵심은 대북제재의 완화 또는 해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반출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의 '스몰 딜'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비핵화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도가 나간 것이고 평화체제나 새로운 북미관계와 관련해서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그친 것"이라며 "미국은 이같은 주고 받기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 것 같은데 여기서 북한이 비건 방북을 계기로 엎어치기를 한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는 "결국 북한이 비건에게 숙제를 많이 내준 셈인데, 북한과 스몰딜이 아닌 '빅딜'을 할 것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 미국에 공이 넘어간 것"이라며 "다음주로 예정돼있는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 실무 협상 때 일부 답을 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1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에 들어가 직접 실무협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계기가 됐을까요?

정세현 : 비건 특별대표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생산적인 회담을 하고 왔다고 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걸 보면 협상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미국이 생각했을 때 성과는 별로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개 외교적 수사의 이면에는 근사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진지하게 토론했다'는 건 양측이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했다는 뜻이거든요. 비건 특별대표는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북한의 '통 큰 양보'를 이끌어내려고, 즉 혹을 떼려고 갔는데 오히려 혹을 붙이고 나온 것 같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다자협상을 언급했습니다. 이건 비핵화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핵화만 떼놓고 할 수는 없지 않냐는 뜻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체제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등이 비핵화와 무관하지 않으니, 비건 특별대표가 들어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전체 그림을 그리자고 했을 겁니다.

이건 기존의 협상과는 다른 새로운 판을 짜자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방안을 실무자들이 진행하는 후속협상에 맡겼더니 비핵화 이야기만 하고 평화체제 문제나 북미관계 수립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연계시키는 판을 짜자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연계시키려면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 북미관계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연락사무소 개설 이후 수교로 가는 동안 양국 간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정들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월 3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북미 간 "관계개선과 제재는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면서 "관계개선의 기초가 존중과 신뢰라면 제재의 기조는 적대이고 대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자신들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겁니다. 제재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가기 어렵고 평화체제는 시작도 할 수 없으며, 비핵화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반출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의 '스몰 딜'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비핵화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도가 나간 것이고 평화체제나 새로운 북미관계와 관련해서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은 이같은 주고 받기를 통해 성과를 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전략을 세운 것 같은데, 여기서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지난 6~8일 회담에서 엎어치기를 하면서 판을 키운 것이죠. 비건 특별대표의 2박 3일 방북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로 갈 수밖에 없는 북한의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결국 북한이 비건에게 숙제를 많이 내준 셈인데, 북한과 '빅딜'을 할 것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해야 합니다. 미국에 공이 넘어간 것이죠. 미국은 다음주로 예정돼 있는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 실무 협상 때 일부 답을 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보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적 여론을 띄워 놓았는데, 자신이 한 말을 이행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북한은 이를 이용, 자신들의 제재 완화나 해제 요구를 회담 성과와 연계시켜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북한과 실무협상을 마치고 남한을 찾은 스티븐 비건(왼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북한은 사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더라도 내부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 체제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릅니다. 그렇게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주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즉 북한에 돈을 쓰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북한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북한은 소위 말하는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 아닙니다. 미국은 채찍을 휘두르면서 경제적 비전이라는 당근을 보여주면 북한이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북한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다.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이 비자본주의 국가이자 비서양문화권인 북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것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미스인 셈이죠.

사실 북한과 베트남은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에 끝까지 저항했고 결국 미국도 손들게 만들었던 국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보다는 베트남 하노이가 훨씬 상징성이 크죠.

북한, 하노이를 택한 이유는

프레시안 : 정상회담의 장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보자면,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베트남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요? 베트남이 소위 '자유 세계'에 들어오게 되니까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냐는 걸 북한에 보여줄 수도 있고요.

정세현 : 물론 미국은 베트남의 현재 경제적 상황을 북한에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자주성을 더 강조할 것입니다.

북한은 항미 전쟁에서 성공한 롤 모델로 베트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월맹이 미국을 굴복시켜서 결국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이러한 베트남의 역사가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국제적 제재와 압박 속에서 끈질기게 저항해서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결국 미국과 일대일 회담을 하게 됐다면서 말입니다.

즉 미국을 손들고 나가게 만든 베트남의 수도에서 미국의 수뇌부와 회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김정은 입장에서는 금수산 태양궁전에 가서 보고해야 할 사안입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미국도 이러한 점을 의식했을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다낭으로 끌고 가서 베트남이 개혁 정책을 통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미국의 말을 잘 들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려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죠. 북한은 돈에 홀려서 가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다낭은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하노이보다 상대적으로 다낭을 선호한 이유가 중국을 의식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정세현 : 지난 1960년대 소련과 중국이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소련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과 손을 잡았죠. 중소 국경 분쟁까지 있던 상황에서 중국을 밑에서부터 압박한다면 중국의 전력이 분산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와 유사해 보입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인도양으로 진출하면서 사실상 이쪽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와중에 미국이 베트남까지 가서 북한과 수교할 수 있는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한다면 이는 중국 견제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베트남과 북한이 노골적으로 반중친미로 갈 수는 없지만 중립적으로만 되더라도 미국으로서는 훨씬 유리한 상황인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에 국빈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정세현 :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한다고 하면 베트남식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국빈방문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베트남을 롤 모델로 삼으려고 한다면 앞으로 경제 분야에서의 실무 협력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서로 파견 요원도 늘리고 연수단도 왔다갔다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AFP=연합뉴스

또 북한 입장에서는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일 때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지에 대해 베트남으로부터 배워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네바 합의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의정서(합의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는데요. 북한에서 여기에 혹시 독소 조항은 없는지 확인하느라 늦어진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북한은 베트남에게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개발과 관련한 내용을 베트남으로부터 배우려는 것은 국제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은 그 대가로 비핵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 차제가 북한이 비핵화에 의지가 있다는 반증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통해 내놓을 결과물은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는 비핵화가 없으면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제재를 둘러싸고 상당한 입장 차가 있기 때문에 회담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에 대한 면제를 통해 어느 정도 접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비핵화 속도를 내고 장차 제재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희망을 주려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면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경우 유엔 안보리의 마지막 제재가 나온 2017년 12월 이전에 이미 한국 정부에 의해 이뤄진 조치이기 때문에 면제 조치를 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의지 표현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간 연말 즈음부터 꾸준히 물밑협상을 했을 거고 그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 같습니다. 즉 미국 측으로부터 일정한 언질을 받았다든지, 확답까지는 아니지만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러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은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했다고 보고, 지금 '플러스 알파'를 논의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정세현 :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여기에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이상으로 미국이 제재와 관련해 북한에 뭔가를 더 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저스는 현금을 가지고 들어가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북한에 간다는 것을 트럼프가 막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상당하죠. 사실 돈이 움직이는 곳에는 평화가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미국도 그냥 내주지는 않을 겁니다. 즉 북한에 비핵화에 대해 뭔가 하나 더 내놓으라고 하겠죠. 결국 서로 계속 플러스 알파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회담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북한의 비핵화만 해도 지난 25년 동안 상당한 부침을 겪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책이 북한의 선(先)행동 요구로만 전개되다가 중간에 적당한 핑계대고 없었던 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북핵의 능력이 고도화됐고 판이 커지긴 했지만요.

어쨌든 비핵화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또 북한은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한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 31일(현지 시각) 스탠포드에서 '동시적·병행적' 입장을 보였고 대통령이 종전 준비가 돼있다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또 연락사무소 설치와 인도적 지원 등도 언급했습니다. 이는 나쁘지 않은 신호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또 만날 수도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비핵화를 어느 정도 하면 제재를 어느 정도 풀겠다는 식으로 갈 겁니다.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제재 완화를 끌어내기 위해 또 회담을 해야 하고요.

이런 부분을 실무협상에서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이 가져오는 미국 국내에서의 정치적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트럼프는 몇 번 정상회담을 더 해야 합니다. 즉 이렇게 치고 나가면서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죠. 그렇게 계속 북미 정상회담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건 마음먹기에 따라 상당히 오래 우려먹을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지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평화협정의 서명 당사자로 중국을 넣어주느냐 마느냐도 사실상 미국이 결정하게 돼있는 상황입니다. 또 미북 간 관계개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일본이 몸이 달았습니다. 이것 역시 미국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안입니다.

게다가 지금 미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번 한 번으로 북미 회담이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미 간 대화가 계속되도록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새롭게 구축되는 동북아 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등극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미국과 소련이 짜놓은 냉전 구조에서 수동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겁니다.

프레시안 : 북미 간 관계 개선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바뀌게 되면 향후 동아시아의 공동 안보라는 개념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이게 한국전쟁에 대한 평화협정 체결과 연결되는 문제인데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군비 통제로 시작해서 감축으로 가야 합니다. 감축은 북한에도 적용되지만 우리도 해야 합니다. 상호적으로 가야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군비 감축을 하려면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무기 문제도 거론될 수 있는데, 그러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자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자신들도 빠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4자로 가야하는데 이렇게 시작은 할 수 있으나, 실제 항구적인 평화 보장 체제를 만들려면 러시아와 일본도 여기에 대해 지지하는 공동선언문을 낸다는 식의 보장 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의 안보 협력체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에서의 이같은 안보 협력을 동아시아까지 발전시키려면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밀접하게 연관돼야 합니다. 유럽연합(EU)도 기본은 경제였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가 과연 이같은 경제적 협력관계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또 1970년대 헬싱키 프로세스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객관적으로 소련의 힘이 위축되던 때였습니다. 미소간 패권 경쟁이 심화되던 때가 아니었죠. 지금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힘이 계속 부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와중에 경제 및 안보 협력체가 수월하게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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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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