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운영 뒷받침'으로 길거리 나앉은 이들

[기고] 올해 정년 맞는 콜텍 김경봉 조합원의 마지막 바람

2007년 세계 3위 기타회사 콜텍 대전공장의 김경봉 노동자. 그가 일하던 공장은 분진과 유독가스로 자욱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마스크 하나를 주며 "아껴 쓰고, 다시 쓰고, 빨아 쓰라"고 했습니다. 호흡기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손가락이 잘리고 손톱이 벨트에 깎여 피가 흘러도 회사는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들 눈치가 보여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습니다. 회사의 관심은 오직 돈 뿐이었습니다.

2007년 7월 박영호 회장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물량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빼돌리고 한국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박영호는 한국 자산가 100위 안에 들었던 사장입니다. 김경봉 조합원은 회사가 폐업한 날을 떠올립니다. 평소처럼 대전공장에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말 한마디 없이 공장 정문을 봉쇄했고, 출입을 못하게 했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이렇게 바보처럼 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법은 정의의 편에 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09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회사 전체의 경영사정을 종합 검토해 정리해고 당시 경영상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2월 대법원은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자세히 심리하라"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가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정리해고를 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콜텍과 콜트의 엇갈린 판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4년, 대법원은 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8년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한 조사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콜텍 대법원 판결은 쌍용차, KTX와 함께 '박근혜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이자 '박근혜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이었습니다. 지난 1월 11일 마침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고, 결국 구속됐습니다.

▲ 싸우다 보니 정년의 나이가 됐다. 그는 말한다.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1월 30일 금속노조 집회에 참석한 김경봉 씨.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싸운 노동자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김경봉 조합원은 "2008년 첫째가 대학교 휴학을 했다. 둘째가 대학에 가야 하는데 두 명의 등록금을 대줄 형편이 안 됐다. 셋째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뒤틀린 생활에 아이들 역시 고통이 컸다. 왜 친구들보다 뒤늦은 출발을 해야 하냐는 아이의 원성에 미안하고 할 말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내 몸 움직여 일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였는데, "정리해고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 것입니다.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지만 차마 면접에 가지 못했습니다. 동료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정리해고 13년, 초등학생 자녀는 군인이 되었고, 고등학생 아이는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40대 노동자는 이제 정년퇴직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해고자로 정년퇴직을 맞이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콜텍의 사원증을 받고 당당하게 퇴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싸움이 옳았다는 것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함부로 사람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13년을 버텼습니다.

회사가 교섭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13년 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강변합니다. 대법원 판결도 정당하다고 합니다.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도 자신 있다고 떠듭니다. 13년 전 정리해고의 대가로 준 명예퇴직금, 위로금을 먹고 떨어지라고 합니다. 사과도 할 수 없고, 해고자 복직은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잘 나가는 회사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13년이 지난 오늘에도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면 집을 작은 곳으로 옮기고, 물건을 내다 팔아 가족들을 지킵니다. 하루 세 끼를 먹을 돈이 없으면 끼니를 줄입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입니다. 부모가 돈을 잘 버는데, 앞으로 돈을 벌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지는 않습니다. 김경봉 조합원과 해고노동자들은 말합니다. 최소한 회사가 양심이 있다면, 13년 전 정리해고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해고노동자들의 13년 고통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특별법원이 설치되고 콜트콜텍 사건이 다시 재판에 회부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설명 재심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또다시 대법원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외환위기를 이유로 만들어진 잘못된 ‘정리해고법’과 자본의 욕심 때문에 벌인 정리해고가 정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2007년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김경봉 조합원은 당장 복직을 한다고 해도 정년 때문에 10개월밖에 다니지 못합니다. 국내 공장도 없기 때문에 원직으로 복직할 수도 없습니다.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이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욕심 많은 회사와 못된 정부, 나쁜 법원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습니다. 아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래서 박영호 회장의 사과, 명예로운 복직, 해고 기간의 보상에 대해 회사가 전향적인 안을 내야 13년의 고통을 끝낼 수 있습니다.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위로금을 받고 떨어지라는 회사의 요구를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잘못된 정리해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앞으로 다시는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해고자들의 명예롭게 복직하고, 명예롭게 퇴직하겠다는 소박한 요구조차 회사가 거부한다면,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극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장 마음대로 해고하는 세상,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경봉 조합원이 회사에 묻습니다.

"정년 전에 복직하고 싶습니다. 정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해고였느냐고 콜텍 박영호 회장에게 묻고 싶습니다. 청춘을 바쳐 일한 사람들인데 이제라도 해결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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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기구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5일 점거파업에 함께 했고, 이후 한진중공업,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했습니다. 저서로는 <25일>, <노동여지도>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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