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일본이 도발적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지율 반등을 노린 측면도 있고,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온 한일관계의 반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일본의 의도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꺼져가는 평화헌법 개정 불씨 살리기가 아닐까 한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은 아베의 숙원에 해당된다. 북방영토 분쟁 대상인 러시아, 지역 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속도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갖춘 북한은 이를 위한 구실로 이용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이들 나라의 위협론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러일 간에는 영토 갈등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지만 평화조약 협상에 들어간 상황이다. 중일 간에는 작년 연말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개선 움직임이 확연해지고 있다. 아베가 28일 시정연설에서 "중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이 급진전되면서 북한위협론의 효용 가치도 급감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북한과의 국교 교섭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아베는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북한 위협을 강조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에는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처럼 러일 평화조약 협상, 중일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의 진전 및 북일수교 협상 추진 등은 아베의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 시도와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는 이미 악화된 한일관계에 군사 갈등까지 더하면 평화헌법 개정의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군사적 대응을 높이는 것은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군사적으로는 '선의의 무시'를 하면서 외교적 해결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책일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아베가 북일 교섭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변화에 따라 떠밀린 측면도 있지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환영할 만한 입장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북일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의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익이 지배해온 일본 정부는 전후 과제로 상충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평화헌법 개정이고 또 하나는 북일관계 정상화 및 러일 평화조약 체결이다. 하지만 아베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아베에겐 '한국위협론'이라는 새로운 구실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이 시비를 건다고 해서 우리가 군사적으로 맞대응을 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못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북일관계 개선의 중재자로 나섬으로써 한일관계의 출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베에게 평화헌법 개정 시도보다 북일관계 정상화가 더 현실적인 정치적 업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일 정상회담을 적극 권유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점증하는 혐한론이 우리에게 부채라면,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다수의 일본 여론은 우리에게 자산이 될 수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와 '평화헌법 수호'에서 갈팡질팡하는 일본과 더불어 평화와 번영을 함께 나누고 키울 수 있는 한일관계의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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