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 합법적 과로사 허용!

[복지국가SOCIETY] 현행 과로사 기준인 '12주 동안 평균 60시간 노동' 초과

최근 탄력적 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비롯한 노동 현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정치권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다. 노동계는 "합법적인 과로 사회로 갈 것인가"라고 따져묻고, 경영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간과의 싸움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근로기준법 제51조)는 2주 단위와 3개월 단위의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주 이내의 경우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3개월 이내의 경우 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추가 근무하면 최대 주 64시간까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위 기간이 6개월 또는 그 이상 확대되면 장시간 노동 강도는 더욱 심화된다.

노동계에서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어나면 '과로사의 조건을 정부가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 확대는 정부가 정한 과로사 기준인 '12주 동안 일주일 평균 60시간의 근로'를 위반하게 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 2018년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11.21 총파업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팻말을 들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정부가 정한 과로사 기준인 12주 동안 일주일 평균 60시간 근로를 위반하게 된다. ⓒ연합뉴스

반면 경영계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하려면 단위 기간(현행 3개월)을 더 확대하고 까다로운 도입 요건(근로시간 사전 특정, 서면 합의)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노동력 제공자인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고 노동법과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근로기준법이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하루 단위, 일주일 단위로 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계와 달리 인간은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고 제때 잠자고 휴식도 취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노동력도 제공할 수 있다. 피로도와 피로 회복 기간을 고려한 단위 기간이자 근로의 상한이 바로 1일, 일주일이다. .

문제는 계절적으로 업무의 번한(繁閑)이 있거나 IT 업종 개발 업무처럼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다. 이런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불가피하게 법 기준을 넘는 근무 형태를 인정한 것이 바로 탄력적 근무제라는 예외 조항이다. 예외를 인정한 조항이니 근로자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위 기간과 허용 시간 등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가'다.

경영계의 주장, 노동자 과로 부추긴다

먼저 근로일정을 특정하는 대신 '근로시간 조정의 기본 계획만을 협의'해야 한다는 경영계 주장을 보자.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고르게 배분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근로 형태다. 게다가 근로 일정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기본 계획만을 협의'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 어렵고 사업주에 대한 노동의 예속은 더욱 강화된다.

'단위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노동은 저축했다가 어느 날 일시에 목돈으로 빼서 쓸 수 있는 적금이 될 수 없다. 노동법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와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서도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대해 추가 50%의 가산율을 지급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1일 2시간, 주 1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 단위 기간을 늘려 총량만 넘지 않게 노동을 모았다가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쓰면 노동자도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무시한 발상이다.

개별 근로자(또는 대상 근로자)가 회사와 개별적으로 합의하자는 경영계 주장도 비합리적이다. 전체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하도록 한 것은 자본에 대항할 수 없는 개별 노동자에게 주어진 일종의 단결권적 성격이 있다. 개별 합의를 하면 자신들에 대한 해고권, 업무배치권 등 인사권을 가진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들이 제대로 주장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대안이 탄력근로제 확대?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격

논의가 과열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다른 나라의 운영 사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작은 제도 하나만을 검토해서 지금의 대립적인 노동 현안의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토를 하려거든 노동조건 전반, 노동자들의 삶과 연결된 분배구조와 경제구조 전반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생산 활동 결과인 국민총소득(GNI)의 분배 추이를 보면, 2017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보다 10.6%포인트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가계 소득 비중은 11.4%포인트만큼 하락했다(2018년 국회 예산정책처). 이런 불평등 구조를 외면한 채, 노동 현장만 들여다본들 돌려막기 식 해법 이상의 것이 나올 리 없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를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싶다면 반드시 노동조건들과 맞물려 돌아가는 연관된 조건들부터 살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제도를 운영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살피기보다 제도의 근본 가치부터 흔들어대는 습성이 있다. 법률에 명시돼 있음에도 관행상 지키지 못해왔던 주 52시간 노동제(법정근로 40시간 + 연장근로 상한 12시간)를 이제 제대로 지켜보자는데, 불쑥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손보자거나 고용률 저하를 들먹이며 최저임금 인상율과 산입 범위까지 흔들어댄다.

법이 실현하려는 취지를 매번 원칙 없이 이리저리 흔들고 나면 지켜야 할 중심은 늘 휘둘릴 수밖에 없다. 운영상의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이고 수정할 부분은 문제를 유발한 잘못된 환경과 관행이지 '원칙'이 아니다.

다시 60・70년대 노동 환경으로 돌아가면 경제가 살아날까?

물론 제도는 끝없는 보완 속에서 운영되기 마련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역시 어떻게 어떤 수준으로 바꿔나갈지 논의가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제도 개선에 인간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논의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은 최저임금 등 정책 리스크가 조선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어 관련 기업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연일 협박 수준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1960~1970년대 노동 환경으로 돌아가야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 같은 위기 의식을 부채질한다. 노동자들이 이 경제위기를 부른 죄인인 듯, 노동은 시대를 초월해 고무줄이라도 되어야 할 것 같다. 여기 안 좋으면 여기서 희생하고 저기 안 좋으면 저기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모든 상황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인간의 목숨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보수 언론들이 말하는 위기에 대한 처방은 잘못된 산업구조의 문제(비민주적 경제구조, 불공정 경제의 틀)에서 찾아야지 노동 환경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경기가 좋지 않다. 자영업자들이 문 닫고 있다.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라면서 모든 문제가 노동자들의 책임인양 전가하고 노동자들이 더 희생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변한다. 성장의 과실을 극히 일부가 쓸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노동자들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런 사회 발전은 그만두어야 한다.

기업의 생존 위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진짜 위기의 근원인 소득 불균형, 왜곡된 분배 수치에 대한 해명부터 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제도가 인간을 부정하고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고 1위인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아직도 더 많이 노동하도록 노동자를 내몰아야 하고 기계 다루듯이 아무 때나 필요할 때 자유롭게 쓰다가 해고해도 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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