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의 독재냐, 330명의 민주주의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복지국가의 진입로다

정치 개혁 합의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다. 오래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으나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불가론은 크게 두 가지다. '국회의원 밥그릇론'과 '의원 정수 확대 불가론'.

두 불가론 모두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이용한다. 국회의 자체 개혁을 선행한다는 명분으로 여론의 비판을 최소화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유야무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는 사실상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을 왜곡한다.

다수가 반대해도 권력을 독점하는 선거제도

'국회의원 밥그릇론'의 이면에는 소수 정당에 대한 비난이 전제되어 있다. 소수 정당이 자기 밥그릇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사활을 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소수 정당만을 위해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밥그릇론'은 기득권 양당의 당리당략 측면에서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바라보니 나오는 해석이다.

현행 소선거구 1위 대표제는 과대·과소대표 등 불비례성 문제와 더글러스 래(Rae, Douglas W.)가 지적한 제조된 다수(manufactured majorities) 문제를 피할 수 없다. 40% 득표해도 최다 득표라면 60% 반대가 있더라도 선출되는 게 현재의 선거제도이다. 사표로 버려지는 반수 이상의 민의는 거대한 규모의 소수다. 과반을 넘기며 승리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지역구 승리로 정당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얻는 경우는 많다. 이 경우 실질적 지지율과 무관한 선출 권력이 탄생한다. 현행 선거제도를 통해 배제되는 민의는 숫자가 작아서 소수가 아니다. 이는 제도적 모순으로서 인해 대표되지 않는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제도의 모순으로 다수의 민심이 버려지는 과정에서, 거대 양당은 기득권의 목소리만 대변한다. 목소리 잃은 청년, 비정규직, 영세 소상공인의 아픔은 커져만 간다. 비정규직 김용균 법안이 최근 통과되었지만, 통과의 과정을 보라. 사회적 요구 자체의 중요성에 호응한 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략적 필요에 따른 연계 입법이었다. 언제까지 절실한 사회적 요구보다 정략적 타산이 앞서게 할 것인가? 정략 정치가 아니라 책임 정당의 정책 정치가 필요하다.

▲ 국회 본회의장. ⓒ연합뉴스

의원 정수 확대 반대는 기득권 유지 정략

다음으로 '의원정수 확대 불가론'을 살펴보자. 이 주장의 핵심은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국민 정서에 반할 수 없으니 국회의 자체적인 개혁을 선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적 모순은 남겨둔 채 국회를 개혁하자는 주장은 영원히 개혁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무능한 기득권 중심 국회를 개혁할 최선의 방안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쳐두고 껍데기만 바꾸겠다는 것이고, 지역구 관리만 신경 쓰면 당선되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개혁 의지도 없고, 정치적 책임도 망각한 채로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 바쁜 기득권 정치의 재탕일 뿐이다.

2019년 국가 예산을 보자. 민생 예산이 늘어난 면도 있지만, 복지 예산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결에 비해 많이 삭감되었다. 예를 들어 빈곤 노인 생계비 지원을 위해 부가 급여 형태로 기초생활수급 노인에게 월 10만 원씩을 지급하려 한 예산이 삭감되었다. 3급 장애인에게 지급하려 한 장애인 연금 예산도 삭감되었다. 반면에 구석구석 추가된 여야 실세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은 한국 정치의 비극적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아프고 약한 자들을 먼저 내쳐버리는 시장 논리가 정치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복지국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필요해

민주주의 대원칙은 권한의 확산과 분산이다. 모든 권한이 한 곳으로 모이면 독재다.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보기 싫다고 하여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면, 궁극적으로 300명분의 과도한 특권 구조를 유지하게 된다.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 당시 '99명의 독재보다 120명의 민주주의가 낫다'는 구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 관리만 하는 정치인들의 대중 영합적인 행보를 보고 싶지 않다면, 의원 정수 확장과 동시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당 득표만큼 의석을 보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간 정책 경쟁을 심화하고, 정치 책임성을 강화한다. 딱 실력만큼 의석을 얻고 정책에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제도다. 한국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석수가 330석이다. 국민 정서를 들어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것은 국민의 국회 개혁 열망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300명의 독재보다 330명의 민주주의가 낫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복지국가로 가는 진입로를 여는 것이다. 선진국 민주주의는 정치·경제·사회가 서로 배제하지 않도록 하고, 영역을 공유하고 상생한다. 핵심은 정치·경제·사회의 상호보완성이다. 정치가 시장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완전히 배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장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다. 그래야 복지국가는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이 정치에 앞서는 현재 상황에서 복지국가는 어렵다. 어떤 대통령이 집권해도 서민이 고통 받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반대만 하는 야당에 개혁 좌절, 해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한국은 87체제와 97체제의 한계를 품은 시장친화적 국가체제이다. 87체제는 정치적 자유권·참정권·권력통제권을 쟁취하며 시민권의 진전을 이룩했지만, 무능한 의회를 만들어 냈다. IMF 이후 자리 잡은 97체제는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 근로빈곤층을 양산하고, 중소기업 약소화와 실업 문제를 발생시켰다. 고질적인 양극화 병폐가 뿌리내렸다.

안타까운 점은 97체제를 거치며 서민들 또한 각자도생의 사회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물론 복지국가를 향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복지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공존과 상생, 공동체의 상호 연대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 이상은 우리와 먼 곳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포용적 복지국가 비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체제가 가진 선거제의 한계와, 양극화의 구조를 넘지 못한다면, 복지국가 비전은 온전히 이루기 어렵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복지 정책의 총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거 때 유력 인물의 선심성 공약으로 채워진 복지 정책으로 한국의 복지제도의 총량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민생 지표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가 하나의 체계로 맞물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촘촘한 재정 계획과 수십 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된 복지로 보기는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복지를 맞춰가려면 증세는 필수적이다. 현재 20% 수준의 한국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인 25% 정도로 올리고, 사회보험료도 인상해 가야 한다. 중장기 시야의 비전과 로드맵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에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증세를 말하며 복지국가를 설계하고 추진한 정권이 있었던가? 촛불로 세워진 문재인 정부조차 복지국가를 향한 재정 계획을 내놓지 못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집권 정부와 여당은 국정 안정화의 유혹에 빠져 중산층에 반하는 개혁이나 증세를 시도하지 않고, 개혁을 단행하더라도 반대만 하는 상대 정파에 의해 개혁 의도는 훼손되고 실패로 귀결되기 쉽다.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돕지 않고, 실패하도록 해야만 정권 탈환 기회가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때문이다. 결국 정부 여당은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정치 권력을 상실하고, 거대 양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사이 민생은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체제와 정치 구조에서는 장기 프로젝트로 만들어야 하는 복지국가 비전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정책 지속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복지국가의 주춧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87체제의 한계 극복은 97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주춧돌이다. 87체제의 한계는 시장 조정 능력을 갖추지 못한 거대양당 중심 정치구조다. 이를 바로잡아, 정치가 시장을 조정할 능력을 갖출 때, 재분배와 복지 같은 민생 살리기를 장기적인 호흡으로 펼쳐갈 수 있다. 복지국가는 이런 배경에서 뿌리내린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힘을 모으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수파와 소수파,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면서 상생하는 연합 정치를 제도화한다. 배제되었던 목소리가 국회로 들어가고, 정치적 대표성이 고르게 분포되면서 기존 양당 구조에서는 외면당한 의제들이 협의된다. 상이한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 치열한 협상과 조율을 통해 만든 정책은 지속성을 보장받는다. 이에 사회적 합의주의가 발달하면 정치에 시장 경제를 조정하는 힘이 생긴다. 북유럽 복지 선진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는 모두 최고의 사회적 합의주의 국가다. 모두 비례대표제 중심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다.

현재 우리는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그 진입로다. 촛불이 만든 역사적 기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대 양당은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민생을 살리고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인가? 이 순간이 역사에 기록되고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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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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