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또 나와도 '김용균법' 적용 못 받는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죽음과 투쟁으로 이룬 28년만의 산안법 개정

"국회 법안 논의를 지켜보면서 너무도 답답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법 개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 아들은 적용받지 못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꼭 통과시켜 달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의 말이다.

산업법 개정은 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의 역사

이번 김용균 씨의 죽음과 국회 법 개정 논의를 지켜보면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의 역사는 노동자 죽음과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30년 전에는 15살 문송면 군의 수은 중독 사망과 원진 레이온 노동자 915명 직업병 판정에 대한 사회각계 각층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다.

1990년 산안법 개정의 핵심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규정을 비롯한 노동자 참여권 확대와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직업병 예방을 위한 화학물질 조사 및 조치의무와 건강관리 수첩 제도 등 14개 항목"이었다. 그 이후에도 근골격계 질환 집단 산재 신청, 석면, 철도 지하철 궤도 안전, 병원 감염성 질환, 청소 노동자 씻을 권리, 전기 안전, 타워크레인 안전, 산재 은폐, 감정 노동 보호 등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 조항 하나하나에 노동자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최근 7-8년은 하청 산재 사망 문제가 계속 제기되면서 산안법 29조의 원청 책임 장소 확대와 화학물질 정보 제공 등이 개정되어 왔고, 구의역 참사 이후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의원 입법안도 발의되었다. 또한 기업 살인법 제정에 대한 활동도 이어졌다.

산안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 활동은 2012년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특별법 안을 준비하고 추진하면서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시민 재해를 포괄하는 중대 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으로 이어져, 2017년에 입법 발의가 되었다. 그 외에도 화학물질 독성 정보에 대한 알권리 보장과 영업 비밀 제한 등 노동계는 다양한 영역에서 현장 투쟁, 실태 조사, 토론회, 인권위 권고, 입법 발의 등 수도 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국회는 심의도 없이 회기 만료로 폐기를 반복해 왔고, 20대 국회도 약 50개가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잠자고 있었다.

마침내 서울지하철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산안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정부가 2018년 2월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11월에 국회에 이송된 후 12월에 개정되었다. 이번 28년만의 산안법 개정 역시 죽음과 투쟁의 결과이다. 24살 김용균 청년 노동자의 죽음과 유족의 완강한 투쟁, 전국적 추모에 힘입은 결과이다.

▲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고 김용균 씨. ⓒ공공운수노조

김용균의 죽음이 이룬 산안법 전면 개정

2017년 8월 정부는 '중대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발표하고, 2018년 1월에는 '사고성 산재사망 절반 감소 대책'을 발표했다. 이 내용을 담은 게 바로 28년만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주요 내용만 8개 분야 32개 조항에 달하고, 신설강화 되는 조항이 60여개가 넘는다. 또한, 법률의 목적, 체계도 완전히 바꾼다.

경총과 건설협회 등 사용자 단체는 '졸속, 일방 강행' 프레임을 만들고 입법 예고 이후부터 국회 통과 직전까지'법 개정을 지연시키거나 회기 만료로 또 다시 쓰레기통으로 폐기 처분'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전경련은 114개 기업 설문조사를 통해 기업부담론을 주장했고 대한상의, 경총 등 연합단체뿐 아니라, 건설협회, 화학물질 기업 등도 총 공세를 펼쳤다. 결국 산안법 개정안은 산재 사망과 건설업 불법 하도급 산재 사망에 대한 하한형(산재사망시 최소 징역 1년 이상형을 명시하는 조항) 도입이 삭제되는 등 후퇴한 체로 국회로 이송되었다.

결국 논란을 거듭한 끝에 지난 12월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대부분 2020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용균 또 나와도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상 예외

개정안은 도금, 수은 등 유해 위험한 업무는 도급을 금지한다. 또한 주로 화학물질을 중심으로 하는 위험 업무에서는 도급을 하려면 정부 인가를 받아야하고, 도급인가 대상 업무는 재하도급을 금지한다. 특히, 도급금지, 도급인가, 재하도급 금지 등은 강력한 처벌 조항도 같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도급 금지'라는 정책 방향의 선회를 표방했지만, 대상 업무가 22개 사업장 800여 명 내외에 불과해서 무척 협소하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의 사회적 공분을 만들어 낸 구의역 김군도 태안화력 김용균도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시행령 위임도 없어 추가 확대하려면 계속 법 개정을 통해야 한다.

원청 책임의 확대

현행 산안법 29조는 건설, 조선, 제조업의 하청 산재에 대한 보호조치를 시작으로 대상을 계속 확대해 왔으나, 서비스업 등 여타 산업의 다양한 하청 산재 문제를 포괄하지 못해 왔다. 원청들이 임대 위탁 등 다양한 계약 형식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갔고, 병원과 지하철의 청소 노동자, 삼성전자 서비스 등 다양한 하청기업의 산재 문제도 일부 도급, 형식상 임대 위탁 등을 빌미로 역시 원청의 의무에서 번번이 누락되었다.

이번 개정은 도급의 정의를 확대해 다단계 하청까지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 건설, 조선업종 등의 다단계 하청에 대한 원청 책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또한, 종전에는 22개 위험장소로 원청 책임이 한정되던 것을 원청 사업주가 지정·제공하고 지배·관리하는 장소라면 원청 업체의 책임을 포괄했다. 태안화력의 경우 22개 위험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청인 서부발전이 직접 안전 보건 조치 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사고에서도 서부발전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근거였다. 이번 개정으로 동일 사업장에서는 생산공정의 하나이든, 식당, 경비 등 서비스 분야이든 원청이 하청과 공동사용자로서 안전보건 조치의 책임을 지게 된다.

한편 동일 사업장이 아니라 사외작업장인 경우에도 원청이 지정, 제공하는 장소인 경우 원청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세부 대상과 내용은 하위법령에서 정하게 된다. 원청의 책임으로 종전의 사업주간 협의체 구성, 원 하청 합동점검 등 외에도 안전교육의 확인 의무가 추가되었고, 작업환경 측정, 위험성 평가 조항에서 하청 노동자 공정까지 포괄하도록 했다. 또한 노동자 대표가 원청의 하청 산재예방 조치를 요구하면 사업주가 제공하도록 했다.

산재 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

지금까지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 처벌은 솜방망이에 가까웠다. 이번 개정으로 산재 사망 기업에 대한 가중 처벌 조항이 도입되었다. 5년 이내에 동일 범죄를 저지른 경우 1.5배 이내로 가중 처벌된다. 산재 사망 처벌에서 원청의 법 위반에 대한 조항도 추가돼 원청의 처벌이 가능해졌다.

또한, 산안법 위반에 대한 원청 처벌을 1년에서 3년 이하 징역형으로 강화하고, 형사처벌과 기업 법인의 벌금을 분리하여 법인 벌금을 1억에서 10억 이하로 강화했다. 기업의 대표이사가 이사회에 산재 예방 계획을 보고하고 집행하게 하여 산재 사망에 대한 기업의 최고 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도 마련했다. (물론 이 또한 재판을 통한 실질 처벌 이행은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아울러 경총과 사업주 단체에게 가장 민감한 제도인 수강 명령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에 있었던 산재 사망에 대한 1년 이상의 하한형 도입과 건설업의 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산재 사망 시 원청에게 3년 이상 하한형 처벌은 경총과 건설협회,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에 밀려 국회 이송 전에 삭제되었다.

일하는 사람으로 보호 대상 확대

이번 개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문 목적에 '노무 제공자'가 명시되었다. 이 정의에 따라 특수 고용, 배달 노동 등의 중개사업주, 프랜차이즈 본부 등이 구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지게 된다. 이는 파편화 되고 있는 고용구조에서 현행 노동관계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방향의 선회로 평가된다.

그러나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 정의가 '주로 하나의 사업' 이라는 산재보험법 특수고용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그 결과 화물, 택배, 퀵 서비스 등 위험도가 높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여기에 적용되지 못한다. 중개사업주의 경우에도 이륜자동차로 한정하고 있고, 프랜차이즈 본부의 경우에도 '소속 근로자' 로 한정하여 가맹점에 자회사 형태로 인력 공급이 되는 경우 보호 조치가 누락된다.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정부 보고와 영업비밀의 제한

현재 화학물질 독성정보와 관련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있기는 하지만 산안법에서 영업비밀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한 것도 영업비밀로 기재하거나 영업비밀 대상인 경우에는 아무런 기준 없이 기업 마음대로 비밀로 삼아 왔다. 이번 개정으로 기업은 MSDS를 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 기업의 비공개 남발을 막겠다는 취지이다.

또한 영업 비밀에 대한 기준은 산재예방정책심의위에서 다루고, 영업비밀을 하려면 사업주가 안전공단에 신청해 심의를 받아야 하며, 노동자 대표, 질병판정위원회, 의사, 대행기관등이 요청하면 화학물질 독성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인터넷 공개 조항이 삭제되었다. 사업장내 노동자 권리가 제한적인 현실에서 알권리가 여전히 제약당할 수 있다.

작업중지권 강화와 건설업 발주처 책임 강화

이번 법개정으로 매년 600명이 산재 사망하는 건설업에 대한 조치 강화로 발주처의 책임이 도입되었다. 또한 건설 기계에 대한 원청 책임을 부여하고 타워크레인 설치 해체를 등록업으로 강화한다. 지난 20년간 주장되었던 발주처 책임 강화를 이번에 도입한 것이다.

또한 급박한 위험, 중대재해 발생 등에 대해 노동자, 사업주의 작업중지권과 의무를 명확히 했다. 지침으로 운영되던 노동부 감독관의 작업 중지 명령도 법제화했다. 이는 사업주 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가장 집중된 조항이어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노동부 작업 중지 명령의 제한 조건이 늘어났다. 특히, 막판에 사업주 단체의 요구에 밀려 '급박한 위험에 대한 노동자의 작업 중지에 대한 사업주의 불이익 처우에 대한 형사 처벌' 도입이 삭제된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산안법 개정 이후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이번 산안법 개정은 28년만의 전부 개정이다. 내용에서도 정책 방향, 세부 내용, 법 체계 등 그야말로 전면 개정이다. 하나 하나의 개정 조항에 현장 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이 담겨 있다.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다. 수 십년동안 이 권리는 짓밟혀 왔다. 이번 산압법 전면 개정이 현장에서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싸워 나가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가 죽은 태안발전소에선 아직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정규직화도 이루지 못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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