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위해 사회적 경제를 키우라

[복지국가SOCIETY] J노믹스와 사회적 경제, 우리가 만들자

#1 장면 하나: 추락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8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 수행 긍정 평가 비율이 최근에 50% 이하로 내려갔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이 그 최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의 세 바퀴 경제 정책을 내걸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2 장면 둘 : 비어가는 지방도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군산과 광주가 언론에 많이 언급되었다. GM본사는 지난 5월 말, 부평 공장은 남기되 군산 공장은 결국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지역 일자리 창출 등을 목표로 시도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변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군산과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광주는 많은 차이점도 있지만, 기저에 흐르는 공통점은 대기업을 통해서만 지역 경제가 유지·발전될 수 있다는 고정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세계화된 자본은 이익 창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국가와 지역은 상관하지 않는다. 한국에 투자한 다른 외국 자본들과 마찬가지로 GM은 한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을 뽑아갔고, 이제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자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사전에 대응하지 못한 국가의 잘못이고, 대책이 없이 정부만 바라보았던 지역의 잘못이지,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3 장면 셋 : 출산율 제고에 애타는 지자체

강원도가 파격적인 출산보조금 정책을 내놓았다. 아이가 태어난 해에는 아동 수당으로 매월 70만 원을, 다음해부터는 3년간 50만 원씩 4년간 총 2640만 원의 파격적인 육아수당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도지사가 자유한국당의 '출산주도 성장 정책'을 구체화 한 듯, 아이를 세 명 낳는다면 800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 정도의 수당으로 아이를 낳겠냐는 회의적인 시각, 기존의 중앙 정부 정책과의 충돌 등을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참고로 지난해 강원도에서 태어난 아이는 8958명으로 2001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했으며, 강원도 18개 시·군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곳의 지방자치단체가 소멸 위험 지역이다.

이 세 가지 장면들은 각기 다른 상황을 보여주지만 공통의 원인은 하나다.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 앞으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우리 경제의 다양한 모습이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민생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과 비전이 없이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사회는 갈등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동안 국가 경제를 지탱해 오던 주력 산업들이 신기술의 개발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통해 재조정되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위기와 발전의 변곡점을 맞았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국가 차원의 산업 정책과 경제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지방 정부가 권한과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중앙 정부만 바라보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역 경제는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지역 주민들이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에 지방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도 동시에 요구된다.

유의할 점은 매년 수십조 원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빨려 올라가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지방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선과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촛불 정부라면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경제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지역 사회에 기초한 선순환의 협동 경제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대기업 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 정책만을 고수한 결과, 허약한 중소기업과 취약한 내수시장 등 부실한 경제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경제성장이라면 진보나 보수 정권 할 것 없이 '기업 도시'나 '대기업 유치'와 같은 빈약한 상상력만 보여주었다. 이때문에 권력이 바뀌어도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나 지역 경제의 변화는 느낄 수 없었다. 시장 경제를 맹신하는 보수 정권뿐만 아니라 진보 개혁 정권 또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을 생각은 하지 않고 겨우 통증만을 완화시키고 연명시키는 임시방편 역할만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첫 회의에서 재계·노동계 대표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경식 경총 회장, 문 대통령,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연합뉴스

고용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지역 사회와 공존공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기업의 유치 말고, 다른 해법은 없을까? 지역과 공생하고 사람 중심의 경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확대해가는 것이 진보 개혁 정권의 과제이자 시대적 요구이다. 대기업 없이, 지역 순환의 협동 경제를 만든 성공 사례와 모델은 없을까? 대기업과 대자본 중심의 시장만능 경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다.

지난 2000년 이후 사회적 경제 개념이 도입되고, 2007년 '사회적 기업법'이 제정되고,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 기업은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2018년 11월 말 기준으로 등록된 협동조합 숫자는 1만5000개에 육박한다. 지난 6년간 양적으로 보면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시장만능과 이익만능의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순환 경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다. 문제는 중앙 정부가 재벌들에 독점되고 대기업들에게 과점된 황폐화된 경제 생태계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가 대기업과 대자본 중심의 시장만능 경제에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경기도의 두 배 만한 크기에 인구는 경기도의 3분의 1인 정도인 450만 명이 살고 있다. 에밀리아 주에는 약 8000개의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며, 경제의 30%를 담당한다. 인구 40만 명의 주도인 볼로냐는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경제의 비중이 45%에 달하며,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2015년 기준, 5400만 원)로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소득 지역이다. 볼로냐의 경제는 협동조합으로 지탱된다.

에밀리아 주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같은 초고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세라믹 분야는 세계 1, 2위로 관련 분야의 세계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수출은 대기업이 한다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뒤엎고 있는 것이다.

또 에밀리아-로마냐 주에는 40만 개의 중소기업이 있어 인구 10명에 하나 꼴로 자신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과 아이들을 빼면 평균 6~7명이 하나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기에 혁신과 협업이 일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일찍이 복지국가를 만든 스웨덴이나 덴마크, 네덜란드의 역사적 대타협, 사회적 합의가 흔히 거론되지만 에밀리아-로마냐에서는 그런 합의가 매일 일상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가 처음부터 잘 살거나 협동 경제가 활성화된 지역은 아니었다.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의 하나였다. 진보적 전통이 강한 지역이기는 했지만, 정권을 잡은 진보 개혁적인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협동조합 육성 정책과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쓰면서 반세기 만에 가장 안정된 협동 경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에 이탈리아 국가는 휘청거렸지만,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외부의 경제 위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의 사례가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에서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현대자동차 자본에 기대는 것보다는 중소기업과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모델을 추구해 볼 수 있다. 조선 산업의 몰락과 GM자동차의 이전으로 폐허가 된 군산에서도 외국 자동차 회사에게 떠나지 말라고 소매를 붙잡고 사정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에 기반을 둔 협동 경제 모델을 상상하고 구축하는 것을 권해 본다. 오히려 기존의 거대 산업이 많이 없는 지역, 정치적으로 진보 개혁의 선두 지역이자, 민주화와 인권의 도시들이기에 새로운 접근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 : 풀뿌리 지역부터 복지와 경제의 통합적 혁신 모델을

지방 정부 차원의 경제 정책으로는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아동 수당'이 눈길을 끈다. 처음부터 소득과 관계 없이 모든 아동에게 아동 수당을 지급했고, 그것도 지역 화폐로 지급한 성남시의 경우 만 6세 미만 아동을 둔 가구원 3만898명에게 1만 원의 인센티브를 얹어 11만 원씩 지급한 아동 수당이 모두 33억9868만 원이다. 카드로 지급받은 지역 화폐의 사용처를 보면 지역의 마트·생협·식료품점에서 사용 비중이 40.1%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음식점·주점 21.5%, 병원·약국 11.9%, 어린이집·유치원 6%, 학원 4.4%, 베이커리 1.8% 순으로 사용 비중이 높았다. 이들 돈이 모두 지역 내에서 유통되면서 지역의 여러 상인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으며, 지역 화폐 사용자를 유치하기 위해 10% 할인한다는 현수막을 거는 등 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성남시는 청년 배당과 지역 화폐를 연동하니, 전통시장의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서민 경제 활성화의 효과가 높다. 아동 수당과 청년 수당 등 성남시가 지급하는 각종 사회 수당을 지역 화폐와 연계해 운영할 경우 연간 약 1000억 원 수준으로 유통량이 늘어난다고 하니 적지 않는 규모다. 또 내년부터 경기도는 31개 기초지자체를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지역 화폐를 실시할 예정이다. 지역 화폐를 도입하면 발행액만큼 지역 상권으로 투입되는 1차적 경제 효과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중소상인의 매출 증대에 따른 시장 확대라는 2차 효과도 발생한다. (최준규, 경기개발연구원, 2018)

또 지역 소득의 역외 유출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매출액의 상당액이 지역 외부로 유출되지만, 정책 발행으로 투입되는 지역 화폐의 경우 지자체의 세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역 외 유출 방지 조치가 조례를 통해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앞으로 4년간 지역 화폐의 형태로 1조 5000억 원을 투입하는 경기도의 경우,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3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지역 화폐가 만능일 수는 없겠으나 지역의 돈이 서울로, 강남으로 쏠리는 것을 막고, 지역 경제를 선순환 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울산광역시도 지역 주민들에게 지급되는 현금성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로 했고, 서울시 노원구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자원 봉사자들에게 '노원'이라는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화폐를 카드로 적립하여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른 지방 정부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화폐를 준비하고 있어 지역 화폐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나아가 울산이나 거제 지역의 조선 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지급되는 자금을 투자 지분으로 전환해서 관리 권한을 지방 정부에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독일의 경우 니더작센 주는 법으로 폭스바겐 자동차 회사 주식의 일정 부분을 지방 정부가 소유하도록 의무화해서 거대한 지역의 자동차 회사가 준 공기업의 성격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노동자 경영 참여와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의 경영 참여가 가능해진다. 지방 정부는 단기적인 수익을 높이는 것보다는 자동차 회사가 잘 되기 위해 연구 개발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고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영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지역의 협력업체와 합리적인 분업 구조를 가지도록 하는 합법적인 정책 수단이 생기는 것이다.

KT나 SK와 같은 대기업 통신사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해 광역지자체에서 공기업으로 저가 통신사를 설립하고, 이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도록 할 경우 기업들이 반대하는 통신료 원가 공개가 없어도 요금 인하가 가능해진다. 독일은 전체 주택의 30% 이상이 지방 정부와 주거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공공 임대 주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10조 원 규모의 중앙 정부 도시 재생 사업을 활용해서 지방 정부가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을 매입해 재개발하고, 이들 중의 일정 부분을 공공 임대 주택으로 활용할 경우 지역 주민들의 주거비 부담 경감과 젊은 층 인구의 유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가 가능해진다. 중앙 정부가 민간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여 공기업을 활성화시킨다고 할 때, 지방정부가 자기 지역에 있는 공기업 지분을 일정 정도 확보해 지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경영권에 참여하는 방안도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반세기에 걸쳐 누적된 적폐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미 기득권층에는 자신의 이권으로 인식되어 있어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그들에게 밥그릇을 뺏는 혁명이라는 말로 들릴 것이고,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반대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 다수의 이익과 국가 전체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의 생활 적폐와 구조적 문제들을 바꾸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속에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들 수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재벌 대기업을 해체하거나 대체할 대안이 없다면 합리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 방법은 양보와 타협 그리고 재벌 오너의 관용이 아니라, 공적 자금과 공적 권한을 통해 새롭고 합리적인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강릉에서 가스 누출로 또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했다.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용균씨는 또 어떤가.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수명을 다한 싸구려 시장 경제는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또 다시 요구할 것이다. 논어에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말이 있다. 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다는 뜻이다. 촛불 혁명으로 만들어진 정권이기에 책임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뿐이다.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뛰어 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모델을 받아들이고, 지역에서 다양한 혁신 실험을 지원해야 한다. 과감한 자치 분권은 우리가 만들어갈 '복지국가 경제 질서'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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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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