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한 것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그는 뒤이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도 점차적으로 철수할 뜻을 내비쳤다. 이 두 가지는 트럼프가 대선 후보 때부터 내세워온 핵심적인 공약들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공약 이행 수준은 가히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임 이후 이뤄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및 파리 기후협약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 타결, 중국과의 무역 전쟁 불사, 이란 핵협정 탈퇴,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의 예루살렘으로의 이전 등은 숱한 논란을 야기해왔지만, 이것들은 트럼프의 대선 공약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멕시코와의 국경지대 장벽 설치와 '오바마 케어'의 폐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트럼프는 이들 공약도 이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아마도 그는 2020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나만큼 약속을 지킨 대통령은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코리아 빅뱅?
주목할 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트럼프의 공약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후보 당시 미국 주류의 실소와 색깔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고, 실제로 올해 6월 12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 임했다. 그리고 내년 초에 2차 정상회담을 갖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다면 한다"는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국정 기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 바로 주한미군이다. 신고립주의와 중상주의가 혼재된 그의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주한미군을 빼거나, 주둔비를 한국이 다 내거나.'
이는 대선 후보 때부터 일관되게 표출되어온 것이다. 어느 쪽에 마음이 더 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의 기질상 2020년 대선 전에 결판을 보려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빅뱅'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돼 획기적인 성과가 나올 때 발생할 수 있다. 가령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식과 대상과 시한을 제시하고 트럼프도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로 화답할 경우에 주한미군에도 일대 파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를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질문을 받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었다.
"나는 언젠가는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싶습니다.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어요. 그 이유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돈을 좀 내고 있으나 미국이 너무 많이 내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 당장 철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러한 생각은 두 가지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하나는 미국 주류의 반발이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며 트럼프에게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집요하게 설득하려고 해왔다.
그 중심에는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있었다. 미국 의회가 2018년 국방수권법에 이어 2019년 국방수권법에도 주한미군의 병력수를 2만 2000명 이하로 줄이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못 박은 것도 트럼프에 대한 공포심이 반영된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다. 한국의 부담금을 "2배로 늘려달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을 만큼, 이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집념은 강하다. 하지만 이건 상식 밖의 요구다. 지금도 미국은 한국이 주는 분담금을 다 쓰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일부는 은행에 예치해두고 있고 일부는 불용액으로 계속 쌓이고 있다.
그러자 미국은 '작전지원비'를 신설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현지 발생 비용을 분담한다'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관계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없는 한국도 생각해야
워낙 많은 변수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한반도 정세의 앞날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김정은과 트럼프의 담판이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과 일본 주류, 그리고 한국의 극우보수 진영의 두려움이 커질수록 이에 대한 저항과 반격도 만만치 않게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졸저 <비핵화의 최후>에서 이러한 양상을 상세히 다루면서 부제를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적은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들로 불리는 남북미중 지도자들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를 유일하게 말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미국 대통령 트럼프이다. 가능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그가 언젠가는 주한미군 철수를 지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바야흐로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할 상황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혼란이 아니라 신질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미군 없는 한국'을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사회적 담론 차원에서는 말이다.
* 필자 신간 <비핵화의 최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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