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분식과 이재용의 이익, 계산해보니…

삼성 미전실 임원, 삼바 분식 당시 감사로 재직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분식회계가 이뤄질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이 내부 감사를 맡았다. 김용관 삼성전자 부사장은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이던 지난 2014년 10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감사가 됐다. 그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직전인 지난 2016년 8월 감사 직에서 물러났다.

이런 내용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에 따르면,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소속 김용관 부사장이 그룹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 직접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지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당시 김 부사장이 감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징계를 검토했었다. 삼성 및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김 부사장이 사실상 총수 일가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관계자를 잇는 고리였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그리고 삼성 경영권 승계 사이의 관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단 승계하고, 지배구조 갖춘다세금 안 내려고"


이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20일,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건물 2층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로 드러난 제일모직-(구)삼성물산 합병 문제 진단 좌담회"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가 함께 마련한 자리다.

"경영권 승계 방식은 두 가지다. 지배구조를 갖춘 뒤 승계하는 방식과 승계한 뒤 지배구조를 갖추는 방식. LG그룹이 전자를 택했다. 이 경우, 상속 및 증여세가 커진다. 삼성은 후자다. 세금 부담이 줄어들지만, 법을 지키기 어렵다."

이날 좌담회에 참가한 이상훈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의 설명이다. 삼성이 '승계한 뒤 지배구조를 갖추는 방식'을 택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30억 원, 12억 원, 9억2000만 원을 각각 증여받은 게 1994년 10월, 1995년 4월, 1996년 4월이다. 그리고 1996년 10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이 있었다. 수십억 원대 현금을 증여한 뒤, 그걸 지렛대 삼아 삼성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그 뒤로 이어졌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온갖 불법, 편법 논란이 불거졌다.

글로벌 기업 된 삼성전자, 장악 비용도 늘어

배경에는 삼성전자의 급성장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던 1987년, 그리고 반도체 호황을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1990년대 중반. 삼성전자의 위상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삼성전자를 장악하는 비용 역시 늘었다는 뜻이다. 그 비용을 줄이려는 시도와 불법, 편법 논란은 맞물려 있다.

한동안 소강 국면이었던 승계 작업은,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지난 2014년을 계기로 급류를 탔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가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 입장에서 본 2014년 말의 삼성 지배 구조는 "삼성생명 과다 지배, 삼성전자 과소 지배"라고 요약된다. 삼성그룹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취약했다. 반면, 삼성생명에 대한 장악력은 남아돌았다. 이런 불균형을 깨는 게 이 부회장의 숙제였다.

삼성생명 통한 삼성전자 지배의 한계

당시 삼성 지주회사 격이던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19.4% 갖고 있었다. 또 이건희 회장이 지닌 삼성생명 지분이 20.76%다. 따라서 삼성 총수 일가가 실질적으로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은 약 40%였다.

그리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5%를 갖고 있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4.1%를 갖고 있었다.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경제민주화 및 재벌 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런 구조는 위협을 받게 됐다. 금융회사가 총수 일가의 계열사 장악에 동원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함께 고조됐다.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엄격해졌다. 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에 칸막이를 쳐야 한다는, 금산분리 원칙도 강화됐다. 2014년 말과 같은 삼성 지배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2014년, 이재용 앞에 놓인 5가지 선택지

전 교수는 2014년 당시 이재용 부회장 앞에 놓인 선택지를 5가지로 요약했다. 이 가운데 4가지는 이 부회장이 택할 리 없거나 불가능한 것들이다. 첫째, 당시 체제를 유지한다. 둘째, 삼성생명을 이용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추가로 사들인다. 셋째, 이 부회장이 약 50%의 상속세를 내고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총수 일가 주식을 확보한 뒤 이를 현금화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인다. 넷째,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전제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첫째와 둘째 방안은 현행법을 정면으로 위반한다. 셋째 방안은 합법적이지만, 이 부회장이 이 방식으로 확보 가능한 삼성전자 지분은 약 1.19%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는 이건희 회장 사망을 전제로 한 방식이다. 넷째 방안은 삼성 측이 한때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실제로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을 위해 로비를 한 정황도 있다. 그러나 금산분리 완화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남은 한 가지가 삼성물산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였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최대주주가 되지 않게끔 하는 방식이므로, 금산분리 관련 규정을 피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시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 비율이 극히 미미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0% 수준이었다. 그 전까지는 삼성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을 정점에 둔 지배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지분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결국 이 부회장은 자신이 지분을 많이 가진 계열사의 가치를 극대화해서,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길을 택해야 했다. 1996년 이후 삼성 총수 일가는 삼성에버랜드를 정점에 둔 지배구조를 유지했으므로,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비율이 높았다.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 부분 합병하면서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결국 이 부회장은 자신이 지배하는 제일모직의 가치를 키워야 했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지배한다.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지배한다.

상장회사인 삼성생명의 기업가치를 고의로 조작하기란 매우 어렵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감시가 어려운 비상장 회사였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업 분야는 미래가치가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현재 가치를 부풀려도 의심을 덜 산다. 분식회계를 하기 좋은 조건이다.

고의로 콜 옵션 공시 누락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가 이 과정을 설명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일반 주주들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절반 가까이를 보유한 미국 바이오젠이 콜 옵션을 행사하기로 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콜 옵션이란, 주식을 미리 정해둔 가격에 사들일 수 있는 권리다. 미리 정해둔 가격보다 주식 가치가 올랐을 때, 권리를 행사하기 마련이다. 콜 옵션을 행사해서 주식을 사는 측에겐 이익, 주식을 파는 측에겐 비용 또는 부채가 된다.

이런 사실을 2014년에 공시했어야 했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지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시하지 않았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이 같은 공시 누락이 고의라고 판단했다. 요컨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가치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치가 실제보다 많이 반영돼 있었다. 제일모직이 지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바이오젠에 헐값에 넘겨야 한다는 점이 반영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부풀려진 가치가 약 4조5000억 원대다.

분식회계의 대가,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비율 4.7%

이렇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렸고, 그 결과 제일모직 가치 역시 가치가 뛰었다. 제일모직 가치에 비해 삼성물산 가치가 낮던 시기를 골라 합병을 추진했다. 그게 2015년 7월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통합 삼성물산 지분 17.08%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통합 삼성물산이 지닌 삼성전자 지분은 약 4.7%다. 여기에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5%를 더하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은 12%를 넘겨서 안정적인 수준이 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약 4조5000억 원대 분식회계를 한 대가다.

그룹 차원 개입 정황, 뚜렷해져

그런데 분식회계가 진행된 시기에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감사로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임원은 감사 본연의 업무가 아닌 "그룹 수뇌부의 지시를 받아 직접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지시하는 역할"을 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해당 임원은 아무런 징계 없이 지금 삼성전자 부사장을 맡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장악을 위해 삼성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점이 보다 뚜렷해졌다. 이 부회장 관련 재판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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